폼페이와의 첫 만남, 바실리카(Basilica)와 도로 이야기

2017. 8. 2.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폼페이

제법 반듯한 모습의 건물이 보입니다.

포르타 마리나를 통해 들어가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바실리카(Basilica)라는 곳입니다.

바실리카는 이때는 공회당을 말한다 합니다.

오늘은 바실리카부터 보기로 합니다.

 

바실리카를 보기 전에 먼저 폼페이의 도로부터 먼저 잠시 살펴보고 갑니다.

비가 올 때면 빗물이 흐르는 하수도를 따로 만들지 않았기에 이렇게 도로를 따라

물이 흐르게 설계되었고 보행자를 위해 큰 돌을 징검다리처럼 가로질러 놓은 이유는

빗물에 발이 빠지지 않고 건너 다닐 수 있게 했으며 또 다른 이유는 달리는 마차가 이곳에서는

속도를 낮추어 건너 다니는 보행자를 보호하라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폼페이의 모든 길은 위의 사진처럼 돌로 포장되었습니다.

깊게 팬 모습은 마차가 다녔던 바퀴 자국이죠.

로마도 중국의 진시황이 만든 것처럼 마차의 폭을 정했다 했나요?

 

물론 인도는 조금 높게 양쪽에 만들었고요.

마차가 다니는 길은 큰 돌을 바닥에 깔았고 큰 돌 사이마다

하얀 작은 돌을 끼워 넣어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밤에도 달빛이나 횃불이 비치면 빛을 반사할 수 있어

도로를 마차가 쉽게 달릴 수 있도록 했겠네요.

 

또 보행자가 다니는 인도와 마차가 다니는 길이 만나는 곳에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많은 구멍이 보입니다.

이는 기둥이 없는 길이기에 마차를 세워놓고 일을 볼 때 이 구멍에

 말을 묶어두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야말로 노상 주차장인 셈이죠.

마차를 길가에 세웠다고 딱지 떼는 일은 없었겠죠?

 

또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비가 올 때 지붕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한 곳으로 흐르도록 했던 시설입니다.

이미 2천 년도 더 넘었던 그때 말입니다.

이렇게 모은 물은 도로청소에 사용했다고 하니 물의 재활용을 철저하게 했나 봅니다.

 

폼페이 도로 이야기는 그만하고 바실리카로 들어갑니다.

바실리카로 들어가는 입구는 마리나 문을 통해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입구가 있습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문지방이네요.

 

그 시절 문을 달기 위해 문설주 기둥을 세웠을 그런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흔적이 문을 달았던 흔적입니다.

2천 년도 더 넘은 시기에 만든 것입니다.

 

바실리카는 공회당으로 법원이 있고 당시 많은 사람이 모여 일을 하던

관청이 모여있는 곳이라네요.

그러니 이곳 폼페이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건물이라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기둥은 벽돌을 쌓아 만든 기둥으로 외부에 대리석을 붙여

기둥을 올렸을 겁니다.

 

따라서 로마가 지배했던 이전의 시기에 건축양식이 남아있는 곳이라네요.

당시 폼페이의 인구가 약 2만 명정도였다고 하니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네요.

아닌가요?

당시 그 정도의 인구라면 제법 큰 도시였지 싶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원기둥은 기둥 위에는 네모난 석판을 올려두었습니다.

용도는 아마도 신이나 황제 등 조각 석상을 올려두었던 곳으로 생각됩니.

동네 이장이나 동장의 두상을 올려두지는 않았겠지요.

 

바실리카는 정치나 경제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토론도 했던 장소로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은 역할을 했던 장소랍니다.

그러니 이슈가 있으면 폼페이 주민이 모여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이슈가 없으면 그냥 모여

장사가 이루어졌으니 늘 바쁘고 혼잡한 곳이었을 겁니다.

기원전 2세기 말에 지어진 곳이니 도시가 어느 정도 생긴 후에 계획된 설계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합니다.

 

위의 사진 왼쪽에 보이는 28개나 되는 원기둥이 회칠이 되어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형태를 보면 이 층 구조로 되었던 게 분명하네요.

사진에 보이는 기둥의 양식이 전면에 보이는 것은 이오니아식이고 왼쪽에 보이는

기둥의 코린트 양식으로 서로 다릅니다.

양식이 다르다는 말은 축조 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의미겠죠.

왼쪽에 보이는 6개의 원기둥이 있는 자리가 바로 재판관이 앉아

재판을 진행했던 법정이지 싶네요.

코린트 양식은 로마에서 발달한 양식이니까 더 늦은 시기에 지었다는 의미겠지요.

아마도 로마 시대에 만든 바실리카 중 가장 오래된 곳이 폼페이의 바실리카가 아닐까요?

이는 먼저 건물이 있던 곳에 나중에 증축했다고 봐도 되겠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폼페이를 보려면 적어도 반나절 이상을 보아야 어느 정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요한 곳만 대강 보아도 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지 싶네요.

유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하루 정도는 이곳에 투자해도 아쉬울 겁니다.

또 폼페이와 나폴리 사이에 있는 에르콜라노라는 작은 마을도 찾아봐도 좋지 싶습니다.

규모는 이곳 폼페이보다 작지만, 화산 폭발 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