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키오 다리(Ponte Veccio)와 베아트리체

2016. 4. 29. 08:30이탈리아 여행기 2015/피렌체

이 다리에만 오면 여행자 모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오! 나의 연인 베아트리체여~"

그랬습니다.

바로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 이야기 말입니다.

베키오 다리는 이렇게 이루지 못했기에 더 가슴 아팠던 슬픈 이야기가 있는 다리입니다.

 

바로 단테가 지금 이 다리를 걷다가 베아트리체를 보았더라면 한걸음에 달려가 부둥켜

안으며 이렇게 속삭였을 겁니다.

"아! 나의 연인 베아트리체여~"

원래 이루지 못한 사람이 더 아름다운 법 아닌가요?

그래서 더 우리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단테의 폼이 마치 껌이나 짝짝 씹고 짝다리 하고 건들거리는 동네 건달로 보입니다.

 

피렌체 시내를 흐르는 아르노 강에는 아주 오래된 다리 하나가 있습니다.

그 다리 이름이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를 지닌 폰테 베키오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은 이 다리를 아름답다느니 뭐니 하지만,

佳人 눈에는 그저 그런 더덕더덕 지은 다리처럼 보입니다.

 

많은 여행자가 이 다리 위에 서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다리 위에서 만난 적이 없답니다.

위의 그림에 보이는 이 다리와 저 아래 보이는 다리 사이의 강변을 걷다가 만났기에

많은 여행자는 헛다리를 짚은 셈이죠.

그러나 베키오 다리의 상징성 때문에 이곳에만 오면 베아트리체가 생각납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있었던 그날로 잠시 돌아갈까요?

1274년 5월 1일 겨우 9살의 어린 나이인 알리기에리 단테는 아버지를 따라

어느 부유한 은행가의 집안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게 되었답니다.

 

그 축제가 바로 '5월의 첫날'이라는 의미를 지닌 칼렌디마지오라는 축제라고 하네요.

이 축제는 당시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토스카나 지방의 전통축제로 봄이 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즐기는 축제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글을 써 붙이는 것으로

조용히 봄을 맞이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테 인생에 아주 커다란 일이 생기고 맙니다.

축제를 주최했던 은행가의 딸이 있었는데 단테보다 한 살 아래인 8살이었다네요,

 

그녀의 이름이 바로 베아트리체였다고 합니다.

단테는 그녀를 보는 순간 뻑소리나게 가버린 겁니다.

세상에 우리 말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9살이 아니겠어요?

여러분도 손자 눈치 잘 살펴보세요.

어리다고만 치부하지 마시고...

이 나이에 치명적인 아픈 사랑을 한다면 단테처럼 위대한 세계적인 문호가 될

자질이 있는 겁니다.

 

미운 열 살이라는 말에도 한 살 미치지 못한 어린 나이에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랍니까?

그냥 어린 나이라고 무시하기에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이렇게 한 번 본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마음속에 평생을 따라다닌 그런 여인이 되고

말았는데 그 어린 나이에 단테가 이렇게 어려운 사랑을 했지 말입니다.

 

한 번 빼앗긴 마음을 어찌할꼬~~

오매불망 자나 깨나 베아트리체뿐입니다.

그러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맙니다.

세월이 흘러 10년이나 지난 후 단테의 나이 열 하고도 아홉 살이었던 어느 날 단테는

베키오 다리 부근에서 친구와 함께 산타 트리니타 다리 쪽으로 걸어오는

베아트리아체를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위의 사진이 Zocchi Giuseppe라는 화가가 그린

The Arno river at the Santa Trinita Bridge라는 제목의 1741년의 작품입니다.

그러니 바로 저 다리 양쪽 어디쯤이 두 사람이 만났던 마지막 장소입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풀려 서 있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게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두 번째 대면입니다.

그러나 이게 그들의 마지막 만남으로 끝나게 되었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답니다.

이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연애사건의 전말입니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고 눈길 딱 두 번 준 게 전부였다는 말입니다.

그 후 베아트리체는 21살이 되던 1287년에 결혼을 했다고 했으면

단테는 그보다 2년 전에 장가를 가고 말았답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결혼 한 지 3년 후에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맙니다.

 

이로써 단테 꿈속의 연인은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단테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요?

"아! 나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여~"

 

그때 이 다리에 자물쇠라도 하나 꼭 채워두었더라면 두 사람의 인연은

이리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을...

위의 그림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장면으로 죽은 베아트리체를 천사가 입맞춤하는 모습을

단테가 지켜보는 장면이라네요.

 

베키오 다리는 다리 위에 한쪽으로 상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걷는다는 생각보다는 어느 상가 앞을 지난다는 느낌입니다.

 

다리 위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밖에서 다리를 보면 상가 위로 통행을 할 수 있는 복도가

있는데 그러니 2층 구조로 건설했다는 말이네요.

다리 중간에 가면 강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

 

상가는 주로 귀금속을 판매하는 상가입니다.

다리 중간에 흉상 하나가 서 있습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에 금세공 예술가로 이름을 떨친 벤베누토 첼리니라는 사람이라 합니다.

 

지금은 깨끗한 모습의 다리 상가지만, 예전에는 이곳에 푸줏간이 있었답니다.

냄새나는 푸줏간이 있다 보니 이곳을 오가는 다른 사람은 냄새 때문에 무척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더군다나 궁전을 오가는 메디치 가문의 사람에게는 이 다리를 거쳐야만

집무실과 피티 궁전을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긴 게 다리 상가 위로 그들만의 통로인 2층 회랑을 만들어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냄새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는 말이겠죠.

 

게다가 만약의 경우 내란이나 외침이 생기면 안전하게 도주할 수 있는

피난길이 되기도 하잖아요.

나중에는 통로 양쪽으로 수많은 미술품을 전시해 두어 멋진 예술 회랑이 되었다네요.

물론, 아무나 그 회랑을 걸어갈 수는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베키오 다리에 오면 누구나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마음속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찾기 위해서요.

9살에 처음 만났던 베아트리체를 언제나 마음에 간직하며 살았던 단테는

10년이나 지난 후에 두 번째로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었다나요?

 

이들은 이렇게 평생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두 번만 만났지만,

단테는 평생 마음의 연인인 베아트리체를 가슴에 간직하고 살았다 합니다.

젠장!!! 그러면 단테의 자식을 셋이나 낳은 단테 마누라는 어떡하라고요!!!

자는 신랑도 다시 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