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안개 속에 묻어버리고...

2015. 4. 17. 08:00포르투갈 여행기 2014/리스본

지나간 일이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아름답게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요?

그러면 여기처럼 늘 구름에 가리고 안개에 휩싸이면 어떻게 됩니까?

역사도 신화도 아닌 현실인가요?

여기는 자주 운무가 끼기에 맑은 날의 풍경이 그립습니다.

더군다나 평생 한 번 찾아온 우리 같은 여행객은 맑은 날이 더 그립습니다.

 

1147년 아폰수 엔히케스가 무어인이 장악하고 있던 이곳을 공략해 함락한 후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했다 합니다.

이런 지역을 두고 공방전이 벌어졌다는 의미는 많은 사상자가 생겼다는 말이잖아요.

그렇기에 무어인의 귀신이 이곳에 무척 많을 겁니다.

고향을 등지고 이곳에 와 죽었으니 구천을 떠돌지 않겠어요?

 

지금 보아도 아주 험한 곳이 아닌가요?

왜 방치했겠어요?

귀찮아서였을 겁니다.

 

여기 산 위에서만 버티면 무엇하겠어요.

이런 위치에 성을 쌓는다는 일은 군사적으로 중요하고 강한 곳으로 생각되겠지만, 

이 산을 중심으로 주변이 모두 함락되고 포위되면 외롭고 고독한 섬처럼 답답해지는 곳이죠.

이렇게 잘난 곳일지라도 혼자 고립되면 더욱 고독하고 외로워집니다.

 

지금은 덜수 귀신이 된 덜수는 바로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겠지요.

엄니 곁은 떠난 지 어언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고향의 덜순이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더욱이 밤에 망루에 올라 주변을 경계라도 할라치면 왜 달빛은 그렇게 서럽게 보입니까?

그 달이 엄니 얼굴이 되었다가도 또 덜순이 얼굴로도 변한다 아닙니까?

고향을 떠난 사내 덜수는 이렇게 사무치게 고향이 그립지 않겠어요?

 

예전에 덜수네 이웃 부족의 왕인 압둘레만 2세의 지휘 아래 질풍노도처럼 북으로 군사를 몰아 올라간

이슬람군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베리아 반도를 모두 통일하려는 순간 하얀 백마를 탄

야고보 귀신이 기독교를 신봉하는 아스투리아 왕이 이끄는 라미로 1세의 군대의 선두에 서서

우리 민족을 클라비호 평원에서 박살 낸 후 시나브로 하나씩 무슬림 세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때가 844년 5월 23일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점차 힘을 키운 기독교 군대가 점차 남으로 남으로 밀고 내려온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고 드디어 주변의 모든 도시가 그들의 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당시의 막강했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사기마저 땅에 떨어지니

더는 버틸 힘이 없습니다.

그래요.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지요.

 

이제 이 부근에서 마지막 남은 여기 무어 성은 다른 곳에 연락하거나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며 이곳에 주둔한 모든 군사는 사기가 언덕을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서로가 얼굴만 쳐다보며 불안한 생활을 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차라리 오늘보다 더 심한 안개가 끼어 산 아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몰랐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흩날리는 먼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1147년 저 멀리 산 아래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적은 어느새 성벽

여기저기를 기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이미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기에 창칼을 들고 대항할 마음도 힘도 없습니다.

이렇게 덜수는 이역만리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으며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날은 평소와는 달리 하늘은 왜 그리도 파란 하늘이었는지...

마치 고향의 하늘처럼 말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집단 거주 터가 바로 덜수가 기거했던 병영입니다.

 

무어 성은 크게 감동을 주는 유적은 아니고 다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본다는 느낌으로

돌아보면 되겠네요.

역사란 이렇게 세월을 먹고 자라 전설로 남고 신화를 만드나 봅니다.

우리는 그런 역사와 신화를 먹고 자랍니다.

 

세월은 햇볕과 달빛을 먹고 자라겠지요.

그러나 보는 사람에 따라 이런 풍경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다고 말입니다.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더라고 사실, 통합권이나 페냐 궁만 들어가는 표나 가격차이가

크지 않으니 여기까지 보는 게 좋겠습니다.

거의 1+1 행사처럼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성벽에 올라 시내 모습을 조망하는 게 더 좋습니다.

성벽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보는 일도 좋고요.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했지만, 지금 시각에는 그나마 안개가 조금 걷혀 풍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돌산을 따라 성벽을 자연과 어울리게 조성했네요.

성은 대부분 파괴되어 그리 감동적이지는 않습니다.

성벽 위에 쌓아놓은 성가퀴라고 하는 여장(女墻)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여장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총안(銃眼)이라고 부르는 구멍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문은 암문(暗門)이지 싶네요.

암문이란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한 곳에 만든 문이 아니겠어요?

성벽 안의 옛 모습이 조금 남아있어 설명서를 읽으며 구경하면 되겠군요.

그리고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신트라 시내 구경도 좋습니다.

 

우리 부부는 얼마 전 중국 만리장성 위를 온종일 걸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서안 성벽 위도 걸었지요.

그런 성벽에 비하면 규모가 여기는 소꿉장난 정도입니다.

그러나 주변 풍경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이 뛰어납니다.

 

중국이란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하는 일에는 역시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말은 많은 민초가 죽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그랬기에 감동이 덜하지만, 이곳의 성벽 투어 경험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아래에 보이는 풍경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멋진 경험이지 싶습니다.

 

안개로 말미암아 이곳에서의 위쪽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뒤로는 날만 좋으면 아름다운 동화 같은 페냐 성이 보인다 했거든요.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는 이렇게 아쉬움만 가득 안고 지나갑니다.

 

오늘은 날씨로 말미암아 뿌연 안개만 보이네요.

그러면 직접 페냐 궁으로 찾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이제 함께 올라가실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 부부는 여행할 때 자주 걷습니다.

거리가 어지간만 하면 차를 타지 않고 걷는 이유가 그 자체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즐겁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길을 우리 부부는 걷습니다.

 

우리 생애 언제 다시 이런 길을 걷겠습니까?

언제나 우리 부부가 걷는 길은 우리 삶에 마지막 길일지 모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게 우리 삶이 아니겠습니까?

걷는 시간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두 사람만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지으며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