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알폰소 6세 문(Puerta de Alfonso VI)

2016. 2. 25. 08:00스페인 여행기 2014/톨레도

이제 숙소도 구했으니 대강 톨레도 골목길 아침 풍경 구경을 마치고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여유까지 부리며 내려가렵니다.

올라올 때는 에스컬레이터를 탔지만 내려갈 때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예전에는 주로 이 길로 사람들이 오르내렸을 겁니다.

잠시 경사길을 내려가다 보니 멋진 문 하나가 보이는데 이 문은 태양의 문(Puerta del sol)입니다.

이문은 출입구와 그 위의 문양을 보니 전통적인 이슬람 양식의 문이네요.

 

조금 더 내려가면 또 다른 문이 보입니다.

이 문은 무척 이상하게 생긴 문입니다.

외부에서 보면 위의 사진처럼 생겼고 내부에서 보면 또 다른 모습입니다.

 

내부에서 보면 두 개의 탑이 보이고 탑의 지붕에는 쌍두 독수리의 문양을 만들었네요.

1550년 아론소 데 코바르비아스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해 카를로스 5세가 이곳 톨레도로 입성할 때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문을 만들 때 스페인 국왕이 카를로스 1세였는데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임하고 있어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카를 5세라 불렀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황제이지 문 옆에 있다고 절대로 문지기가 아닙니다.

 

동양에서 흔히 보는 월성 형태로 문 사이에 공간을 두어 방어에 쉽도록 만들었네요.

톨레도는 타호 강이 도시 전체를 휘감아 흐르기에 3면은 자연적인 방어가 되고

나머지 북쪽만 열려있는데 그곳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쌓고 출입문을 만들었으니

이 문이 바로 톨레도로 드나드는 제일 중요한 문이지 싶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아주 멋진 문장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문장이지 싶어요.

머리가 두 개인 샴쌍둥이 같은 독수리 말입니다.

합스부르크가는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다가 헝가리 국왕까지

겸직하다 보니 머리 하나에 왕관을 계속 올릴 수 없어 생각해 낸 것이 머리가 둘 달린

쌍두 독수리를 고안해냈나 봅니다.

이 문을 성스러운 문이라는 의미의 비사그라 문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알폰소 6세 문

(Puerta de Alfonso VI)이라 하며 비아그라 문이 아니라 비사그라(Bisagra) 문입니다.

 

알폰소 6세와 관련하여 이곳 톨레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 사내가 있었다네요.

그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속담인지 알았는데 말입니다.

 

이곳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한 레온 왕국의 알폰소 6세가 있었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잠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알폰소 6세는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레온 왕국과 바로 여기 톨레도의

이슬람 왕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권한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합니다.

전형적인 금수저입니다.

 

그의 형 산초 2세는 카스티야 왕국과 사라고사 왕국의 조공권을 물려받았고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들은 상속에 조공권까지도 당시에는 물려주었나 봅니다.

형이 보니 기분 나빴나 봅니다.

그래서 형제간에 전쟁이 벌어져 두 번 모두 동생이 패했다네요.

 

동생은 전쟁에 패하니 개털이 되고 살기 위해 택한 일이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던 톨레도의

이슬람 영주 마문 밑으로 망명하며 이곳에서 몸을 의탁하게 되었답니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어쩌겠어요.

그러던 중 그의 누이동생이 레온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반란군 진압과정에서

형인 산초는 사망하게 되었답니다.

 

이곳으로 망명 왔을 때 처지가 딱하게 되었지만. 불행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죠.

갑자기 형이 죽는 바람에 25살에 졸지에 레온 왕국의 왕위를 다시 찾고 형이 통치하던

카스티야 왕국까지 물려받게 되었답니다.

이때 이 일을 꾸민 누이동생과는 근친 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여동생이 목숨을 걸고 알폰소 편에 서서 큰 오빠를 죽이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왕족에게는 형의 불행은 동생의 행복인가요?

그는 왕의 지위에 오르자 형의 공신인 스페인의 영웅 엘시드를 추방하고 그 여세를 몰아

1085년 자기가 한때 몸을 의탁했던 이곳 톨레도를 공격해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합니다.

 

톨레도의 이슬람 영주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우리 속담에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보따리가 아니라 나라까지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이슬람 왕이 기가 막혀~~

이렇게 이곳 톨레도는 오랜 기간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다가 졸지에 가톨릭 세력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되며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나 봅니다.

물에 빠져 겨우 목숨을 건진 사내가 자기를 건져준 사람의 보따리뿐 아니라

전 재산과 나라와 권력까지 빼앗은 이야기였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당시 이슬람 세력은 작은 소규모 왕국으로 나뉘어 살았기 때문에 주변에 강한 기독교 왕국에

국가 안위를 부탁하는 대가로 많은 황금을 조공으로 바쳤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이 지배하는 소왕국은 조공을 바치기 위해 많은 세금을 걷게 되니 자연히

백성의 불만이 고조되어 결국 하나씩 무너져버리게 되며 점차 차지했던 땅을

기독교 세력에 다시 빼앗기게 되었다네요.

그중 가장 융성한 세력이었던 톨레도가 무너지자 인근의 이슬람 왕국은 쓰나미를 만난 듯

하나씩 소멸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당시 톨레도는 이슬람 세력의 대들보이며

상징적인 지역이었다고 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