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레스로 돌아가는 길

2015. 7. 31. 08:00스페인 여행기 2014/트루히요

이제 트루히요를 떠나 카세레스로 돌아갑니다.

메리다를 가기 위해 이곳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면 중간에 메데인을 들려 또 다른

콩키스타도르인 에르난 코르테스를 만나고 메리다로 가면 되겠지만,

여기에서는 바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답니다.

지도로 루트를 짤 때 마드리드에서 바로 오는 도로가 있어 당연히 버스 편이 있을지 알았지만,

현실은 아니네요.

 

물론, 어제 숙소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오늘 트루히요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한 결과 맞는 말이네요.

이럴 때는 차를 빌려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우리는 순전히 두 발로만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자가 아니겠어요?

중국도 그렇게 두 발로만 걸어 다녔는걸요.

 

일단, 카세레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늘 오후에 배낭을 찾아 메리다로 내려갈 수 있지요.

트루히요의 관광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작은 도시라는 말이겠지요.

11시부터 1시까지 2시간 동안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으니까요.

마요르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1시에 점심을 먹고 잠시 쉬며 광장을 굽어보

는 피사로를 다시 바라봅니다.

이곳은 시선이 머무는 곳이 바로 광장이었습니다.

 

잠시 걸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모든 창구가 닫혔습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트루히요 버스 터미널의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정거장의 모습입니다.

지금이 낮잠 자는 시간인가 봅니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2시 45분 출발입니다.

우리 부부는 출발할 때 미리 왕복표를 끊었기에 매표창구가 닫혀있다고 문제 되지 않잖아요?

게다가 스페인은 그냥 버스에 올라 기사분에게 직접 돈을 내고 표를 살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시스템입니다.

왜?

낮에는 시에스타에 들어가 도시가 조용하니까 이곳 터미널에도 근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죠.

 

카세레스에서 메리다로 가는 버스 편은 어제 카세레스 관광안내소에서 버스 시각표를

미리 받아두었기에 시간을 맞추어 가면 되겠네요.

두 도시는 아주 중요한 은의 길에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시각표를 보면 평일에 세 편

토요일에는 두 편 그리고 일요일은 딱 한 편만 버스가 운행한다는 슬픈 현실.

다행히 오늘은 월요일이기에 무려 세 편의 버스가 운행됩니다.

 

이 근처의 도시 카세레스, 메리다 그리고 살라망카는 지리적으로는 마드리드에서

가까운 지역이지만, 구역상으로는 로마 제국이 건설한 장대한 수송로였던 은의 길

(Ruta de la Plata)에 있는 로마가 건설한 도시라고 봐야 하겠네요.

그때 건설했던 도로가 지금에는 아주 중요한 도로가 되었다니

역시 로마의 저력은 대단한가 봅니다.

언젠가 문명의 중심이라는 로마의 심장으로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남으로는 세비야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수송로인 은의 길은

칸타브리아 해안의 히온(Gijon)이라는 도시까지 연결됩니다.

지금은 포르투갈 국경을 따라 남북으로 연결한 630번 국도겠지요.

 

세비야부터 올라가며 메리다, 카세라스, 살라망카, 사모라, 레온을 거쳐 히온까지는

어느 곳보다 로마 제국이 건설한 로마의 색깔이 강한 도시라 봐야 하겠지요.

메리다(Merida) 같은 도시는 "작은 로마"라는 애칭으로 불린 로마 유적의

종합 선물 세트도 남아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 부부가 찾아가는 그곳이 메리다입니다.

트루히요에서 바로 가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다니지 않습니다.

카세레스로 나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네요.

오른쪽 아래 메데인이라는 지명이 보이시죠?

바로 에르난 코르테스의 고향입니다.

코르테스가 무척 섭섭해 하겠지만, 교통편이 없는 것이 문제지요?

 

그가 베라크르스에 상륙해 멕시코의 심장을 향해 진군했다 했나요?

지금 멕시코 베라쿠르스라는 도시 옆에 그의 고향 이름을 딴 메데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고향 이름을 정복지에다 모두 정해놓았습니다.

고향을 그리는 향수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나 이번 여행에 가장 기대하고 있는 도시 중 한 곳이 바로 메리다입니다.

그만큼 그곳은 로마의 유적이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 하여

작은 로마라 부른다지요?

기대만큼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나무 한 그루만 보이는 광활한 고원지대입니다.

트루히요에서 출발한 버스는 45분 만에 카세레스에 도착합니다.

걸어서 숙소에 들려 배낭을 찾아 터미널로 나옵니다.

메리다로 가는 버스는 오후 5시 출발이기에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네요.

 

은의 길은 그야말로 로마 제국이 건설했던 도로로 칸티브리아에서 채굴한 금과 은을

이 도로를 통해 세비야로 옮겨 그곳에서 배를 이용해 과달키비르 강을 따라 지중해로 내려가

로마로 수송했을 겁니다.

어디 광물 자원만 옮겼을까요?

부근에서 생산한 농산물도 로마로 가져갔을 겁니다.

그러나 이곳 트루히요는 먹을만한 게 없기에 로마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곳이라지요?

 

이 은의 길 중앙부는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에스트레마두라라고 부른다 합니다.

워낙 비도 내리지 않는 지역이고 일교 차가 심한 곳이라 농작물도 자라기 어려워 가난했었을

것이고 에스트레마두라라는 지명은 두로 강 건너편이라는 의미의

extra duro에서 지명을 정했다 합니다.

 

워낙 가난한 지역이기에 이 지역 사람은 일찍이 군인의 길로 나갔나 봅니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싶습니다.

그래서 페루와 멕시코를 점령해 식민지를 개척한 많은 장군과 병사의 출생지가

이 지방이기에 정복자의 땅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네요.

 

이들의 아버지는 레콩키스타에 참전해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는

일익을 담당했지만, 1492년 이슬람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가 함락되며

졸지에 실업자가 될 운명에 처했다지요?

이때 그해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세비야를 떠나 신대륙을 찾아 나선 콜럼버스는

스페인 뿐 아니라 이 지방의 실업자들에게도 희망의 빛줄기였나 봅니다.

 

새로운 일거리가 창출되었지요.

혹시 이게 창조경제라고 해도 되겠어요?

싸움꾼으로 세월을 보낸 이들이었기에 신대륙으로의 진출은 문제가 될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겁니다.

 

왜?

지금까지 레콩키스타를 한다고 7백여 년을 이슬람과의 전투에 매달리다가 이제 이슬람은

사라졌으니 실업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전쟁이 일거리였는데 전쟁이 없어지니 생소를 잡는

투우에 열중하게 되었고 그마저 심심해 하던 차에 남미로의 진출은 한 줄기 빛이었을 겁니다.

 

피를 봐야 마음이 편해지고 칼을 휘둘러야 뻐근했던 몸이 풀리는 체질이 아니겠어요?

적이 앞에 있어야 삶의 의욕이 생기고 피비린내를 맡아야만

그날 밤 편히 잠을 잘 수 있었을 겁니다.

그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는 36.5도가 아니라 40도는 너끈히 넘었지 싶습니다.

역사란 이렇게 국민성을 바꿀 수 있나 보네요.

 

그래서 이 지방 젊은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친구와 함께 남미로 남미로...

이들을 따라 이 지방 젊은이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함께 동참하며 어떤 사람은

다행히 부자가 되어 돌아왔고 또 다른 자는 신대륙의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겁니다.

 

피사로의 고향 트루히요에는 그의 동상이 있답니다.

그 동상 아래의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페루의 건설자(El Fundador del Peru)라고...

그런데 누가 화환을 걸어놓아 글자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페루의 건설자는 아니고 페루라는 이름은 지었지요?

그가 탐험을 떠나며 지났던 강이 이름이 비루 강이라 그곳에서

페루라는 이름을 생각했나 봅니다.

 

과연 그는 건설자입니까?

아니면 파괴자입니까.

또는 정복자입니까.

 

살인에 약탈 그리고 문명의 파괴자가 아닌가요?

그러나 축제 때만 되면 이 한적한 마을에도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어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기린다 합니다.

누가 뭐라도 피사로는 스페인에서는 위대한 인물이 맞나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쿠스코 광장에서 이슬로 사라졌던 잉카의 마지막 지도자 투파크 아마루만이

그에 대한 답을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지금도 안데스 산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그의 혼이 스민 콘도르는

그때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지금도 안데스 산맥을 오르내리며 그때를 회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