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마지막 날, 산티아고를 향하여...

2015. 2. 24.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오늘이 까미노 마지막 날입니다.

처음 계획은 오늘은 몬테 데 고소까지 16km 정도를 걷고 내일 아침에 4km 정도 떨어진 산티아고에 여유롭게

들어가려고 생각했지만,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몬테 데 고소에 도착할 즈음 비가 그치기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내처 걸어 산티아고로 바로 들어갑니다.

佳人은 이렇게 오늘 일도 제대로 계획하지 못하면서 100년을 계획하며 살았습니다.

 

이럴 경우 계획과는 다르기에 먼저 숙소의 방을 확인해야 합니다.

카톡으로 한인 민박에 연락하니 비수기라 방이 비었다고 바로 와도 된다고 합니다.

만약 방이 없었다면, 까미노 도중 만났던 호객하는 할배네 집에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습니다.

사흘 내내 출발할 때는 오지 않다가 숙소만 나서면 비가 내리기 시작해 목적지에 도착해 배낭 풀고

점심 먹으러 나오면 신기하게도 비는 그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덕을 베풀지 못한 佳人이기에 그 결과는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우리말로 집에서 세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고 했나요?

 

하늘이시여~~ 왜?

우리가 걷는 시간만 비를 퍼붓습니까?

그동안 선업을 쌓지 못하고 살았다고 그러십니까?

그 먼 나라 한국에서 했던 일을 여기까지 가져와 야단을 치십니까?

 

그렇게 佳人이 살아온 곳은 여기가 아니고 한국인데요.

그러나 이제 내리는 비가 무섭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자포자기라고 하잖아요.

어제 오후에 젖은 옷을 빨아 널어두었더니 밤새 대강 말랐네요.

 

2014년 10월 9일 목요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어두컴컴한 시각에 출발했습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고 매일 하루만 자고 이동하다 보니 사실 빨래를 제대로 말릴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럴 때는 제대로 마르지 않는 두꺼운 양말 같은 것은 배낭에 걸어두고 길을 걷습니다.

어디 佳人만 저렇게 하며 걸을까요?

다른 순례자도 그러는 걸요.

 

잠시 걷다 보니 아침 운무가 아주 멋지게 깔렸습니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처럼...

여행 중에 이런 풍경이 보이면 잠시 서서 바라보고 갑니다.

마치 佳人이 수묵화 속을 걷는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화중유(畵中遊)라고 하잖아요.

 

숙소를 출발한 지 30분에서 1시간 반 사이에는 꼭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습니다.

오늘도 빵과 우유 그리고 주스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산티아고가 가까우니 식당에도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佳人은 밀가루 음식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이런 종류의 아침은 맛나게 먹지만, 울 마눌님은 반대입니다.

사실 밥보다는 빵이 있다면 佳人은 빵을 선택할 겁니다.

국수 또한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이나 중국 등 국외 여행을 하며 음식에 대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울 마눌님은 밥 외에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일종의 순례자 여권이라 할 수 있는 크레덴시알은 이동하며 수시로 스탬프를 찍습니다.

주로 숙소나 식당 또는 길거리 가판대에도 스탬프가 있습니다.

까미노 길에서는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스탬프이고 찍는 것은 무료입니다.

우리의 크레덴시알에도 이제 빈칸이 없을 정도로 꽉 찼습니다.

만약, 더 먼 곳에서부터 까미노 길을 걸으셨다면 여백이 모자랄 수 있겠네요.

 

이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옆자리에 한국인 아주머니가 혼자 식사하네요.

한국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입은 옷을 보니 한국 상표이기에 말을 건넵니다.

까미노 길을 걸으며 두 번째로 만나는 한국인입니다.

 

인사만 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산티아고 한인 민박에서 만났고

20여 일 후 그라나다의 어느 식당에서 또 만났습니다.

정말 약속하지 않고 기약하지도 않았지만, 인연을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여성은 혼자 까미노를 걷는 중이었습니다.

 

까미노 길에는 유칼립투스가 무척 많이 자랍니다.

그러나 호주처럼 코알라는 살지 않나 봅니다.

아마도 유칼립투스 나무가 이 지방과는 잘 어울리나 봅니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순례자는 점점 많아집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리도 힘들게 걸을까요?

그 답은 걷는 사람만이 답을 할 겁니다.

아마도 그곳에 까미노가 있기에 걷는다고 할까요?

그러나 걸어본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겁니다.

 

까미노는 무슨 마력이 있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까요?

그 답은 까미노를 걷는 사람 마음속에 있지 싶습니다.

 

매일 끝도 없이 까미노는 이어집니다.

아마도 그 역사 또한 2천 년은 되지 싶네요.

그 오랜 세월 속에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佳人도 작은 발자국 하나를 찍었습니다.

 

중간에 또 숙소 호객꾼이 나와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2인 1실에 1박 요금이 30유로라네요.

물론,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 있는 욕실이 있고요.

비수기인 10월경에는 30유로에는 까미노에서는 언제든지 방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이제 몬테 도 고소에 도착했습니다.

 

이 조형물은 산티아고를 방문했던 요한 바오로 2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 싶네요.

그런데 조형물에 새긴 작품이 마치 초등학생의 작품 같지 않습니까?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를 다녀간 후 다시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가 늘어났고 하니

가끔 교황이 산티아고를 찾아야겠어요.

 

님 당황하셨어요?

갑자기 佳人이 튀어나와서요.

그래도 이제 산티아고에 거의 도착했는데 佳人도 인증 사진이라도 한 장 올려야 하지 않겠어요?

 

이 언덕에 올라 산티아고 방향을 내려다보면 카테드랄이 보인다고 하지만...

비가 내리고 운무로 말미암아 시야를 가려버렸습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도시입니다.

별빛 쏟아지는 야고보의 들판으로 보이십니까?

 

하늘은 佳人에 그런 풍경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평소에 덕을 쌓지 않고 살아온 일을 모두 세세히 알고 있지 않겠어요?

 

언제 하나님 한번 스스로 찾은 적이 있나요?

매일 찾는 사람의 소원도 들어주기 바쁜데...

한 번도 찾지 않은 사람까지 일일이 챙길 여유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가렵니다.

 

이제 12.5km 남았다는 마일스톤이 보입니다.

까미노 길에서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지만,

우리 인생길에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일이 고독하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일의 해답은 스스로 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까미노는 당신께서 무엇을 상상했든지 그 이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는 자기만의 버킷 리스트가 있을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佳人 개인적으로 까미노를 걸었다는 일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달성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리스트를 담아두셨습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랑이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똑같은 방향을 내다보는 것이라고 
인생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 생텍쥐페리 -

 

- 佳人 생각 - 

부부란 처음엔 서로 마주 보며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장성해 각자의 생활을 시작하니 다시 서로 마주 보며 살아갑니다.

서로의 마음을 말입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 바라기보다는

내가 상대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