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도시 세비야의 야경

2015. 9. 14.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세비야

오늘 밤은 잠시 맛보기로 에스파냐 광장과 카테드랄 그리고 세비야 대학과 산타크루스 거리를 돌아보고

간단하게 끝내려 합니다.

그래도 여행 전 사진으로만 보았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는 이 도시에서 여유롭게 3박이나 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세비야에서 유명한 에스파냐 광장입니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인구가 70만 정도라 하고 스페인에서는 네 번째로 큰 도시라 하네요.

세비야를 대표하는 말 중 오페라의 무대니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니 하는 수식어가 많은 곳이죠.

 

예술의 나라 스페인에서 이곳만큼 많은 예술적인 작품이 탄생한 곳도 없지 싶습니다.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등의 무대가 바로 여기라지요?

예술과는 거리가 먼 佳人의 입에서 지금 오페라 작품이 술술 나오니 역시 세비야에 오니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특히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서곡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나온 곡으로 귀에 익은 노래죠.

 

로마 이전에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 로마 제국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채굴한 철광석을 이탈리아로

실어 나르기 위해 북쪽 히온으로부터 세비야까지 은의 길을 닦아 육로로 운반해 이곳 세비야에서 배를 이용해

로마로 운송했으니 세비야의 가치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로마는 일찍이 이곳 세비야의 항구 기능에 눈여겨보았나 봅니다.

수탈의 거점도시였던 이 지역은 그렇게 중심도시로 개발됐고 그 후 한때 서고트족이 도읍으로

정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 후 이슬람이 들어오며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히랄다 탑이나 황금의 탑이 이슬람 시대에 건설된 문화 유적이라네요.

단언컨대, 세비야를 세계 속의 대도시로 만든 것은 이슬람의 지배 아래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세비야뿐 아니라 이 부근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다른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을 접하며

그게 바로 이슬람 풍의 거리가 아닐까요?

 

다시 국토를 찾겠다고 700여 년이 넘게 전투를 하며 서서히 내려와 드디어 안달루시아 지방에

마지막 똬리를 틀고 버티던 무어인을 몰아내게 되었다지요?

712년부터 시작한 레콩키스타 운동은 콜럼버스가 이곳에서 출항했던 1492년에서야 끝나게 되었다잖아요.

그러나 여기 세비야는 조금 이른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찾았다고 하니...

 

그들이 물러가고 그 이후 스페인이 세계 무대의 중심국가로 등장하게 된 대서양 시대를 맞아 콜럼버스가

이곳 세비야를 출발해 신대륙으로 떠났고 마젤란도 여기서 떠남으로 뒤를 이어 수많은 정복자가 남미를 향해

황금의 꿈을 좇아 나서며 그때가 최대로 흥청거렸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한 대항해시대가 활짝 열리며 이 도시는 그야말로 대박...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개까지도 황금 덩어리를 입에 물고 다녔답니다.

그 이유는 신대륙과의 교역에 대한 독점권을 세비야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사실 신대륙의 황금 덩어리보다는 나중에 경쟁적으로 경영한 식민지 개척이 부를 가져왔지 싶습니다.

그러니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통틀어 막대한 부는 모두 세비야로 몰려들었을 겁니다.

이때가 세비야의 최전성기가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1503년 남미 식민지와 교역을 관장하는 인디오 통상원이 이곳 세비야에 설립되자

신대륙과의 모든 통상이 이곳에서 시작했고 결정되었기에 독점적으로 교역을 관장하게 되었다네요.

이는 모든 재화가 세비야로 들어온다는 의미고 돈이 흥청거리는 도시는 바로 세상의 중심이란 말입니다.

 

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과달비키비르 강은 이 도시뿐 아니라 스페인의 젖줄 역할을 했지 싶습니다.

오늘도 강변을 황금색으로 물 들이고 있는 황금색이 바로 세비야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부를 축적하다 보면 예술가는 자연히 몰려들고 그 예술가들은 세비야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을 겁니다.

후원을 얻기 위해 문지방이 아마도 모두 닳아 없어졌을 겁니다.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있어 배를 이용해 대서양으로의 진출이 쉽기에

원래 무역항으로써 입지적으로 뛰어난 곳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이 모여들고 재화가 모여들어 무역도시로 발전해온 곳이 이곳이 아닐까요?

도시의 로고 NO8DO는 'No me ha dejado' 즉 '성모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곳이 아니더라도 이 도시는 우리에게도 무척 귀에 익은 도시지요.

바로 꽃할배도 들렸던 곳이어서 더 친숙한 곳이 되었지 싶네요.

바로 그 유명한 섭이 투어라고 있습니다.

 

백일섭 할배가 걷기 싫어 마차를 타고 돌았던 바로 그 투어가 섭이 투어라고 하지요.

50유로를 내고 카테드랄 옆에서 마차를 타면 50여 분간 황금의 탑과 스페인 광장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게

바로 섭이 투어라네요.

섭이 투어란 비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마차를 타고 주야간 언제나 돌아볼 수 있답니다.

 

이슬람의 지배 아래 주요 거점도시로 발전했으며 스페인을 대항해 시대로 이끈 바로 그 도시가 세비야입니다.

콜럼버스가 이곳 강에서 산타 마리아호를 타고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그곳의 금은보화는 물론 각종 향신료가

이곳 항구를 통해 들어왔으며 유럽 전 지역으로 실려 나가는 곳이었기에 엄청난 재화를 창조하며

유럽 제1의 돈이 많은 도시가 되었을 겁니다.

 

이때 담배가 유럽으로 전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그때는 동네 강아지도 금화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도시 세비야입니다.

금화 말고 담배도 물고 다녔을 겁니다.

 

위의 사진이 지금은 세비야 대학 법학부로 사용되고 있지만,

당시 왕립 타바코 공장(Fabrika Real De Tabacos)입니다.

유럽 담배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되어 판매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신났을까요?

이곳은 또 담배공장의 여직원 카르멘과 경비병이었던 돈 호세와의 사랑을 그린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가 된 곳이죠.

 

바로 지중해 시대를 끝장내고 대서양 시대를 연 그런 대단한 곳이 세비야입니다.

어느 곳에선 태양이 지면 반대편에서는 태양이 불끈 솟아오르는 게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어요?

 

콜럼버스만 이곳에서 출발했나요?

마젤란도 세계 일주를 위해 출발한 장소가 바로 세비야랍니다.

바로 이곳 알카사르에서 왕을 알현하고 후원을 받아 출발했다고 하네요.

두 사람 외에도 수많은 탐험가가 들락거렸지만, 모두 후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요.

 

과달키비르 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이 도시는 아주 부유한 도시가 되었답니다.

세비야는 이렇게 강이 만든 축복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안달루시아 주의 주도라네요.

 

도시의 기원은 오래전이지만, 제대로 발전하게 된 원인은 바로 로마 제국이 이 도시로 들어오면서랍니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 서쪽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하기 위해 세비야를 거점도시로 키우게 되었답니다.

그런 이유로 세비야 부근에는 2만 5천 명이나 수용하는 대형 원형경기장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네요.

이 정도의 규모는 로마 제국의 많은 원형 경기장 중 제일 큰 경기장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교외의 산티폰세에 가면 그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네요.

 

세비에서 구경거리는 대부분 구시가지에 있지요.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그 동쪽에 카테드랄을 위시한 알카사르 등 주요 건축물이 있고 남쪽에는 스페인 광장과

스페인 대학 동쪽으로는 산타크루즈 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주요 볼거리는 구도시 안에 있기에 두 발로 투어만으로도 충분히 구경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마음에 보이지 않는 게 두렵다고 했습니다.

여행하며 눈에 보이나 마음으로 느끼지 못해 그 의미를 모르고 우두커니 바라보며 지나갑니다.

佳人의 여행이란 마음의 눈을 부릅뜨고 다녀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