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타 고원의 외로운 섬 투르히요 알카사바

2015. 7. 28. 08:00스페인 여행기 2014/트루히요

트루히요는 골목길도 돌담으로 만든 길입니다.

바닥은 바위로 된 언덕에 작은 섬 하나 외로이 솟아있는 듯합니다.

우리 부부는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천년의 세월 속으로 여행 중입니다.

여행 중 역사가 있는 이런 곳에 들려 잠시 걸어보며 돌담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주변 환경이 무척 척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온 세상이 돌밭으로 보이지는 않습니까?

왜 이곳의 젊은이들이 돌파구를 찾아 남미로 떠났는지 이해가 됩니까?

그들 아버지도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게 힘들어 카스티야 왕국이 벌였던

레콩키스타에 합류해 전쟁터를 누볐고 그 전쟁도 끝이 났기에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남미로 떠나는 게 필연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트루히요는 끝도 보이지 않는 메세타 고원에 솟아오른 작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입니다.

구시가지는 천천히 걸어서 구경하는데 2시간도 체 걸리지 않을 그런 작은 마을입니다.

지금도 언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가 있고 신시가지도 그리 크지 않더군요.

 

여기 트루히요는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외로운 섬처럼 생각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낌 하나만은 무척 좋은 곳이네요.

그런 섬 같은 곳에 오래된 고성 하나 우뚝 솟아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작다고 볼거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전혀 손대지 않은 중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그런 곳입니다.

이 말은 이들이 남미로 건너가 돈을 벌어온 이후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지 싶습니다.

여행자에게는 이곳만 한 곳은 찾기도 쉽지 않은 곳이죠.

 

세월이 메세타 고원을 지나칠 때 여기만 외면하고 지나갔나 봅니다.

세월만 외면했겠어요?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통치했던 로마 제국도 외면했는걸요.

지금도 교통편이 좋은 곳이 아니라 관광객도 많이 찾지 않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이슬람 무어족은 이곳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들은 트루히요 제일 높은 곳에 아주 높고 튼튼한 성벽을 쌓아놓고 굴러온 돌이 아니라

박힌 돌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안에 왕궁을 만들어 천년만년 이곳에 살고 싶었나 봅니다.

 

마치 미어캣이 주변을 경계하기 위해 두 발을 쫑긋 올리고 사방을 둘러보듯

넓은 메세타 고원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이곳 돌산 위에 그렇게 보금자리를 꾸미고 살았습니다.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하시니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세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레 아니 그츨세
내히 이러 바라레 가나니'

 

쌓아 올린 그 성벽의 돌이 뿌리라도 생겨서 깊숙이 암벽 속을 파고 들어가

불휘 기픈 남간이 아니어도 돌이 바라매 아니 뮐세...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누가요?

바로 이곳에 새로운 터를 잡고 이 지역을 지배했던 이슬람의 무어족이 말입니다.

성채를 바라보니 마치 돌산 깊숙이 파고 들어가 뿌리가 생겨

영원토록 이곳을 지배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싶습니다.

 

그러나...

돌산 위라서 샘은 당연히 없기에 새미 기픈 므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

무어족은 조선의 50%만 이곳을 지배했나 봅니다.

50%의 유효기간이 임박해지니 그 단단한 바위산이 그만 모래처럼 변해

사상누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무어족은 해동 육룡을 찾지 않았을까요?

곶도 됴치 않았을 것이고 여름도 푹푹 찌는 곳이라 용도 살기 어려운 곳이지 싶네요.

이들에게는 용이란 상서로운 짐승이 아니라 악의 축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가마레 아니 그쳐야 하는데 돌산이라 샘도 없었고...

늘 이곳은 물이 그리운 곳입니다.

그래서 빗물을 받아 일상 허드렛물로 사용했을 겁니다.

그런데 비도 별로 내리지 않는 메세타 고원이 아니겠어요?

 

지금도 그때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듯 무심한 들꽃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바위틈 사이로

피어나고 그때 불렀던 노랫소리는 바람을 따라 아련히 들릴 듯 말 듯 귓가를 스쳐지나갑니다.

들리는 것은 佳人의 발자국 소리뿐...

난 바람~~ 넌 구름이려오~~

 

같은 곳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 고원을 바라봅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 저 앞에 보이는 성벽 위 망루 타구에 무어인이 보입니다.

앗! 울 마눌님이 저기서 佳人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습니다.

부부의 정은 이렇게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일에서도 쌓여갑니다.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이고 佳人이 본 것은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세상은 시간이 흘러도 같은 풍경인데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요?

어디 사람에 따라 다르겠어요?

같은 사람일지라도 보는 시간에 따라 다르지 싶네요.

 

영광은 무엇이고 행복은 또 무엇입니까?

인간의 욕망은 메세타 고원을 지나는 한 줄기 바람이고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파란 하늘에 조각구름 같은 존재인 것을...

언제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 흔적조차 없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아니군요?

잘난 사람은 이렇게 청동으로 동상을 만들어 자자손손 후세까지 기리는군요?

 

한때 떵떵거리고 살았던 사람이나 그들 손에 피눈물 흘리며 살았던 사람

모두 가고 나니 같아졌습니다.

사는 동안 아웅다웅하지 말고 서로 우애 있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콩키스타로 기독교도가 점차 이 주변으로 모여들며 시나브로 트루히요의 주인으로 행세했던

무어족이 힘을 잃어 갑니다.

자고 나면 기독교도의 힘은 한층 강해지고 무어족은 더욱더 약해집니다.

시간은 양쪽에 똑같이 주어지지만, 이렇게 달라집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사람의 마음가짐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성벽이 이렇게 초라하게 보일 줄이야!

마치 섶으로 얼기설기 이어 만든 방책으로만 보입니다.

누가 기대기라도 하면 금세 자빠져버릴 것 같습니다.

 

오뉴월 뙤약볕에도 그만 불이 붙어 금세 재로 변할 듯 위태롭습니다.

아닙니다.

佳人이 소리 한번 지르면 스스로 자빠질 겁니다.

힘이란 돌로 쌓은 성채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집념이었습니다.

 

그때는 성벽이 우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하고 높이 튼튼하게 쌓았겠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성벽은 외부로부터 나를 가두고 격리시켜

세상 물정도 모르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무어인은 진작 성 밖에 살았던 저들과 함께 나누고 즐겁게 살았다면 하는 후회만 가득합니다.

 

이곳으로 부족을 이끌고 들어올 때는 세상에 거칠 게 없었고

나 홀로 높이 우뚝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방이 에워싸여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나 자신이 왜 이리 초라하고 작아만 집니까?

그대~ 등 뒤에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오늘도 무어인이 떠난 빈자리인 알카사바에는 무심한 들꽃만 지천으로 피어있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저 무심한 들꽃은 지천으로 피어난답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일이 그런가 봅니다.

살아가는 한 인간의 흥망성쇠도 그렇지 않겠어요?

나이가 드니 자꾸 옛날 일만 생각하고 그때를 회상하지만,

실은 지금은 정리해야 할 시기인가 봅니다.

아직 조금 더 살아가야 하니 주변을 향해 눈길도 주고 이제까지 남이 내민

손만 잡으려 했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연습도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