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16. 08:00ㆍ포르투갈 여행기 2014/리스본
무어 성은 신트라 시내에서 뒤로 보이는 산 중턱에 있습니다.
더 높은 곳에는 페냐 궁전이 있고요.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행궁도 아니고 왜 이 높은 곳에 성벽을 쌓고
그 안에 궁전을 지었을까요?
오늘은 무어 성 망루에 올라 두리번거립니다.
성벽이란 대부분 도시 방어의 의미가 있고 그 외에는 만리장성처럼 이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넓은 지역을 길게 쌓는 게 보통 아닌가요?
그러나 여기는 높은 산 중턱에 성벽을 삼중으로 쌓고 그 안에 궁을 만들어 생활했네요.
이 또한 외침에 방어를 위한 산성의 의미겠지요?
우리나라 남한산성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성을 쌓은 민족은 모두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이민족인데
누가 누구로부터 방어를 위해 쌓았단 말입니까?
그러니 굴러온 돌이 원래 박혀있던 돌을 막겠다고?
위의 사진이 바로 식량 저장고로 사용했던 사일로의 모습입니다.
이런 형태의 저장고는 사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던 방법이죠.
특히 이곳은 바위를 파고 저장고를 만들었으니 보관 기능이 다름 곳에 비해 뛰어났을 듯합니다.
이런 모습의 저장소는 이미 로마 제국이 이곳에 성벽을 쌓을 때부터 존재했을 겁니다.
그 후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은 점령했을 때도
이런 형태의 저장소는 흔히 발견된다고 하네요.
위의 사진을 보시고 용도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아랫부분에 해골과 뼈를 조각한 것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위로는 모슬렘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이 있었는데 훼손되었을 겁니다.
용도는 무덤이라고 하네요.
사실 무덤이라기보다는 장례장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옆으로 건물 하나가 보입니다.
교회 건물이라 하네요.
돌로 쌓은 교회 건물은 일부만 남았는데 그 위로 나무로 만들어 올렸습니다.
안에도 들어가 볼까요?
이 건물은 1147년 아폰수 엔리케스 왕이 레콩키스타의 일환으로 이곳을 탈환한 후
여기다 교회를 세우고 신트라 지역을 담당하는 교구로 정했다 합니다.
이 지역이 그만큼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한마디로 이교도의 귀신을 몰아내고 그들의 신을 모신다는 그런 의미지 싶네요.
무어족의 유적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이며 유적 발굴이 끝나면 이곳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겠지요.
이제 가장 안쪽에 있는 내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벽은 이렇게 모두 삼중으로 쌓아 적의 공격으로부터 철저하게 방어하려 했나 봅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으면 이렇게 튼튼하게 쌓았을까요?
세상에 아무리 튼튼하게 쌓은 성벽이라도 완벽한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일은 성벽 쌓느라 강제 동원된 사람의 뼈골 빠지는 일이지요.
성벽이 완벽했다면,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은 이민족이 주인행세를 쉽게 하지 못했겠지만,
중국 천하를 호령한 강성한 나라 대부분은 오히려 한족이 아니라
이민족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입니다.
여기는 무덤과 식량 저장고가 함께 있네요.
돌산 위에 살았던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도 이렇게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석관 속에 묻혔습니다.
그야말로 자연 석관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의 무덤은 중국의 낙산 대불로 유명한 낙산에 가면 마호애묘(麻浩崖墓)라는 게 있습니다.
그곳에는 암벽에 굴을 파고 그 안에 다시 석관을 만들어 장사 지내는 풍습이 있지요.
이곳도 이 산에 있던 돌을 이용해 성벽을 쌓고 궁을 지었나 봅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당시 작업하다가 만 바위입니다.
신토불이? 이곳에서도 적용되는 말인가요?
어떤 것을 만들려고 자르다 말았을까요?
이제 마지막 문을 들어섰습니다.
표 검사는 여기서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합니다.
그전까지는 표를 사지 않아도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밖에서 표를 살 때는 늘 관광객이 버스에 한꺼번에 내리기에 사실 혼잡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기다리지 마시고 여기까지 바로 들어오세요.
여기서도 표를 팔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까 금방 들어갈 수 있어요.
이 부근에 높은 산이 없어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생활에는
무척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멀리까지 보면 뭐합니까?
여기는 늘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기에 적의 동태를 조망하기에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위의 사진 아래 보이는 건물이 바로 신트라 궁전입니다.
아하~ 한 가지 좋은 점은 구름이나 안개에 가려 아래에서는 이곳에 군사시설과
궁전이 있다는 것을 적이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 말고는 아무래도 난해한 곳입니다.
우리나라 남한산성과 같은 의미는 아닌 듯 한데....
아침에 기차에서 내려 올려다보니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먼저 호카 곶을 다녀온 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무어 성만 조금씩 보이더군요.
오후에 들린 게 정말 잘한 일이었나 봅니다.
성벽 안으로 예전에 궁궐이라도 있었나 봅니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지금은 이끼만 보입니다.
물론, 지금은 늘 안개가 끼는 곳이라 이끼만 보이지요.
세상의 모든 영화는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 안갯속에 묻히고 이끼만 끼나 봅니다.
원래 영화란 한 때뿐이잖아요?
그런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인걸은 간데없고 이끼만 남는다잖아요.
우리가 걷는 성벽 길도 이끼만 남았네요.
이런 곳은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걷기만 해도 좋습니다.
아! 맞아요.
여기는 원래 걷기만 하는 곳입니다.
이 성벽을 처음에 쌓은 나라는 로마 제국이었답니다.
로마가 멸망하며 서고트 족이 잠시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했지만,
내분으로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지요?
그 후 이슬람 무어 족이 아프리카에서 넘어오며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렇게 견고한 성벽을 쌓았다고 하던데 아마도 여기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천년만년 살고 싶었나 봅니다.
어디 여기뿐이겠어요?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무어족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차지하며 영원히
이 땅에 뿌리내리겠다는 결연한 표현으로 이런 성을 여러 곳에 세웠지요.
그들은 이런 성벽을 쌓으며 돌에도 뿌리가 자라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견고한 성이 되었으면 하지 않았을까요?
그때가 7-8세기경이었다고 합니다.
무어인이 이곳으로 들어온 초기에 해발 450m 지점에 로마의 성벽 터를 발견하고
이곳에 아주 튼튼한 성벽을 쌓으며 이게 웬 떡이냐고 정말 횡재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처음 로마 제국은 이베리아 반도 전부를 이렇게 군사요새를 만들고 통치했습니다.
원래 이베리아 반도의 주인은 로마 이전에 한니발의 카르타고였을 겁니다.
그러나 두 세력은 같은 하늘에는 태양도 하나, 달도 하나라고
어찌 두 나라가 공존하겠느냐고 사생결단 했지요?
처음에는 한니발의 카르타고가 질풍노도처럼 로마를 위협했지만...
한니발이 로마로 진군할 때 바로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 알프스를 넘었다고 했나요?
결국, 패한 쪽은 패가망신이 아니라 역사가 사라지고 말았지요.
씨도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던 로마도 용병에 의지하며 겨우 연명하다가 결국 용병의 대부분이었던 서고트 족의
민족 이동으로 사라지고 말았는데 가는 곳마다 도시를 세우고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던 로마가 말입니다.
뭐...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는 진시황이 세웠던 진나라도 그 아들인
호해에 의해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나 봅니다.
서고트 족은 사실 하나의 힘으로 뭉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삼배 바지 방귀 새듯 스르르 사라지니 이베리아 반도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그때 아프리카에 살던 이슬람의 무어 족이 자주 이베리아 반도를 왕래하며 호시탐탐 노리다가
대규모로 지중해를 건너 넘어왔다는군요.
왜?
여기 이베리아 반도가 저들이 살던 아프리카보다는 훨씬 살기 좋은 환경이잖아요.
이때가 7-8세기 경이라나요?
이렇게 부족 국가였던 무어족은 좋다고 소문난 이베리아 반도의 여러 도시를 부족별로
하나씩 차지하고 주인행세를 했다네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니군요?
여기처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위에 더 높은 돌을 쌓고 살았군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저울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놓고
그 반대편에 나 자신을 실어 놓는다면 세계를 실어놓은 편이 훨씬 가벼울 것입니다.
세상에 나만큼 소중하고 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은 천 년을 꿈꾸고 튼튼한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민족은 자취를 감추고 그들이 쌓았던 돌은 천 년을 더 넘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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