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드 호수 안의 외로운 섬

2014. 3. 13. 08:00동유럽 여행기/슬로베니아

 

연닙희 밥 싸두고 반찬으란 장만 마라
닫 드러라 닫 드러라
청약닙(靑蒻笠)은 써 잇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한 백구난 내 좃난가 제 좃난가

 

고산 윤선도님의 어부사시사의 한 구절입니다.

벼슬도 떠나고 욕심도 모두 버리고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65세의 나이...

그 속에 나오는 단어는 우리가 늘 보는 그런 모습이지만, 시조를 통한 이야기는 현실과의 단절이 아닌

서로 간의 교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잉? 그러나 여기에는 백구는 없고 청둥오리만 있습니다.

배 위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니 갑자기 예전에 배웠던 고산 윤선도 님의 어부사시사의

한 구절이 떠올라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이 시조 외우느라 손바닥에 불 날 정도로 맞았습니다.

그때는 플라스틱 자가 없고 대나무로 만든 자의 모서리로 주로 때렸습니다.

정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어요.

 

그랬기에 아직도 윤선도 님이 이 시조를 지은 나이에 佳人의 나이가 비슷해져도

그 시조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나 봅니다.

그래서 배만 타면 자동으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가 입에서 흥얼거립니다.

바다가 아니고 호수면 또 어떻습니까?

배만 타면 노 젓는 소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만약, 자동으로 이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고문 선생님이 또 손바닥 내밀라고 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오늘의 뱃사공은 삼베 바지저고리를 입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고 선글라스에 서양인 뱃사공입니다.

힘 좀 쓰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입니다.

 

잠시 배를 타니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의 선착장에 금세 도착합니다.

위의 사진 왼쪽에 끝에 보이는 시멘트 구조물이 선착장이고 계단을 통해 성당으로 올라갑니다.

 

이 블레드 섬의 탄생에 대해 이 지방에 전해오는 전설이 있답니다.

오늘 그 이야기나 듣고 갈까요?

궁금하면 무조건 물어보고 가야 합니다.

그게 佳人의 성격이니까요.

 

원래 이곳은 지금처럼 호수가 아니라 초원이 있는 목초지였다네요.

오래전에 이곳의 나지막한 언덕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작은 성당이 지어졌답니다.

지금 바로 우리가 배에서 내려 올라온 곳이 그때의 언덕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 부근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던 양들이 가끔 열린 성당 문을 통해 누구의 제지도 없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곳 지역주민들은 예배 장소를 더럽히는 동물에 전혀 개의치 않고 무관심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으로 울타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주민 어느 사람도 양들이 드나드는 것을

막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 두다가 화가 났나 봅니다.

누구나 자기 집을 더럽히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볼 사람 없습니다.

그래요. 하나님도 참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에잇! 이 녀석들 나의 힘을 보여주마! "

화가 난 하나님은 이 지역에 비를 관장하는 인드라 신을 보내 홍수를 불렀고 홍수로 말미암아

초원을 물에 잠기게 되었답니다.

 

앗! 佳人의 실수입니다.

신을 잘못 보냈습니다.

인드라 신은 힌두교에서 비를 관장하는 신이었습니다.

바로 머리가 셋이나 달린 아이라바타라는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는 인드라 신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비를 퍼부었는지... 

그러니 지금 성당이 있는 언덕만 물에 잠기지 않았다네요.

그게 설마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아니겠죠?

결국, 하나님은 위의 사진처럼 호수로 울타리를 만들어 신성한 예배장소를 보호했다고 말이 되겠네요.

 

하나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그때 주민 모두가 양들이 예배당 안으로 들락거리며 지저분하게 만들어서요.

하나님도 그때 무척 속이 상하셨나 봅니다.

 

배에서 내려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모두 99계단이라고 하더군요.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까?

아래서 올려다보니 마치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보입니다.

 

워낙 작은 섬이기에 성당 구경하고 소원의 종도 울리고 섬 주변을 산책도 하며

여유를 실컷 부려도 30분 안에 모두 끝이 납니다.

데운 술이 식기도 전에 관우가 화옹의 목을 베는 시간과 비슷합니다.

그래도 무척 많은 생각을 하며 쉴 수 있는 곳입니다.

 

고성, 호수 그리고 호수 안에 작은 섬이 있고 그 섬으로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면 섬 한가운데에 제일 높은 곳에

아주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이야기로만 들어도 무척 느낌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이 성당이 바로 효능효과가 뛰어난 곳이라 소문이 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네요.

무슨 효능효과?

 

우리가 들렀을 때는 신혼부부가 없었지만, 이곳은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 곳이라네요.

특히 결혼식을 여기서 올리는 신혼부부도 무척 많다고 합니다.

 

이제 올라왔습니다.

소원의 종(Wishing Bell)이라 불리는 종이 있는 곳.

종탑이 앞에 보입니다.

그 효능효과는 바로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배만 도착하면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종소리가 울린답니다.

우르르 몰려 올라가 줄을 서서 쉴 새 없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가기 때문이겠죠.

 

예수님은 얼마나 피곤하시겠어요.

쉴 시간도 별로 없이 이곳에 온 관광객마다 모두 계속 종을 울려대니...

어디 모든 이의 소원을 기억이나 하겠어요?

원래 처음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순례자가 소원을 빌며 종을 울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순례자는 거의 없고

우리 같은 관광객만 바글거립니다.

순례자는 이곳에 도착해 소원을 빌며 종을 울렸다고 해서 이 성당의 종이

바로 소원을 이루는 종으로 알려진 게지요.

 

종소리가 울리면 그 소리는 하늘의 성모 마리아에게 전달되고

성모 마리아는 "오냐~ 알았다."라고 응답한답니다.

거짓말이라고요?

아닙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한 우리 아들이 종을 울리며 소원을 빌었는데 귀국해 바로 아들이 원했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지금 정신없이 바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당 입구의 반대편에 작은 십자가 하나가 보이네요.

내일 성당 안팎의 모습을 돌아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블레드 호수 안에 외로운 섬이 하나 있습니다.

그 섬 안에 작은 성당이 있고 그 성당 안에는 아주 효능효과가 좋은 종을 매단 종탑이 있습니다.

그 종탑의 종을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마케팅을 한 결과 이 섬을 찾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이제는 섬은 더는 외롭지 않습니다.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