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아름다운 톨레도

2016. 3. 4. 08:30스페인 여행기 2014/톨레도

위의 사진은 톨레도에서 아래 보이는 신도시 방향을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낮은 낮대로 또 밤은 밤대로 톨레도는 멋진 곳이네요.

많은 사람이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나 세고비아를 당일치기로 구경하고 돌아갑니다.

여행이라는 게 같은 곳일지라도 낮은 낮대로 밤은 또 밤대로 다른 느낌이 들지요.

 

어느 분은 두 곳을 하루 만에 모두 발 도장만 찍기도 하더군요.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기 위함이겠지만, 아쉽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 곳은 포기하고 다른 곳은 나중에 보는 방법도 좋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이번에는 그 반대편에서 톨레도의 야경을 바라봅니다.

톨레도는 그 지형 때문에 아름다운 곳이죠?

그러나 이런 모습 때문에라도 톨레도에서 1박 이상을 하며 시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밤뿐 아니라 낮의 모습도 좋지요.

여기 톨레도는 어디를 목적으로 정하고 걸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시간도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게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요?

 

그냥 발길 따라 걷다 보면 옛 골목이 나오고 골목 끝에는 성벽이 보이고...

시간도 멈춘 듯 톨레도는 옛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데 어디를 목적으로 정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톨레도는 그냥 걷는 게 바로 박물관 안을 걷는 일이 아니겠어요?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으면 되겠네요.

톨레도는 그렇게 다니는 겁니다.

 

골목길을 걷던 중 한 무리의 일행이 풍악을 울리며 나타납니다.

중세 복장을 한 일행이 말을 타고 앞에서 오고 있습니다.

혹시 엘 그레코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나요?

 

그 뒤를 따라 마차가 움직이고...

지금 우리가 중세로 들어왔단 말인가요?

 

옴마!!!

지금 아가씨들이 날씨도 쌀쌀한데 옷을 훌러덩 벗고 뭐 하는 겁니까?

속옷 바람의 여자가 중세 복장의 말을 탄 남자의 뒤를 따라오다가 佳人 앞에 오더니

갑자기 붉은 가루를 땅에 뿌리며 이상야릇한 몸놀림으로 요염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엘 그레코를 기리려는 의미의 전위예술인가요?

 

어느 골목길을 걷다 보니 톨레도의 유대인 거리라는 의미의

후데리아 데 톨레도라는 조명이 비치네요.

엘 그레코의 집이 있는 이 주변을 유대인의 거리라 하나 봅니다.

톨레도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엘 그레코라 했나요?

 

톨레도를 사랑한 만큼 톨레도도 그레코로 말미암아 더 빛이 납니다.

성당 옆에 엘 그레코가 살았다는 집이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30대 초반에 이곳으로 들어와 죽을 때까지 40여 년 간을

이 집에 살며 작품 활동을 했나 봅니다.

 

집에는 엘 그레코가 그린 "톨레도의 전경"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그림 속의 풍경이

지금 그린 것처럼 전혀 변화가 없다는데 놀란답니다.

마치 시간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마을처럼 말입니다.

시간도 톨레도를 비껴 지나갔기에 그럴까요?

 

그를 스페인의 3대 거장이라는 벨라스케스, 고야와 더불어 한 명이라 하지요.

그레코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그리스 사람이라는 말이라 합니다.

그는 늘 이곳에 살며 스페인 사람이 불러주는 그레코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그러나 그림에 서명은 그의 본명인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를 사용했다 합니다.

 

그가 톨레도로 온 이유는 이곳이 좋아서가 아닐 겁니다.

살다 보니 정이 들어 40년을 살았겠지만...

35세에 그리스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 엘 에스코리알 궁전이 한창 건설 중이었다 합니다.

 

이에 많은 화가에게 돈을 벌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궁전은 물론 수도원을 장식할 그림이 한창 필요했을 테니까요.

엘 그레코도 당시 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부탁으로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펠리페 2세의 눈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펠리페 2세는 그가 그린 "성 마우리시오"의 순교라는 그림을 지하 창고에 처박아버렸답니다.

지금은 엘 에스코리알 궁전의 보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제 펠리페 2세에게 찍힌 그레코는 사실 화가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죠.

찍히면 화가로서의 미래가 끝난 것입니다.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그는 보따리를 쌉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마드리드에서 가까운 톨레도라고 합니다.

톨레도에 둥지를 튼 그레코는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이곳 톨레도를 떠나지 않았답니다.

톨레도를 사랑해서라고요?

수모를 당한 그가 붓을 꺾지 않고 자리를 옮겨 다시 붓을 갈았습니다.

 

펠리페 2세에게 인정받아 그의 그림이 궁전이나 수도원에 걸리게 되었다면

그는 톨레도라는 지명도 몰랐을지 몰랐고 거들떠볼 시간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삐끗한 인생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다른 도시를 빛내게 한다는 사실.

정말 세상일 알기 어렵습니다.

 

톨레도에 자리 잡은 그레코는 이곳에서 명성도 얻고 돈도 많이 벌어 죽을 때

엄청난 돈을 남길 정도였답니다.

뭐 성당을 상대로도 소송하며 싸웠는 걸요.

그러나 살아가는 도중에 작품에 관하여 손해배상이나 대금 지불 관계 등 재판에 연루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하니 그림을 사랑하고, 톨레도도 사랑하고

그리고 돈도 너무 사랑하다 보니 그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한번 실패했다고, 한번 인정받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맙시다.

내가 실력을 키우면 지금 그곳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레코처럼 인생의 꽃을 피울지 모릅니다.

돈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벌면서 말입니다.

흙수저를 금수저로 만드는 일은 스스로가 해야 합니다.

내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을지라도 내가 노력해 내 자식에게는

도금이라도 한 금수저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