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보아의 마지막 날

2015. 6. 4. 08:00포르투갈 여행기 2014/리스본

오늘 리스보아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렵니다.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해가 가장 늦게 진다는 말이겠네요.

그 말은 해가 가장 늦게 뜬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 정도의 크기로 스페인과는 시차가 한 시간이 있답니다.

우리나라와는 유럽 표준시에 한 시간 더해야 하지 싶네요.

포르투갈의 역사는 스페인과 궤를 같이하지 않을까요?

로마, 서고트, 이슬람 그리고 국토회복운동으로 지금에 이르는...

이베리아 반도 안에 스페인도 사실 포르투갈처럼 여러 나라가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나라가 되었네요.

포르투갈처럼 독립을 꿈꾸는 지역이 제법 많습니다.

 

다른 나라는 서로 스페인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의 나라가 되어 살아가지만,

다만 포르투갈은 그사이에 스페인의 침공으로 60여 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했다는 점만 다르지 싶습니다.

포르투갈도 대항해시대를 맞이해 스페인보다 먼저 해외로 나갔나 봅니다.

그 이유로는 대서양에 인접했고 유럽 중심으로 진출하기에는 거대한 힘을 가진 스페인에 막혔기 때문이지 싶네요.

 

나가면 얻어오는 게 있을 겁니다.

브라질이죠.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부터 아시아까지의 진출은 마카오까지였지요.

그래서 남미에서는 브라질만 포르투갈 언어를 사용한다지요?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는 조약이 바로 스페인과 맺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라 했나요?

한때 왕조가 멸족하는 바람에 스페인에 합병되기도 한 적이 있지만...

그 결과 스페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원래 국경을 마주 대하며 살아가는 나라끼리는 친하게 지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과 다투기도 했지만, 교황의 중재로 조약을 맺어 남미를 나눠 가지는 일도 생겼지요,

당시의 모습을 우리는 미션이라는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

 

어디 남미뿐인가요?

엔히크 왕자가 시작한 대항해 시대에 아프리카 세우타를 무력으로 점령하며

해외 진출을 처음을 시도하게 되었다지요.

그 결과 무척 많은 식민지를 경영하였고 멀리 동양으로는 마카오까지 식민지로 삼았지요.

비록 얼마 전인 1999년 12월 20일 마카오를 442년 만에 돌려주었지만요.

 

해외로 진출하는 해양국가인 관계로 일찍이 일본과 교류함으로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포르투갈 언어가 우리 생활 속에 자리한 게 많으니 우리나라도 간접적으로

포르투갈과 인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대표적인 게 우리가 즐겨 먹는 빵과 카스텔라라는 말이 포르투갈 언어며

고추, 담배도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하지요.

 

리스보아는 모두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그러다 보니 평지는 드물고 전부 언덕을 오르내려야 합니다.

 

언덕을 오르내리기 위해 만든 트램을 보면 안쓰럽기조차 합니다.

평지라고 하면 저 멀리 폼발 광장부터 이어진 큰 도로를 따라 강변에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까지 계곡과 같은 좁은 지역이네요.

그러나 이런 기이한 형태의 트램이 오히려 지금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관광자원이 되었다는 현실...

물론, 관광객을 아주 반기는 승객으로 가장한 전문 직업인의 무대이기도 하겠지만요.

 

그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는 모두 언덕으로 이루어진 비탈 도시입니다.

1255년 아폰수 3세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한 후 항구도시로 발전했다지요?

이들이 일찍이 대서양으로 진출하게 된 필연이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대서양 시대를 일찍 맞이하게 되고 아프리카나 남미로 눈을 돌려

식민지 경영에 눈을 돌렸나 봅니다.

1960-1970년 사이에 유럽의 대부분 국가와는 다르게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식민지와 자치령에 대해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합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의미였을 겁니다.

 

이미 세상의 흐름은 자치를 허용하고 독립을 허용해 새로운 독립국이 탄생하는 데 유독 포르투갈만은

독립을 외치는 식민지에 강제로 군대를 투입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겁니다.

이때 많은 병사와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게 되었겠지요.

 

그런 포르투갈의 전상자를 위로한다고 탑도 만들어 탑 주변으로 당시 사상자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놓았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짓을 했지만, 그때는 그렇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모두가 예스를 외칠 때 포르투갈만 노를 외쳤나 봅니다.

 

정말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려했나 보네요.

그래서 그런가요?

지금은 모두 잃고 유럽의 천덕꾸러기로 대우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일찍 진출해 부를 축적했지만, 늦게 철수하는 바람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나 봅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맞이해 포르투갈은 엄청나게 잘 나갔죠.

그러나 그들의 전성시대는 그곳까지였습니다.

하늘은 더는 포르투갈이 잘 나가는 꼴을 보지 않으려 했나 봅니다.

1755년 리스보아에 일어난 대지진은 도시 대부분을 파괴해버렸습니다.

자연 재앙은 포르투갈의 운명을 결정해버렸습니다.

 

물론, 폐허에 꽃을 피운 폼발이라는 후작이 나타나 다시 옛 모습을 찾기는 했지만,

한번 받은 충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이런 경제적인 문제로 오히려 여행객에는 천국으로 불릴 정도의 저렴한 물가이기에

많은 유럽인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포르투갈을 많이 찾나 보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제 오늘 이야기로 지루했던 리스보아 이야기는 끝을 맺고 내일은 교통편도 확인되지 않는

엘바스에서 바다호스로 넘어가는 국경 통과를 감행할 예정입니다.

물론, 그전에 포르투갈의 작은 도시 에보라를 들러 잠시 구경하고 건너가야지요.

내일은 에보라에 들러 구경했던 이야기입니다.

내일은 우리 일정이 어찌 될지 모르기에 오늘은 일찍 코~ 자고 아침 새벽에 출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