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 현실의 길. 그리고 까미노

2015. 2. 13.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요즈음 여행기랍시고 글을 쓰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자꾸 걱정이 앞섭니다.

사진만 주욱 나열하고 내용이 없는 여행기는 성의도 없고 영혼도 없는 것처럼 생각되고...

그렇다고 글을 올리자니 내용이 변변치 못해 읽는 분이 지루해하실 것 같고...

그래서 사진과 글을 함께 올리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제일 중요한 것은 글을 쓰더라도 정확한 용어 선택부터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제대로 맞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 가끔 맞춤법조차 제대로 맞지 않게 쓴 글을 볼 때 佳人의 글도 저렇겠지 하는 걱정이

앞서고 그 글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한글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천박한 글로 비치기 때문이죠.

佳人이 쓴 글이 바로 그런 부류의 글이 아닐까 생각하니 계속 써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한국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佳人이기에 우리의 혼이나 다름없는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망신이 아니겠어요?

자랑스러운 한글을 사용하는 분들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사용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이 사실은 佳人에는 가장 어렵습니다.

까미노에서는 바른 길을 알려주기 위해 위의 사진처럼 길 가운데에다 나무로 표시한 곳도 있습니다.

佳人이 쓰는 글도 저렇게 제대로 된 방향을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까미노 길을 오늘로서 닷새째 걷는 중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걷는 일이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틀은 몸도 마음도 무겁고 피곤했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은 없고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는 말은 걷는 일에 적응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어제는 팔라스 데 레이부터 메리데까지 15km를 걸었네요.

그랬습니다.

출발 전에는 이상이었고 상상만이었고 꿈이었지만, 직접 까미노를 걸어보니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차 거세지네요.

아무리 비가 거세게 뿌린다 해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내리는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2014년 10월 7일의 여정은 메리데를 출발해 아르수아까지의 14km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니 오늘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제법 있네요.

 

우리가 이렇게 짧게 걷는 이유는 체력도 문제가 되겠지만, 급히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한국인은 하루에 30km에 가까운 거리를 마치 걷기 대회를 하듯 걷습니다.

위의 지도를 보면 우리는 메리데에서 숙박을 했지만, 팔라스 데 레이에서 출발해 메리데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오후에 아르수아까지 걸어간다는 말입니다.

사람마다 체력이 다르기에 자기 능력에 맞게 걷는 게 정답이지 싶네요.

 

그러나 일부 외국인은 우리와 같은 페이스로 걷기에 숙소는 달라도 까미노에서 자주 얼굴을 대하고

반갑게 인사하며 걷습니다.

아마도 한국인은 젊은 사람이 많고 외국인은 우리 나이의 사람도 제법 많기 때문이겠죠.

아침에 출발할 때 아침 식사를 할라치면 어제 함께 걸었던 사람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네요.

그들의 일부는 우리처럼 경쟁하듯 빨리 지나가는 게 아니라 걷는 것 자체를 진정 즐기며 걷는 인상을 주네요.

나이가 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슬로우 라이프가 정답이지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꾸려 바르로 갑니다.

영어로 Bar이지만, 이곳에서는 바르라 하고 술도 즐길 수 있지만 간단한 식사나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편한 곳이더군요.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숙소와 함께 운영하는 바르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방열쇠도 반납하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바르로 갑니다.

 

아직 캄캄한 새벽이지만, 바르 안에는 아침 식사를 하려는 순례자로 붐비네요.

대부분 까미노 길에서 한두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숙소는 달라도 이런 식사하는 곳에서

자주 보게 되니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는 이유가 우리는 그들 눈에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동양의 늙은 부부잖아요.

 

오늘 아침은 너무 구운 토스트 두 개에 커피와 우유입니다. (합이 5유로)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보통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을 때 메뉴 델 디아라는 오늘의 요리를 먹게 되는데

주문을 받을 때 다른 음식을 모두 정하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나 커피를 주문받고는

꼭 제일 먼저 커피를 가져다줍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식사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디저트나 커피를 마시지 않나요?

아닌가요?

佳人만 그렇게 순서를 정해놓고 그에 따라 마시나요?

 

식사를 다 마칠 즈음에는 커피가 식어 맛이 떨어집니다.

개인적으로 佳人은 냉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커피만은 꼭 뜨거운 커피를 마십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자꾸 순서가 달라 식은 커피만 마시게 되네요.

냉커피가 더 비싸니 비싸게 먹으라는 배려일까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뭐라 하기도 그렇고...

 

식사를 간단하게 마친 후 길을 나섭니다.

어두 컴컴한 골목길로 빠져나오니 잠시 어디로 가나 혼동이 되네요.

까미노를 걷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잠시 서서 기다리면 됩니다.

다른 순례자가 곧 길을 따라가기 때문이죠.

그러면 그들 뒤를 따라 걸으면 크게 잘못될 일이 없지 싶네요.

 

이내 여러 순례자와 함께 일행이 되어 즐겁게 걸을 수 있습니다.

까미노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걷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가 없어 좋습니다.

 

잠시 비가 그치더니만 이내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합니다.

송아지만 한 개 한 마리가 배웅하러 나왔나 봅니다.

스페인은 개가 크기도 합니다.

저란 큰 개를 길에서 만날 때면 잠시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이 지팡이를 들고 갈까요?

 

한 시간 반을 걷다 보니 식당이 보입니다.

잠시 쉬었다 갑니다.

직접 오렌지를 짠 수모 나투라는 2.1유로입니다.

잠시 주스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갑니다.

뭐 남자들에게는 걷는 내내 까미노가 전부 화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이런 쉼터의 화장실은 대부분 무료이니까 이용하고 가야겠죠?

 

까미노에는 식당뿐 아니라 노점도 많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과일 등을 가지고 나와 순례자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내놓고 팔기도 합니다.

바나나는 이곳에서 나는 과일이 아니지 싶네요.

 

그뿐 아니라 무인 판매대도 제법 보입니다.

스탬프도 찍으라고 도장을 준비해 두었네요.

그만큼 이곳은 안전한 길이라는 말이겠죠.

 

예전 중세에는 이 길이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과의 전쟁이 빈번했던 지역이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도적도 많이 나타나 순례자의 주머니만 아니라 목숨까지 노렸나 봅니다.

이 때문에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한 자경단 같은 기사가 있어 거점 도시마다 머물며

순례자의 신변보호에 힘썼다네요.

지금은 그냥 걷기 좋은 그런 길일 뿐이네요.

습한 지역이기에 나무가 엄청나게 크게 자랍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대게 닫힌 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초보의 여행은 아직도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