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있는 산토 토메 성당.

2016. 3. 3. 08:30스페인 여행기 2014/톨레도

콘수에그라를 출발해 톨레도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습니다.

터미널 앞에 있는 호텔에 맡겼던 배낭을 찾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침에 예약해둔 호스텔을 찾아갑니다.

6인실 도미토리지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마저 구하지 못했더라면 이곳 여행의 반은 포기하고 마드리드로 돌아갔을 겁니다.

 

6인실이지만, 우리 외에 서양 젊은 여자 하나와 우리나라 젊은 남자 하나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네요.

배낭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옵니다.

오늘 톨레도의 밤 풍경도 구경하고 하루 쉬었다가 내일은 아침부터 낮 구경을 마치고

오후에 마드리드로 가려고 합니다.

 

골목길을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엘 그레코의 작품이 있다는 산토 토메 성당이 있습니다.

그 앞에 콘데 광장이 있고요.

외부로 보이는 탑은 무데하르 양식이라 합니다.

 

14세기 오르가스 백작이 개인 재산을 털어 지은 성당이라 합니다.

그는 무척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가난한 자에게 많이 베풀기도 한 사람이랍니다.

중세에 이런 사람 흔치 않지요.

 

죽을 때 그는 재산 대부분을 교회에 헌납하겠다 했지만, 그의 후손은 그런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는데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의 유언장이 발견되며 성당 측은 후손을 설득해 헌납받고

성당은 그런 그를 추모하기 위해 당시 그림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엘 그레코에 그림을 부탁했다네요.

그 그림이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을 그린 그림으로 엘 그레코를 오르가스 백작보다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네요.

 

그런 이유로 안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성당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인터넷에 수없이 퍼져있고 톨레도 골목길마다 그림이 걸려있기에 구하기에

어려움이 없었고 사실 어두운 성당 안에서 사진을 찍는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 그림은 2단으로 그린 것으로 상단에는 천상계의 모습으로 마리아와 예수가 백작을 맞이하고

아래는 현세를 그린 그림으로 톨레도의 수호성인인 성 오거스틴과 성 스테판이 백작을

매장하는 그림이라 합니다.

돈이 많으면 이렇게 유명화가에게 자신의 현세와 하늘에서의 일까지 그리게 하나 봅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나 보죠?

 

그림 아래편에 보이는 매장하는 장면 중 가운데에 죽은 오르가스 백작의 모습이고 그의 등을

안아 주는 교황 같은 고깔모자와 황금 옷을 입은 성인이 성 아우구스틴입니다.

그 반대편에 허리를 굽히고 얼짱 각도로 오르가스 백작의 다리를 드는 성인이 성 스테판입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보입니다.

한 사람은 아래 왼쪽에 막대기를 들고 있는 어린 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상복을 입은 조문객 중

왼편으로부터 7번째 사람으로 바로 화가 자신인 엘 그레코와 그의 아들을 그림에 남긴 거랍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엘 그레코에게 부탁해 그린 그림이 완성되어갈 즈음, 갑자기 성당의 재정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성당은 엘 그레코에게 처음 약속한 그림값에서 조금 빼자고 했다네요.

빼기는 왜 뺍니까?

성당도 참 딱합니다.

 

성당마저 이렇게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면 가엾은 어린 양들은 누굴 믿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말고?

 

화가 난 엘 그레코는 소송에 들어가고 결국, 감정사를 동원해 다시 그림값을 매기는데...

헐!!!

성당이 처음 주기로 약속한 값의 두 배나 되었다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없던 일로?

교회는 정말 없던 일로 하자고 했나 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엘 그레코가 칼자루를 쥐고 성당을 공격했나 봅니다.

 

당시 엘 그레코는 재정적으로 무척 어려웠고 그를 둘러싼 채권자들이 옆에서 부추기는 바람에

소송을 제기하고 결국, 처음 약속했던 가격의 두 배나 받는 행운이 생겼답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다른 불행을 불러오지요.

 

그 후부터는 엘 그레코에게 성당에서 그림을 부탁하는 일이 두 번 다시없었다고 합니다.

왕따를 당했다는 말이겠죠?

욕이 배째고 들어옵니까?

이를 우리는 소탐대실이라 하나요?

 

그렇게 욕까지 먹으며 그렸던 그림이 바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그림입니다.

그는 죽을 때 무척 많은 재산을 남겼다 합니다.

예술은 예술이고 돈은 돈이지요.

 

그렇게 성당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면 많은 돈을 벌었지만, 갈 때는 빈손이었을 겁니다.

주변에 울어줄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겁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또 누가 정했나 봅니다.

세계 3대 성화로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엘 그레코...

그는 살아가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까요?

아니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았을까요.

우리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그래도 이 도시에서 엘 그레코는 갑인가 봅니다.

소코도베르 광장을 출발해 시내를 빙빙 돌아 파라도르까지 운행하는 한 시간에 한 대만 출발하는

시내버스에 물감통과 붓을 든 화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엘 그레코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