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다시 까미노를 걸었습니다.

2015. 2. 17.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오늘은 이런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기교도 부리지 않고 살아온 삶의 진솔함이 배어 나오는 그런 노래 말입니다.

노래 듣기를 원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통과하셔도 누가 뭐라 하겠어요?

그러나 잠시 시간을 내셔서 들어보세요.

내리는 비도 진솔한 노래로 말미암아 지나는 행인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dZy4ewG2s&feature=youtu.be

오늘처럼 비가 오시는 날에는 첼로의 선율이 그립습니다.

마치 하늘에 낮게 드리운 구름처럼 묵직하게 마음을 누르는 그런 소리 말입니다.

그러나 구름만이 아니라 오늘은 비까지 퍼붓습니다.

여행길에서 마주한 비는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오늘같이 비 오시는 날에는 그냥 온종일 게으름이라도 피고 싶습니다.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고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그냥 가만히 누워서 몇 시간이고 바라만 보고 싶습니다.

따끈한 구들방에 누워 요리조리 지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네요.

지금 까미노를 걷고 있잖아요.

 

오늘처럼 비가 오시는 날에는 첼로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밝고 경쾌하지는 못하지만, 현란한 기술을 부리지 않는 그런 투박한 소리 말입니다.

그러나 걷다 보니 나뭇잎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 구르는 소리만 들립니다.

지금 우리 부부는 아주 멀리 여행을 떠나 비를 맞으며 까미노를 걷는 중입니다.

 

오늘 같은 비 오시는 날에는 그들 삶의 모습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들도 첼로 선율처럼 묵직하게 기교도 부리지 않고 투박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내리니 다니는 사람은 순례자 외에는 코끝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우울한 날일지라도 부부가 서로 마주 보며 싱긋 미소 한 번 짓고 가니 행복합니다.

 

지금 佳人 부부는 여행 중입니다.

비록 비가 오시는 날일지라도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여행자의 덕목이 아니지 싶습니다.

다시 짐을 주섬주섬 챙겨 길을 나섭니다.

묵직하게 바닥으로 깔리는 듯한 첼로 소리를 뒤로하고 길을 나섭니다

 

2014년 10월 8일 수요일의 이야기입니다.

수요일은 우요일이라 비가 더욱 많이 내립니다.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우리 부부는 평생을 함께했듯이 오늘도 함께 길을 나섭니다.

곁에 없으면 너무 허전하니까요.

 

오늘은 아르수아를 출발해 페드로우소까지 20km의 까미노 길입니다.

이제 우리의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손에 잡힐 듯합니다.

 

아침 식사는 주스 2잔, 빵 두 개 그리고 커피 한 잔.

이렇게 모두 5.3유로였습니다.

커피는 佳人의 유일한 기호식품이고 울 마눌님은 절대로 마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까미노 일정이 오늘과 내일만 걸으면 거의 마무리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미리 산티아고에 있는 한인 민박집에 카톡으로 연락해 내일이나 모레는 들어갈 예정이라고 이야기하고

방을 부탁했습니다.

우리 나이에도 카톡이라는 게 무척 유용하게 쓰입니다.

정말 아날로그 세대지만, 디지털 세상을 살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까미노 길은 많은 비로 말미암아 이미 도랑을 이루고 있습니다.

완벽한 방수를 자랑한다는 옷도 신발도 스며드는 비에는 방법이 없나 봅니다.

혹시 까미노를 준비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판초 우의를 미리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까미노의 방향을 알리는 노란 화살표가 더 선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잘 걷던 울 마눌님이 갑자기 쓰러집니다.

까미노 길에서 말입니다.

佳人은 앞에 서서 걷고 있던 중이라 그 상황을 몰랐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달려와 일으켜 세우고 물을 건넵니다.

 

이런 길가에선 할 일이 그런 것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놀라서 몸을 부축하니 "여보 나 괜찮아 잠시 깜빡해 발을 헛디뎠나 봐"라고 합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이런 길에서 쓰러진다면 큰일을 당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행입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고 배낭도 옷도 흠뻑 젖었기에 힘이 들어 잠시 발을 헛디뎠다고 합니다.

힘에 부치니 순간적으로 몽롱한 상태가 되었지 싶네요.

그래도 그만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연히 체력도 약한 사람을 꼬드겨 이런 고행의 길을 걷자고 했나 하는 생각에

자신을 잠시 동안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까미노는 아름답기만 한 길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길이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다시 까미노를 걸었습니다.

 

까미노에는 이렇게 길을 걷다가 유명을 달리한 사람을 기억하려는 곳도 있습니다.

그가 쓰러져 유명을 달리한 길가에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이 그를 기억하려고 이렇게 작은 비석을 세우고

사진을 놓아두었습니다.

겨우 49살의 젊은 나이의 미구엘 리오스 라마스는 2011년 9월 10일 까미노를 걷던 중 바로 여기서 쓰러진 후

더는 걷지 못하고 하늘의 까미노 길로 떠나버렸습니다.

 

이런 유명을 달리한 순례자의 비석이 제법 눈에 많이 띕니다.

누가 까미노가 아름다운 길이라 했습니까?

까미노는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佳人과 함께 힘든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사람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힘든 길이었지만, 당신 덕분에 더 아름답게 생각되고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길도 당신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당신! 고맙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삶이란 녀석은 내게 늘 그랬습니다. 

내게 퍼즐 맞추기처럼 내 삶을 어렵게 흐트러뜨려 놓고는 맞추어 보라고 합니다.

간신히 맞추어 놓으면 다시 흐트러뜨립니다.

그리고 또 맞추라고 합니다.

그래도 佳人은 오늘도 그런 짓궂은 나의 삶을 짝사랑합니다. 

 

삶이란 녀석은 내게 늘 그랬습니다.

가끔 우리 부부의 건강을 시험하고 시련도 안겼습니다.

우리 부부가 가고 싶은 길에 장애물을 놓아두었고 원하는 것을 훼방만 했습니다.

 

지름길을 가르쳐 주지 않고 늘 먼 길을 돌아가게만 했습니다.

늘 알 수 없는 목마름으로 우리 부부를 방황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만큼 우리를 토닥거려 주지도 않았고 늘 우리에게 눈길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면 언제나 더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佳人은 우리의 얄미운 삶을 아직도 짝사랑합니다.

언젠가는 佳人을 향해 미소를 지을 때까지....

 

당신 그거 아세요?

지금까지 佳人이 살아온 힘은 바로 당신입니다.

내기 힘들어할 때 언제나 미소 지으며 나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바로 당신뿐입니다.

그런 당신을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쵸?

 

오늘 You raise me up이라는 노래를 당신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난 누구의 You raise me up입니까?

혹은 당신은 또 누구의 You raise me up이십니까.

힘들고 험한 세상일지라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이런 격려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