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의 종착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015. 2. 25.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위의 사진을 보시면 건물 사이로 종탑이 보입니다.

저 종탑이 바로 우리의 까미노 목적지인 산티아고 카테드랄입니다.

이렇게 길게는 한 달을 걸었고 짧게는 일주일을 걸어온 모든 순례자가 이제 마지막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서 출발했든지 모두 바로 저 종탑이 보이는 대성당입니다.

 

한 달을 걸었든 일주일을 걸었든 순례자는 그 느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체력이나 역량에 맞게 걸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까미노는 경쟁도 아니고 시합도 아닙니다.

명상의 길이고 느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까미노를 걸어오며 혼자 걸어온 사람도 제법 많았지만, 순례자 대부분은 친구, 가족 그리고 부부가 함께 걷습니다.

일행이 함께 제법 긴 시간을 걷는다는 의미는 서로 마음이 맞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살아가며 왜 아픈 기억이 없었겠습니다.

이 길은 살아오며 쌓아놓았던 미움도 갈등도 모두 버리고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함께 걸어 별이 쏟아지는 들판의 야고보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합니다.

아니라고요?

그동안 없었던 미움과 갈등이 생겨 한 보따리씩 담아간다고요?

 

세상을 살아가며 마음에 맞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까미노를 걸으며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하며 대화하는 일은 더 행복한 일입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대화하며 함께 여행하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아마도 제일 행복한 것은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하며 대화하며 여행하며 까미노 길을 걷는 일이 아닐까요?

 

가족이라는 의미는 신의 선택영역입니다.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신이 가족을 맺어준다는 말이겠죠.

그러나 친구는 인간의 선택영역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결정으로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부부란 처음 낯 모르는 남남으로 만나 가족으로 맺어집니다.

그러다 반평생 함께 살다 보니 나이가 들어가며 친구처럼 변해갑니다.

부부란 이렇게 가족으로 시작해 친구로 변해가니 신의 선택과 인간의 선택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관계인가 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결합이 부부 사이가 아닐까요?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어떤 색깔일까?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어떤 향기를 지녔을까?

향기도 없고 색깔도 없겠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무지개색으로도 보이고 향기로운 꽃향기도 날리지 않겠어요?

세상의 모든 의미는 바로 당신과 함께하기 때문에 무지개도 보이고 꽃향기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나눌수록 다양하고 커진다고 하나 보네요.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기도 짧은 세월인데

이제 토닥거리며 살 시간마저도 그리 많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머리보다 가슴으로 하는 거잖아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따뜻한 물이라도 마셔 마음부터 따뜻하게 할게요.

따뜻한 물이라도 마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하면 佳人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

 

비록, 이제 나이가 들어 젊은 시절의 열정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 남았잖아요.

아무 말 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서로가 미소 지으며 그냥 바라보아도 좋겠습니다.

장작불 같은 사랑도 좋지만, 은은히 밤을 새우며 당신 얼굴을 비춰주는 호롱불 같은 사랑도 좋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살아온 시간이 혼자 한 시간보다 많아졌습니다.

지지고 볶고...

때로는 미워도 해보고 외면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신만 한 사람 어디 다시없습디다.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적어졌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입니다.

사랑도 하며...

때로는 눈도 흘기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정말 당신만 한 사람 어디 다시없습디다.

 

이제 함께 살아갈 시간이 같아졌습니다.

남은 시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정말 당신만 한 사람 어디 다시없습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말입니다.

 

당신...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지금 이 길을 걸어가며 나는 당신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다리에 힘 빠지면 당신한테 따뜻한 밥이나 얻어먹자고 하는 입에 발린 소리가 결코 아닙니다.

네게는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여행했던 일이 내 삶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내 죽을 때까지 이 기억을 소중히 여길 겁니다.

 

(여기에 올린 사진 대부분은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비 오는 날은 화질이 많이 떨어지네요.

게다가 비를 맞고 걸어가며 찍다 보니 흔들리고 초점도 맞지 않습니다)

 

까미노를 처음 출발 때는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시작했습니다.

오는 도중 지금 우리가 제대로 걷고 있나 걱정도 했습니다.

그러나 까미노를 걷다 보니 우리가 목표로 했던 산티아고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세상일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도중에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걱정 속에 살아왔지만, 결국은 누구나 종착점에 도착하게 되나 봅니다.

 

마지막 사흘 동안 엄청난 비가 내렸고 우리 부부는 그 비를 뚫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폭우는 우리가 걷는 길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부부를 더욱 강인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이서 서로를 격려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갈 기회를 준 것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제 우리 부부의 까미노는 오늘로 끝이 났습니다.

당신과 처음으로 먼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멀다 해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시간에 비하겠습니까?

비록, 까미노는 끝이 났지만, 우리 두 사람의 인생길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당신! 나와 함께 조금 더 같이 걸어가십시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볼 힘만 있다면 언제나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가렵니다.

 

당신 그거 아세요?

나에게는 나 자신만큼 당신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