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물 한 그릇의 감동 (페드로우소에서)

2015. 2. 23.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비를 흠뻑 맞으며 걷다 보니 따끈따끈한 온돌방이 생각납니다.

요리 지지고 저리 지지고...

한국인에게는 이런 날씨가 되면 생각나는 게 따뜻한 온돌이 제1 순위가 아니겠어요?

비가 계속 내리니 방수의 제왕이라고 선전하던 옷도 신발도 모두 비가 스며듭니다.

그런 것은 적은 비에는 방수 효과가 있나 모르겠지만, 종일 비를 맞고 걸으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同行은 同幸이라 했습니까?

그렇다면, 평생을 함께 가는 사람은 평생을 함께 행복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요?

아니... 그렇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짧은 인생 그나마 만족한 삶이 아니겠어요?

오늘도 우리 부부와 함께 행복한 까미노 산책을 하실까요? 

 

이런 곳에 오면 혼자 걷기보다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제게는 있습니다.

그냥 걷다가도 서로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눈웃음이라도 주고받고 싶은 그런 사람이 제게는 있는 걸요.

 

이런 곳에 오면 손이라도 어깨에 부담 없이 걸치고 싶은 사람이 제게는 있습니다.

어깨에 손이라도 턱 하고 올려놓을라치면

든든하게 의지 되고 체온마저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제게는 있는 걸요.

 

때로는 마음 상해 죽어도 함께 다시 다니지 않겠다고
백 번 천 번 다짐 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죽는 날 까지 잊을 수 없는 佳人의 사람이 제게는 있는 걸요.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미우면 미운 대로 그대로 두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만 바라보고 사는 내 사람인 걸요.

 

미워한다고 같이 다니지 않을 사람이라면
미워도 해보겠지만

그리할 수는 없지 않아요?

 

제법 오랜 세월 살아왔다고 사랑이 다했다고 슬퍼마세요.

이제부터는 사랑보다 더 징그러운 정으로 살아가면 되잖아요?

부부란 사랑이 다하면 이제부터는 정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요?

 

미워도 고와도 이제 정이 들 때로 깊숙이 들어버려

뗄래야 뗄 수도 없는 사이인걸요.

사랑보다 더 징그러운 것이 정이라고 하잖아요.

누구는 가끔 따로 다녀보라고 말하지만,

함께 떠나지 않으면 어쩐지 어색하고 허전하고 오히려 불편하기만 한걸요.
어디 좋을 때만 그런 생각이 드나요?

늘 그런 마음이 드는 걸요.

 

한평생 사는 동안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향기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군요.

 

그리고 佳人이 그 향기로운 정원을 든든하게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

영원히 언제까지나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군요.

 

언제나 정원에 피어있는 꽃을 보살펴주었으면 늘 행복하겠다고 하는군요.

그리하면 佳人의 손에 언제까지나 사랑의 향기로 남아 함께할 수 있다는군요.

 

여보! 오늘부터 당신이 정원의 꽃이 되구려~

그러면 이제부터 난 울타리가 되리니...

지금까지 佳人 곁에 언제나 당신이 함께 했지만,

이제부터는 당신 곁에 佳人이 영원히 함께 하리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우리 함께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십시다.

 

이제 알베르게 광고판이 난무하는 것으로 보아 페드로우소에 거의 도착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산티아고에 가까이 올수록 까미노 길에는 더 많은 사람이 걷습니다.

출발은 스페인 여런 곳이라서 다를지언정 순례자의 목적지는 모두 같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숙소가 대부분 만실입니다.

오늘 비에 흠뻑 젖어 노숙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시내 안쪽으로 들어가니 제법 방은 많은 데 이번에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40유로를 부릅니다.

지금까지 까미노 길에서 2인실 펜시온에서는 25-30유로 정도를 주고 잤는데...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도 많은 펜시온이 있네요.

역시 길에서 조금 멀어야 가격이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30유로 하는 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숙소 주인이 영어를 전혀 못 합니다.

우리도 못하니까 크게 문제 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추위에 떨며 왔기에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음식에 그런 국물이 있는 음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 능력에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뜨거운 물을 부탁하며 가져온 커피와 라면을 먹으려 했지만...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아 포기하고 일단 방에 들어와 젖은 옷부터 벗고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시내에 들어가 점심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누가 문을 노크하네요.

주인장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도자기 그릇에 끓인 뜨거운 물을 가져오는 게 아니겠어요?

비록 따뜻한 물 한 그릇이지만, 비를 맞으며 왔기에 한기를 느낀 사람에게는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물을 마지막 하나 남은 우리의 컵라면에 붓고 또 믹스 커피 한 잔을 타니 어쩌면 정확히 맞춤입니까?

그라시아스가 저절로 입에서 나옵니다.

"니들이 컵라면 국물 맛을 알아?"

이 말이 절로 나옵니다.

 

뜨거운 컵라면과 커피로 몸을 추스르고 뜨거운 핫 샤워를 한 후 잠시 쉬다가 밖으로 나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기웃거리며 다닙니다.

피자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따끈한 피자나 먹어야겠습니다.

사실, 집에 있을 때는 피자는 별로 먹은 기억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반가운 음식이네요.

 

샐러드와 피자가 각각 6.95유로와 6.5유로입니다.

가격은 무척 저렴하네요.

어때요?

우리나라 피자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맛은 역시 피자 맛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수페르마르카도에 들려 간식거리를 준비합니다.

물 0.21 유로, 요구르트 4개 0.55 유로, 과일 1유로, 콜라 0.79 유로, 빵이 0.77 유로로 합이 3.32유로입니다.

혹시 까미노를 준비하시는 분이 계실까 봐 가능하면 그곳의 물가를 상세하게 적어봅니다.

 

이번 여행에서 콜라를 무척 많이 마셨습니다.

식당에서 음식 주문 때 음료수에서 술을 못하기에 와인보다는 콜라를 시키게 되었네요.

음식을 먹고 난 후 콜라를 마시니 개운하기도 하였고 날씨가 덥고 물 대신 마시다 보니 매일 마시게 되더군요.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평생동안 마신 콜라의 수십 배는 더 먹었지 싶습니다.

지금 佳人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은 뜨거운 피가 아니라 차가운 콜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언어가 달라 서로 다른 말로 이야기했지만, 그 의미는 확실히 전달했나 봅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로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걱정인 것이 그 나라 언어입니다.

물론 그 나라 말을 알고 있다면 여행이 더 즐겁겠지만 몰라도 여행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말을 몰라 서로 불통이라 생각했지만, 의미가 통하니 느끼는 감동은 몇 배나 더 큽니다.

그래서 오늘의 부제로는 하였느냐로 할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