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를 떠나며...

2016. 3. 10. 08:30스페인 여행기 2014/톨레도

이제 오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톨레도를 떠나 마드리드로 갑니다.

오늘 이야기는 佳人의 수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교양 있고 우아하게

산타크루스 미술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원래 이 건물은 산타쿠르스 병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라네요.

병원 건물도 마치 예술작품 같습니다.

 

처음엔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위한 멘도사 추기경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이사벨 여왕이 세운

자선병원이라 그래서 출입문에는 추기경 멘도사의 모습을 부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격자 모양의 판을 댄 장대한 천장이 있고 1층 문은 은세공 양식이라는

플라테레스크 양식이고 2층은 무데하르 양식이라고 합니다.

내부 장식은 장엄한 천장이 압권입니다.

미술관 구경을 와서 건물만 구경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입장료가 없기 때문에 구경하는 거잖아요.

원래 1층에 엘 그레코의 그림을 전시했다고 하지만, 오늘은 무슨 특별 전시를 한다고

2층만 관람을 허용합니다.

 

엘 그레코가 그린 "성모 승천의 제단화", 리베라의 "나사렛의 성 가족",

고야의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등의 걸작이 전시 중입니다.

미술관에 왔지만, 그림보다는 미술관 건물 계단을 올라가는 난간에 더 감동하고 갑니다.

 

스페인에 와서 이렇게 내용물보다 포장지에 더 환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佳人처럼 그림을 모르니까요.

 

위의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산 세비스티안, 피에타상, 산 안드레아 그리고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예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톨레도에는 트란시토 시나고가라고 있답니다.

무데하르 양식의 유대교회입니다.

유럽 전역에 유대인의 거주지에는 그들만이 모여 예배를 올리는 교회가 있었는데

이를 시나고가라고 부른다네요.

 

이렇게 톨레도는 가톨릭뿐 아니아 유대교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함께 공존의 길을 택했나 봅니다.

1357년 사무엘 하 레비가 세웠다 하네요.

 

목제 천장에 아름답게 조각을 하고 기하학 문양이 아름다운 멋진 벽에는 유대의 상징인

6 각형 다비드의 별과 유대교의 영광을 기리는 헤브라이 성구를 새겼답니다.

처음에 시작은 유대교회로 출발했지만, 1492년부터는 그리스도 교회로 바뀌었다네요.

 

신도 이렇게 인간에 의해 바꿔치기도 당하고 사라지기도 하나 봅니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의 능력에 따라 흥망성쇠를 겪나 봅니다.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 시나고가라고 또 유대교회가 있네요.

 

이곳 톨레도에는 유대교가 한창일 때 이 작은 마을에 10개나 되는 유대교회가 번창했다 합니다.

그중 제일 큰 교회가 바로 여기랍니다.

지금은 여기와 트린시토 교회와 두 곳만 남았다지요.

 

이 교회 건물은 무데하르 양식의 걸작이라 합니다.

무데하르 양식이 뭔지 모르는데 그게 걸작인지 졸작인지 우리가 어찌 알까요?

여기도 1405년에 기독교 교회로 바뀌었답니다.

그 후 1550년에는 여자를 위한 수도원으로 또 바뀌었고요.

말발굽 모양의 아치와 아라베스크 문양, 그리고 솔방울 장식의 기둥은 무데하르 장식으로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70km 정도 떨어진 곳이니 당일치기로 구경해도 좋을 곳입니다.

워낙 마드리드에서는 교통편이 많기에...

그러나 도시 전체가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에 중세의 모습을 좋아하는

여행객에게는 그만인 곳입니다.

이런 곳은 당일치기보다는 하루 정도 숙박하며 야경을 구경하는 일도 좋지 않을까요?

 

톨레도를 삼면으로 흐르는 타오 강은 이베리아 반도를 남북으로 나눈다 합니다.

타호 강은 쿠엥카 산지에서 발원해 이베리아 반도 내륙을 흘러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가장 긴 강이라 했습니까?

 

물은 세월 따라 흐릅니다.

세월 따라 역사 또한 흐릅니다.

많은 권력자가 이 지역에서 군림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 권력도 없고 가난한 배낭여행자로 살며 이렇게 세상 구경하는

佳人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로마 시대부터 이 도시는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어 요새 도시로 발전했나 봅니다.

왜 아니겠어요.

삼면이 천연의 방어선인 강으로 둘러 싸여 있어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이만한 자연적인 입지조건을 갖춘 곳도 드물 겁니다.

 

지금의 지명인 톨레도라는 이름도 로마 시대에 이곳을 톨레툼이라 불렀기에 그리 정했을 겁니다.

로마의 패망 후 서고트족이 피레네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오며 이 지역의

자연적인 유리한 점을 발견하고 수도로 삼았답니다.

보는 눈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러나 711년 이슬람 세력이 남으로부터 밀려 올라오며 서고트족은 멸망하고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들어갔고 이로부터 400여 년...

이곳은 이슬람의 최북단 변경도시로 발전했나 봅니다.

 

이 강을 중심으로 이슬람 세력이 남쪽에 자리 잡았고 위로는 남쪽에서 밀려온 주민과

기독교 세력이 자리했다고 하니 이 지역이야말로 700여 년 동안 서로 대치하며

늘 전쟁의 위협에 빠져 지내지 않았을까요?

북쪽에서는 국토회복운동을 하자는 레콘키스타를 하려고 하고 남쪽에 자리한 이슬람 세력은

척박한 땅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새로운 땅을 마련했으니 후손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고 싶었겠지요.

 

이 지역 북쪽이 바로 이사벨 여왕이 통치했던 카스티야 왕국이 있던 곳이겠지요.

카스티야 왕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믿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이 근방 전체를 카스티야 이 레온과 카스티야 라만차라고 부르는

두 개의 주가 여태까지 남아있지요.

 

그 이름의 배경은 바로 타호 강을 중심으로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이

양쪽에 대치하며 늘 전쟁을 되풀이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중세는 전쟁을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성을 쌓는 일입니다.

성은 나를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지방에는 아빌라처럼 여러 곳에 많은 성이 이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나를 보호했던 성은 나와 다른 사람의 교통을 막는 방해물이 됩니다.

결국, 나는 외톨이가 될 수 있지요.

성을 스페인어로 카스테야(Castella)라고 하나요?

그런 이유로 이 지방을 통틀어 카스티야(Castilla)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말은 억지는 아니겠죠?

 

톨레도는 마드리드 서남쪽이 있는 마을로 스페인 미술계의 거장이라는 그리스 출신

엘 그레코가 살았기에 엘 그레코의 도시라고도 부른다네요.

그는 그리스에서 일거리를 찾아 여기까지 흘러왔으며 이 지역에 머물며

왕성하게 그림을 그렸나 봅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도시도 일명 그렇게 부르지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박지인 마드리드로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1085년 다시 이 지역 북쪽에 있는 기독교 국가인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는

국토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이 지역으로 들어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 도시에 살아왔던 유대교도들과 공존을 하며 이슬람과 유대인 그리고 기독교도가

함께 사는 독특한 문화가 꽃피기 시작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렀나 봅니다.

그러나 1492년 국토회복운동인 레콘키스타가 마무리되며 이런 공존도 막을 내렸나 봅니다.

결국, 카스티야 왕국은 1561년 마드리드로 도읍을 옮기며

이 톨레도는 변방의 작은 도시로 지금에 이르렀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