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뽀의 고향 메리데를 향하여 (까미노 네 번째 날)

2015. 2. 11.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메리데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뿔뽀(PULPO)라는 문어요리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우리의 문어숙회라 보시면 됩니다.

문어란 우리에게는 익숙한 음식이고 또 이곳의 뿔뽀는 한국인의 입맛에 아주 잘 맞는 음식이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한국인은 누구나 뿔보요리를 맛보고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인 뿐이겠어요?

까미노를 걷는 모든 사람이 여기에 들러 문어요리를 먹고 갈 겁니다.

 

메리데는 바닷가 마을은 아니지만, 바다가 멀지 않고 수송이 쉬운 곳에 있기에

예전부터 문어요리가 발달한 곳이라 합니다.

그게 어디 메리데뿐이겠습니까?

문어 요리는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어느 곳이나 쉽게 맛볼 수 있지만, 메리데가 까미노에 있기에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에 의해 여러 나라 사람에게 널리 알려졌겠지요.

 

지난밤에는 우리가 머문 3층에는 우리 부부 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아 아주 편하게 잤습니다.

사실 그동안 시차로 말미암아 늘 새벽 2-3시에는 잠에서 깼는데 코골이 사내 덕분에 전날 밤에 한숨도 못 잤기에

지난밤에는 아주 새벽까지 한 번도 깨지도 않고 푹 잤습니다.

 

코골이 때문에 그때는 힘이 들었지만, 그 사내로 말미암아 시차 적응을 완벽하게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 할까요?

2014년 10월 6일 월요일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메리데까지 그리 멀지 않은 15km의 여정입니다.

 

이제 까미노를 걷기 시작해 네 번째의 날입니다.

그동안 걷는 일에 적응이 되었는지 그렇게 힘이 든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울 마눌님은 무척 힘들어하는 표정입니다.

평생 이렇게 먼 길을 걸어본 게 처음이 아니겠어요?

그렇기에 까미노를 완주하면 평생 잊지 못한 추억 하나를 만들 겁니다.

 

사실 체력도 약한 사람이라 집에 있을 때도 산책하러 나갔다가 2km 정도만 지나면 힘에 부친다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곤 했기에 이렇게 걸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까미노를 시작할 때 가다가 힘들면 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냥 환상적인 아름다운 길이라는 말에 덜컥 따라나섰기에...

나중에 물어보니 일단 출발하면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쉴 수 있기에 걸었다고 합니다.

그냥 걸어도 만만한 거리가 아닌데 배낭까지 메고 걸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佳人의 말에 낚여서 걸었든 원해서 걸었든 부부가 함께 걸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이 아니겠어요?

어디 낚인 게 이 번뿐인 가요?

처음부터 낚여 결혼했고 평생을 낚여서 살아가고 있는 걸요.

제가 낚여 사는데 낚였다고 한다고요?

 

배낭을 꾸려 아래층으로 내려와 간단한 아침을 먹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통닭이 아니고 빵입니다.

포크를 쿡 찍어 주네요.

이 사진을 카톡으로 친구에게 보내며 아침 식사라고 하니 친구가 아침부터 웬 통닭을 먹느냐고 하네요.

우리 나이에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이 빵이 통닭으로 보이지 싶네요.

오렌지 주스 한잔과 커피 한잔 이렇게 1.5유로입니다.

우리 돈으로 2천 원 정도이니 제법 착한 가격 아니겠어요?

 

아침 8시에 숙소를 나섭니다.

우리나라의 아침 8시면 이미 해가 중천에 솟아올랐겠지만, 이곳의 8시는 아직 어둡네요.

그러나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은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1층뿐인가 배낭을 멘 사람들로 아주 혼잡하네요.

 

오늘의 길은 무척 걷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차도 옆으로 걷는 길도 없고 언덕도 별로 없는 평탄한 길입니다.

오직 숲만 우거진 그런 멋진 길입니다.

이런 길만 있다면 온종일 걸어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모두 비옷을 꺼내 입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나 봅니다.

숲길이 좋다고 했더니만, 바로 비를 뿌려 응징합니다.

 

우리는 출발할 때 비옷을 미리 준비해오지 않았습니다.

가을이 우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리가 입은 옷은 방수가 된다고 선전하는 옷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또 비옷 자체가 하나의 짐이라 생각해 준비하지 않았지요.

 

배낭도 방수 커버가 있는 것이기에...

까미노를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봅니다.

갈리시아 지방의 우기를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순례자는 판초 우의를 준비해 배낭까지 안전하게 덥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엄숙한 종교적인 행진을 보는 듯합니다.

어떤 일행은 검은 비옷으로 맞춤이라도 한 듯 걷는 모습이 진짜 순례자라는 느낌이 들기조차 하네요.

암흑의 전사들인가요?

 

한참을 걷다 우리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휴대전화의 GPS를 무척 요긴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다른 나라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지만...

이제는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더라도 누구에게 우리가 내려야 할 지역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불안한 심정으로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문명의 이기는 사용하면 할수록 편리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나이에도 이제는 디지털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까미노에서는 우리의 위치와 가는 방향 그리고 남은 거리까지 알려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서는 아무도 방향이나 남은 거리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가 봅니다.

 

점차 빗방울이 더 거세집니다.

오늘의 길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비만 아니라면 정말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길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정표에 누군가 낙서를 한 모습입니다.

마을 이름인 MATO 앞에 TO를 덧붙여 토마토 마을이 되었습니다.

이런 장난에 힘든 길이지만, 슬며시 미소 한 번 짓고 갑니다.

반대로 가면 헉!!! 카사노바?

 

까미노 길에서 굶을 일은 없습니다.

적어도 한 시간 정도만 걸어가면 이런 식당이 보입니다.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까미노에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돈만 들고 걸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제일 위에 보이는 보카디요는 사리아에서 출발할 때 佳人을 배신한 그 돌덩이 같은 빵이지 싶습니다.

아마도 위의 나라는 까미노를 즐겨 걷는 사람들의 출신 국가인가 봅니다.

우리는 이미 아침을 먹고 출발했기에 오렌지를 직접 짠 수모 나투라를 2유로에 한 잔 마시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했습니다.

살아가는 도중에 평탄한 삶은 결코 아름다운 삶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지 싶습니다.

사랑은 아파하고 안타깝고 미워하며 더 강해집니다.

우리의 삶은 아직도 사랑 만들기의 진행형입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