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의 도시 피렌체로 갑시다.

2016. 4. 20. 08:30이탈리아 여행기 2015/피렌체

어제 라벤나의 모자이크 예술에 빠졌다가 돌아와 너무 늦어 숙소에서 쉬고 아침 일찍 일어나

피렌체로 떠나기 전에 다시 산책 겸 볼로냐 시내 구경을 다녀옵니다.

이른 아침이라 구시가지에 통행인이 거의 없습니다.

일요일이라 인디펜덴차 거리는 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넵튠 분수가 있는 구시가지 중심가까지 걸어가는 길 왼편에 볼로냐 카테드랄이 있습니다.

볼로냐는 대성당 카테드랄이 있지만, 산 페트로니아 성당이 더 유명하기에

여기는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나 봅니다.

규모도 엄청나게 큰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성당 구경도 하고 넵튠 분수도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갑니다.

넵튠은 아침에 와 봐도 옷을 벗고 저렇게 폼만 잡고 있고...

세이렌은 요염한 자세로 매혹적인 눈으로 어설픈 여행자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이렌이 우리 떠남을 아쉬워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볼로냐를 떠나 피렌체로 갑니다.

 

볼로냐의 호텔은 도시세를 3유로/1인을 받습니다.

숙소마다 다르지만, 보통 체크아웃할 때 도시세를 계산하더군요.

미리 디파짓을 받는 숙소도 있고 그냥 현금으로 나갈 때 받는 곳도 있습니다.

 

2015년 10월 11일 일요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볼로냐에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는 한국에서 예약하는 바람에 저렴한 가격인 9유로/1인에

급행이며 피렌체까지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기차는 급행임에도 불구하고

20분 이상 연착하니 그 시간이면 도착하겠네요.

이탈리아의 기차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달리 연발착을 너무 쉽게 하더군요.

 

유럽을 여행하다 보니 기차를 미리 예약을 하면 무척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다만, 그럴 경우 확정된 일정이어야 되지 중간에 바뀌게 되면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두 달 전 미리 예약하면 기차 요금이 원래 가격의 반 이하에도 살 수 있는 구조더군요.

 

기차를 탈 때 메일로 날아온 확인서를 프린트해 왔기에 기차표를 따로 발권할 필요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볼로냐 첸트랄레 역 안에 있는 안내소에 물어보니 프린트한 것이

기차표를 대신하기에 그냥 타고 만약 기차표 확인을 하면 프린트물을 보여주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탈 때 모든 표를 타기 전에 체크 기계에 날짜와 시각표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예약했던 위의 사진에 보이는 프린트물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기차 편명, 날짜, 기차칸 번호와 좌석 번호까지 모두 나와 있기에 아무 상관없습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듯 볼로냐와 피렌체는 중북부에 있는 도시로 두 도시 사이가 그리 멀지는

않으며 30여 분 연착한 고속 기차를 타니 30분 만에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합니다.

구글 지도에는 플로렌스로 표기되네요.

 

우리는 숙소를 역 근처로 잡았습니다.

내일 오후에 시에나로 가려면 배낭을 들고 멀리 숙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위의 지도에 보이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과 숙소 안젤리카 호텔 그리고

내일 가야 할 곳인 시에나행 버스 터미널은 이웃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곳 피렌체는 걸어서 다닐 정도로 주요 구경거리가 모여있어 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워낙 여행자가 들리는 장소가 넓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배낭을 내려놓고 피렌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두오모부터 찾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보고라고 하지요.

숙소에서 우리가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지도까지 챙겨주며 숙소 위치부터 시작해

간단한 도보 코스 설명도 해주네요.

 

피렌체를 꽃의 도시니 르네상스의 도시니 중세 예술의 본거지니 뭐니 해도

이곳은 역시 메디치 가문의 도시였습니다.

시내 곳곳은 물론 주변의 제법 먼 곳까지 그들의 가문이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할

정도였고 약을 만들어 팔며 돈을 벌기 시작해 권력마저 손에 넣고

교황까지 배출한 가문이니 오죽했겠어요?

 

당시 가문의 기침 소리만 들어도 세상은 숨죽이며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 가문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았나 봅니다.

문학이나 예술에도 아끼지 않고 지원을 했던 결과 지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의 이름이 있지요.

 

보티첼리는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는 자주 우리 입에도 오르내리는 인물이잖아요.

정말 메디치 가문은 많은 예술가를 양성하고 지원했나 봅니다.

이때가 예술에 있어 유럽 역사를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시기라는데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메디치 가문이 없는 피렌체는 생각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피렌체는 메디치고 메디치는 바로 피렌체입니다.

 

처음 시작이 약을 만드는 일이라 했습니까?

그래서 가문의 문장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알약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정했나 봅니다.

얼마나 많은 약을 팔았으면 이런 가문이 생겼을까요?

호빵을 팔아 부자가 되었을까요?

 

그런데 저 알약이 어떤 때는 6개고 또 어떤 때는 7개도 된다는 겁니다.

건성으로 적당히 만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제법 공들여 예쁘게 만든 것도 보이더군요.

그러니 문장도 그때그때 다른가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피렌체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무척 유명한 도시입니다.

피렌체가 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유가 바로 메디치 가문의 역할이 컸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부자 가문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