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 적멸보궁(乾鳳寺 寂滅寶宮)

2022. 8. 10.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강원도

천오백 년이 넘은 건봉사는 그간 절 이름도 여러 번 변했네요.

처음 창건할 때는 원각사라고 불렀으나 그 뒤 절 뒤 서쪽 방향에 봉황 모습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나중에는 건봉사라고 불렀다네요.

 

지금은 신흥사의 말사지만, 625 전까지는 31 본산의 하나로 한때는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곳이 바로 건봉사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절로 변한 이유는 625 동란 때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 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변했기에 쇠락의 길을 걸었지 싶습니다.

 

오늘은 적멸보궁을 구경하렵니다.

적멸보궁이란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불교건축물을 의미한다고 하지요.

따라서 진신인 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네요.

 

위의 사진을 보면 법당 중앙에 불상이 보이지 않고 유리창으로 뒤로 보이는 둥근 사리탑이 보입니다.

불사리는 곧 법신불(法身佛)로서의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신 적멸보궁의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뒤로 돌아가 보면 달걀 형태로 돌로 만든 사리함이 보입니다.

외부에 장식한 멋진 조각만으로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음을 알 수 있겠네요.

 

지금의 사리함이 있기 전에는 위의 사진 가운데 보이는 사리탑에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불사리를 모신 곳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5대 적멸보궁이 있다고 하네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이 있고 나머지 네 곳은 모두 강원도로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정선군 동면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건봉사의 적멸보궁은 이 5대 적멸보궁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건봉사에는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이기 때문이라지요.

치아는 격이 조금 떨어지나 봅니다.

 

우리나라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들어오게 된 시기는 신라시대로 자장 법사가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가져온 100과의 진신사리라고 하네요. 

이곳 건봉사에는 치아사리가 처음에는 모두 12과가 있었는데 도굴되고

다시 돌아온 사리가 8과였다고 하네요.

 

8과 중 3과는 사리탑에 모셔졌고 보안원에는 5과가 있어 우리도 직접 친견할 수 있다고 하네요.

1724년(경종 4) 주지 채보(彩寶)가 구층탑을 건립하고 부처님의 치아를 봉안하자

명성왕후가 천금을 내렸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약탈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온 뒤 세운 것으로

이로부터 석가의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만들게 되었다네요.

 

위의 사진은 1920년대 건봉사의 전경입니다.

야트막한 기와담으로 둘러친 건봉사에는 50여 기에 달하는 부도와 탑비가 있습니다.

원래 건봉사에는 2백 개가 넘는 부도와 탑비가 흩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많이 분실되었고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현 위치에 부도전을 조성하였다고 하네요.

 

건봉사에서 불교와 연관되지 않은 거 중 꼭 보아야 할 것이 두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가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300년 이상이 되었다는 소나무입니다.

위치는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왼쪽으로 보면 보입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이곳은 그동안 수차례 화마와 전란이 스쳐 지나간 곳으로 모든 나무와 전각이

불타버렸지만, 오직 지금 보는 저 소나무는 화마를 피해 아직까지 건재하다고 합니다.

건봉사는 왕실의 원당으로 그 규모가 전국에서 가장 큰 곳이었으며

융성기 때는 3.183칸이나 되었다고 하네요.

 

또 하나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장군샘이라는 샘터입니다.

이는 물이 무척 차갑기에 냉천약수라고 부른다는데 아마도 이 지역 이름이 냉천리라고 부르는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보여지며 다름 이름으로는 장군샘터 또는 장군수라고도 부른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분연히 의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께서

전국의 승려들을 건봉사에서 훈련시키며 이 물로 몸을 씻기고

음용토록 함으로 각종 질병을 퇴치했다고 하네요.

지금도 깨끗한 물이 나오기에 음용 적합 판정을 받은 샘물입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조형물입니다.

가운데는 솟대라고 부르는 진또배기입니다.

만일 동안이나 염불을 하며 정진했던 서른 한 명의 스님이 승천했다는 등공대 입구에 세워두었습니다.

그러나 등공대는 군사지역으로 올라갈 수 없어 포기했습니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고 있다지요.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이 대형 돌확입니다.

곡식을 빻거나 찧는데 사용하는 일종의 절구라고 합니다.

자연석을 이용해 우묵하게 파내어 만든 것으로 건봉사 경내에는 무척 많은 돌확이 보입니다.

 

이는 이곳 건봉사에는 대단히 많은 승려가 머물렀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네요.

작은 돌확은 한 말 정도인 8kg의 곡식을 찧었다고 하고 큰 것은 한 가마인 80kg의 곡식을

찧는데 사용했다고 하니...

 

주차장 앞에는 만해 한용운의 기념관과 임진왜란때 사명대사에 의한 의승병 봉기처이기도 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의승병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네요.

 

마지막으로 만해의 시 한편 보고 끝냅니다.

 

건봉사 적멸보궁 찾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