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의 외로운 섬, 바다호스 시내구경

2015. 7. 7.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바다호스

바다호스의 랜드마크는 누가 뭐래도 알카사바입니다.

알카사바는 사실, 이들에게는 침략자이며 이민족이 만든 왕궁과 성벽입니다.

치욕의 역사현장이고 부끄러운 조상의 역사이지만,

이를 보호하고 후세에 남긴 이유는 이 또한 그들의 역사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과거가 없는 현재도 없지만, 현재가 없는 미래 또한 어디 있겠어요.

부끄러운 과거는 부끄러운 대로 자랑스러운 과거는 자랑스러운 대로 그대로 두고 보존하여 후세에 알리는 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산 교육이 아닐까요?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자라나는 세대일지라도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그대로 알려 그들이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게 바른 교육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위의 사진은 알카사바 성문 입구 광장인 산 호세 광장에 있는 교회(Convento de las Adoratrices)입니다.

이제 한 시간 정도 성벽을 모두 걸어서 구경하고 시내 구경을 나갑니다.

이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시내 구경을 나가기 전에 우선 호텔에 들러 어제 예약한 아침 식사를 하고 배낭을 리셉션에 맡겨두고 나와야 합니다.

사실 날이 밝기 전 어두컴컴할 때 숙소를 나와 운동 삼아 성벽 산책을 끝내니 시간 절약도 되고 좋습니다.

시내 구경을 마친 후 숙소에 다시 들려 배낭을 챙겨 버스 터미널로 찾아가렵니다.

 

바다호스부터는 자주 접할 수 없는 지역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뿐 아니라 도시 풍경도 조금은 다른 풍경이지 싶습니다.

교통문제로 패키지 단체여행객이 가지 않는 곳이겠죠.

그렇기에 이 지역의 정보 또한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가톨릭이 장악했던 지역을 구경했고 이제부터는 이슬람의 문화와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지방은 무어인이 가장 오래도록 버티며 살았던 곳이잖아요.

바로 그 위의 지방이기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 겁니다.

 

이 지역은 스페인의 중서부 지방으로 지명상 에스트레마두라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조금은 변두리로

치우친 곳이기에 교통이 불편해 쉽게 접근할 수 없어 많은 여행자가 찾지 않는 곳입니다.

이름조차도 에스트레란 영어로 엑스트라가 아니겠어요?

 

변두리라고 하니 교통만 불편한 게 아니라 대서양 시대를 맞이해 전국이 잘 나갈 때도 이 지역에 살았던 사내들은

보릿고개에 피죽 한 그릇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누렇게 뜬 얼굴이 싫어 찢어지게 가난했던 생활을

끝장내고 싶었을 겁니다.

이곳 사람은 보리를 재배하지 않으니 보릿고개의 의미를 모르겠군요?

 

왜 아니겠어요?

바닷가 항구 근처에만 살아도 식민지로부터 흘러들어온 금은보화가 지천일 텐데,

여기 당시에도 버려졌던 지역까지 그게 흘러들어올 이유가 없잖아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굶주림이 진저리 치게 싫어 청운의 푸른 꿈을 꾸며 모두 신대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지요?

왜 아니겠어요.

신대륙에는 황금이 지천이라고 소문이 났는걸요.

그래서 이 지역을 정복자의 고향이라고도 부른다네요.

드디어 엘도라도이 꿈이 이 지역 젊은이들 사이에 일어나게 되었답니다.

 

위의 건물은 바다호스의 음악당(Conservatorio Superior de Música)입니다.

그런 촌놈들이 남미에 진출해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와 음악당도 짓고 교양 있게 살려고 했나 봅니다.

실제로 그들은 남미로 들어가 약탈에 살인에...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고향에 저택도 짓고 반듯한 건물도 짓고 했답니다.

그게 바로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산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우리 귀에도 익숙한 코르테스, 피사로 등 남미의 정복자라는 사람의 대부분이 바로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하니

이들 피는 36.5도가 아니라 40도가 넘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특히 이곳 바다호스 출신 페드로 데 알바라도는 에르난 코르테스의 부관으로 역사적으로도

가장 잔인했던 콩키스타도르였다고 합니다.

그뿐인가요?

이 지방 여자도 9명이나 콩키스타도르에 합류해 무자비한 학살에 참여했다네요.

이들을 남자 정복자라는 의미인 콩키스타도르와 구분해 여자 정복자는 콩키스타도라라고 불렀답니다.

 

이들은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문명이라는 멕시코의 아스테카 문명과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

그리고 페루의 잉카문명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 장본인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그곳의 문명을 박살 내버렸지만, 이들의 고향은 이렇게 문화를 꽃피운 예술의 전당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바람이 지나가면 다른 바람이 그곳을 채우는 게 자연의 섭리인가요?

 

로마가 이웃 도시 메리다를 건설해 이 지역을 통치할 때 여기 바다호스는

작은 마을 팍스 아우구스타로 시작했습니다.

이웃 메리다가 당시 이름이 아우구스타 에메리타였으니까요.

그 후 무어인이 들어와 바타리야우스로 도시 이름을 바꾸었다네요.

그 후 포르투갈과 국경을 마주했기에 엄청난 전란에 휩싸여 많은 화를 입은 지역이기도 했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래서 이 지역은 일반 농작물은 별로 자라지 않으니까 주산물이 물이 적어도 잘 자라는

코르크나 올리브 나무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포르투갈 지역은 주로 코르크 나무를 심었고 스페인 지역은 올리브 나무를 심었더군요.

차를 타고 지나가며 우리 눈에는 그냥 모습이 같은 그런 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