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인과 레콩키스타(트루히요)

2015. 7. 30. 08:43스페인 여행기 2014/트루히요

웬 선돌 무더기입니까?

트루히요 언덕 위에는 무어인에 건설했던 알카사바가 있습니다.

그 앞에 이곳이 역사 유적지(Ciudad Monument)라는 의미의 기념 공원이 있네요.

그 기념 조형물이 바로 입석이라는 선 돌입니다.

 

선 돌의 앞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워낙 추상적인 예술작품이라 난해합니다.

 

오늘은 어제 이야기에 이어 계속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 이야기가 어디까지였죠?

그냥 아무 이야기나 이어가겠습니다.

 

아! 그래요.

점차 북으로부터 밀고 내려 오는 기독교 세력이 이 근처까지 내려와 그동안 정들었던 이 성의 방을 빼라 합니다.

어쩌겠어요?

주변의 모든 무어인 동족이 하나둘씩 보따리만 챙겨 남으로 남으로 가버렸는걸요.

 

지금까지 숨 죽이며 시키는대로 움직이던 마을 주민의 숨소리와 눈초리가 변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무어인은 머리에 타올처럼 생긴 터번을 두르고 여자들은 또 히잡이라고 두르고 살았고 생김새도 다르잖아요.

그런데 소문에 같은 민족이라는 사람들이 옛날 땅을 찾겠다고 무장을 한 체 내려온다고 하니

주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원래 이 땅은 로마 이전에 페니키아의 지배를 받은 후 카르타고의 지배 아래 있었고

그 다음 번호표 뽑고 기다리듯 로마가 지배를 했지요.

그다음에는 서고트 족이 차지했고 이제는 이슬람까지 주인행세를 하니 이베리아의 토종인 이베리아 사람은

지금까지 변변한 나라 하나 세우지 못하고 늘 지배만 당하고 살았기에 그게 편한지 알았으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이제는 자립하겠답니다.

 

이렇게 한동안 주인처럼 행세하고 살았던 무어인은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노래자락 날리며 떠나버렸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여러 가문 중 그중 피사로 가문도 이곳 언덕에 집한칸 장만했지 싶네요.

그러나 군인으로 떠돌이로 지냈던 아들놈이 어미도 알 수 없는 사생아를 어디서 하나 데려왔네요.

이름을 프란시스코 피사로라고 짓고 할아버지 집에서 돼지 키우는 일이나 하며 키웠습니다.

 

또 같은 가문인 오레야나는 후손인 프란시스코 오레야나와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다 남미로 함께 진출해

1541년 아마존 강은 완전 정복하는 일도 했답니다.

이들과 함께 신대륙 정복에 앞장서서 함께 출정했던 사람들이 돌아오며 이 동네는 황금이 넘쳐나는

그런 동네가 되었답니다.

 

피사로는 사실 자신에 세웠던 도시인 페루의 리마에서 살해당함으로 많은 재산을 거의 들여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다른 친척들은 우아하고 거대한 저택을 지었지만, 피사로의 집은 보이지 않고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는 작은 집을 개조해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었지요.

 

아마도 그때는 골목길에 자빠져 뒹굴던 강아지도 황금을 입에 물고 다녔을 겁니다.

그때의 돈으로 만든 저택이 바로 지금의 모습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번영은 그때 뿐이지 싶습니다.

그 후 세월은 이곳을 철저하게 외면했기에 그때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중이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택이 카르바할 바르가스의 저택(Palacio de Carvajal Vargas)입니다.

지도상에는 산 카를로스 저택(Palacio de San Carlos)이라고 표기되어 있네요.

골목은 좁고 건물은 크고 높아 사진 찍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귀족으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합니다.

그래서 집도 우아하게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이 건물의 양식은 콩키스타도르 저택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17세기에 지은 건물로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작은 마을인 트루히요에는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건물부터, 고딕 양식의 성당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까지 

골고루 구경할 수 있는 박물관과 같은 귀중한 마을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마요르 광장은 물론 이슬람 양식의 알카사바까지 있는 걸요.

 

그러다 보니 이 도시 트루히요는 이슬람 시대의 이슬람 성채로부터 대항해 시대의 풍랑을 겪으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촌놈 부자들의 저택이 있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피사로 박물관이 있는 아주 귀한 마을입니다.

비록 마을 규모는 작지만...

 

박물관은 저렴하나 사실 그것도 비싼 편입니다.

볼 게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주로 그림이나 설명 등 자료 위주로 전시해두어 감동적인 게 없지요.

 

그런데 실내에서는 사진촬영을 금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함께 들어간 유럽 단체여행객은 푸래시까지 터뜨리며 막 찍어도 안에 아무도 없어

제지하는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佳人도 푸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몰래 몇 장 찍고 나왔지요.

 

위의 위성지도를 통해 트루히요 구시가지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마요르 광장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어 오른쪽에 보이는 산마르틴 성당 뒤로 올라가면

제일 꼭대기에 있는 알카사바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시내 구경도 하고 반대편의 광활한 메세타 고원도 감상하고 왼쪽으로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며

피사로 박물관 코리아 대학 산타마리아 성당을 구경하고 골목길도 들어가 두리번거립니다.

그다음 오레야나 저택을 구경하고 다시 마요르 광장으로 내려와 콩키스타도르의 저택을 보시면

사실 모두 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관광안내소에서는 지금처럼 루트를 설명했지만, 우리는 카페거리의 아가씨 꾐에 빠져 반대로 돌았습니다.

왜?

바로 반대로 돌아야 카페거리로 내려올 수 있어 그곳에서 끝을 맺고 식사하고 갈 수 있잖아요.

덕분에 트루히요 구경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카페 거리 노천 테이블에 앉아 마요르 광장의

피사로 청동상을 바라보며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아침에 올라갈 때 돌아와 식사하겠다고 예쁜 아가씨와 약속했기에 많은 식당 중에 사실 그 집을 찾았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한국인이라고 인식시키려고요.

그랬더니 아침 식사 때만 제공하는 저렴한 식사에 오렌지를 직접 짠 스모 나투라와 커피까지 무료로 주지 뭡니까?

우리 부부가 뭐 꽃 부부도 아닌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