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흔적을 찾아서

2016. 4. 25. 08:30이탈리아 여행기 2015/피렌체

단테...

그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단히 유명한 인물입니다.

사실 그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이라는 것은 이곳을 찾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피렌체 두오모를 대강 훑어보고 단테의 흔적을 찾아봅니다.

두오모(DUOMO)란 영어로 돔이라고 한다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대성당을 일컫는 말이라지요?

아마도 여기처럼 성당 지붕을 공을 얹은 것처럼 둥글게 만들어 그렇게 부르나 봅니다.

 

피렌체 대표선수인 두오모를 대충 둘러보고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에 큰 광장이 보입니다.

이 광장이 피렌체에서는 제법 유명한 리퍼블릭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이라고 하네요

 

광장 반대편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단테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골목 입구에 거리 이름이 단테 알리기에리라고 적혀있습니다.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갑니다.

여기 피렌체는 단테가 태어나 자란 고향입니다.

그의 생가가 바로 이 골목 안에 있었을 것이라고 해서 찾아봅니다.

 

골목 안에는 작은 광장이 있는 이곳이 바로 단테 광장(Piazza de Dante)입니다.

혹시 어린 시절 뛰놀던 단테와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광장 한편 건물 벽을 장식한 하나의 흉상은 바로 단테의 얼굴이었습니다.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저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네요.

 

그는 피렌체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태어나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비운의 사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후 약 천 년의 세월이 흐르며 피렌체는 섬유산업의 발달로 부를 축적하고

이 부는 예술가를 후원함으로 르네상스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지요.

 

단테가 태어난 시기가 바로 이때라네요.

그러나 돈이 모이면 정치 또한 혼란기를 겪게 되나 봅니다.

당시 피렌체는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 피파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리니파로 나뉘어 혼란한 시기였다네요.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피파는 다시 흑당과 백당으로 나뉘어 다시 싸우는 이상한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설탕 싸움도 아니고 흑당, 백당이 뭡니까?

 

단테는 이때 백당을 지지하고 참여하는 바람에 백당은 흑당에 밀리는 바람에 단테는 피렌체를 떠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가 되었다네요.

한마디로 줄을 잘못 선 것이죠.

 

이 이야기는 지난번 라벤나 단테의 묘를 찾았을 때 드린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단테는 추방당하여 라벤나에 머무르는 바람에 그의 세계적인 이야기인 신곡을 완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신곡은 당시 희극(Commedia)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다고 합니다.

 

후세 보카치오는 이 소설을 신성하다고 생각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제목처럼 

La Divina Commedia라고 함으로

지금은 신성한 희극이라는 의미의 책이 되어버렸다니 제목은 단테가 지었어도 지금은 아닌가 봅니다.

우리가 신곡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이 책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그렇게 번역되었기 때문이라네요.

 

책의 내용은 단테가 저승세계로의 여행기라고 봐야 하겠지요.

그는 이 책 속에서 그의 꿈속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상상하며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이 책이 쓰인 글이 당시는 라틴어로 책을 쓰는 게 정석이었는데 단테는 그가 태어나 살았던 피렌체와

토스카나 지방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썼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라틴어는 공부한 사람만 읽을 수 있는 글이었기에 그 지방의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읽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합니다.

이 책 하나가 지금의 이탈리아 표준어가 되는 기초를 다진 셈으로 현재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의 말이 아닌

피렌체의 말이 표준어로 사용된다고 하니 한 사람이 쓴 책의 파급효과는 상상을 불허합니다.

 

그는 희곡에서 위의 사진처럼 지옥편(Inferno), 연옥편(Purgatorio) 그리고 천국편(Paradiso)으로 구성하였다 합니다.

여기서 단테는 고대 로마의 문인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단테가 35살 되던 해

3월 25일 춘분날 저승 여행을 1주일간 하는 것으로 지옥에서 연옥으로

그리고 천국에 이르는 이야기로 그 느낌을 엮은 책이었다 합니다.

 

 

최종적으로 천국에 이르러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성모 마리아와 산타루치아,

그리고 바로 단테 마음속의 연인인 베아트리체였다고 합니다.

단테는 단 두 번 만났던 여인 베아트리체에 대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평생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림은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에 소장된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의 그림입니다.

그는 이 한 장의 그림에서 단테의 신곡을 함축적으로 제대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봐도 모릅니다.

단테는 신곡을 들고 있고 책이 가리키는 곳은 마귀가 깃발을 들고 벌거벗은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땅 위에는 산 형태의 연옥이 있고 그 위로 천국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형태는 세상 어디나 3분법으로 나눌 때 사용하는 상투적인 방법입니다.

여기서 그림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씻지 못할 죄를 짓는 사람은 지옥으로,

씻을 가능성이 있는 영혼은 연옥으로 그리고 살아있을 때 모든 죄를 씻어 깨끗한 영혼은 천국에 이른다는

권선징악의 내용이죠.

佳人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는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인생 말년에 단테는 피렌체에서 반성문을 쓰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면

사면시켜주겠다는 제의를 받지만, 그는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지요?

"그 어디에 있건 나는 태양과 별빛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불명예스럽게 아니... 치욕적으로 국민과 조국 앞에 서지 않고도 그 어디서나 고귀한 진리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내게는 빵조차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하며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네요.

 

단테도 한 성질 하지요?

위의 사진은 단테 박물과 앞 광장의 돌바닥에 그의 얼굴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단테 귀신이 나타나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 누가 일부러 만든 듯하지 않나요?

이곳은 생가터로 추정된다는 이야기지 생가는 아니지요.

 

그러니 단테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말은 순전히 흔적만 찾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키에사 디 단테라는 성당은 단테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지 싶습니다.

세례는 산 조반니 세례당에서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의 석관이 있다는 산타 크로체 성당도 가짜 무덤뿐입니다.

이곳 피렌체에서의 단테는 순전히 이름뿐인가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렇게 그는 인생 말년을 피렌체에서 멀지 않은 라벤나에서 그 나라의 보호 아래 살다가 눈을 감았다네요.

그의 무덤은 그래서 라벤나에 있고 피렌체에서는 돌려 달라고 했지만, 라벤나에서 돌려주나요?

결국, 피렌체 시에서는 그의 사당을 밝히는 등의 기름을 영원히 지원하는 것으로

두 도시 간에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라벤나에 가면 그의 묘가 있고 그 묘 앞에 있는 사당 안에는 작은 기름 등이 있습니다.

그 등을 밝히는 불의 기름은 바로 피렌체에서 공급한다 합니다.

그는 신곡이라는 책 속에서 자신과의 생각이 다른 사람은 모두 지옥편에 넣어버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