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 언덕의 마치시 성당과 광장 모습

2014. 1. 24. 08:00동유럽 여행기/헝가리

 

어부의 요새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작은 광장이 있고 그 광장 한가운데 성당이 보입니다.

이 성당이 바로 마차시 성당이라고 합니다.

마차시 성당의 개축을 담당했던 건축가 프리제시슐레크는 세체니 다리까지 지었다고 하네요.

성당 광장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다리가 보입니다.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은 같은 곳에 있는 유서 깊은 그런 성당입니다.

고딕 양식의 건물로 옛날 헝가리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된 아주 유명한 성당이랍니다.

하얀색이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눈이 부십니다.

 

네오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어울린 건축 양식이라네요.

하얀 외벽과 긴 회랑으로 이어진 어부의 요새와 어울려 제법 멋진 풍경을 연출합니다.

부다페스트 여행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얼굴 내미는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여기지요?

이미 우리는 이곳의 모습을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보았기에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헝가리를 지키자는 애국정신이 가득한 상징적인 곳이리라 생각됩니다.

여기서도 도나우 강과 페스트 지역의 모습으로 조망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우리로 치면 강남과 강북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있듯 여기는 동서로 나누는 영어 이름이 다뉴브라고 하는

도나우 강이 있습니다.

큰 도시는 이렇게 모두 강을 끼고 형성되었습니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입니다.

그러나 수도라 하기에는 큰 빌딩이 별로 보이지 않는 아주 중세 기분이 드는 그런 곳입니다.

위의 사진에 멀리 보이는 높은 첨탑의 건물은 바로 성 이슈트반 대성당으로 부다페스트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라고 합니다.

헝가리를 반석 위에 올린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성당이랍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죽어서는 성인으로 대접받는 영웅이라고 합니다.

 

위에 보이는 웅장한 건물은 지금 국회의사당으로 사용 중인 건물이랍니다.

밤에 보았던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곳이죠.

위의 두 건물이 다른 건축물 높이에 기준이 되는 건물로 이보다 더 높은 건물은 지을 수 없다고 하네요.

왜?

그게 이 나라의 통념이라 합니다.

 

마차시 성당은 1225년에 건축을 시작해 1269년에 완공한 성당으로 1867년 헝가리 왕에 즉위한 오스트리아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와 황후 엘리자베트 황후의 대관식을 이곳에서 치렀다고 하네요.

원래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라 합니다.

그때는 오스트리아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큰 나라이기에 헝가리까지 지배했던 시대로 당시 국가의 문장을

머리 둘 달린 독수리가 의미하는 게 바로 헝가리 국왕까지 겸임했기에 왕관을 두 개나 쓰려니 독수리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도 아닌 이상한 독수리가 되었다지요?

 

여기 광장을 중심으로 이곳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 성 이슈트반 청동 기마상, 그러나 삼위일체탑은 보이지 않습니다.

탑은 마차시 성당의 뒤에 있어 가려버렸나 봅니다.

 

이곳의 남쪽에 마차시 후냐디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기에 지금은 마차시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네요.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 한때 이슬람 사원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답니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며 물러가자 다시 성당으로 사용한다더군요.

세월이 흐르며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라 그들이 모시는 신도 인계인수하나 봅니다.

 

많이 아프겠다...

위의 사진을 보니 손발이 묶여 화살 맞은 조각상이 있습니다.

바로 화살 맞은 성 세바스티안입니다.

허벅지에 하나, 심장에 하나, 그리고 오른팔에 하나...

그러나 얼굴 표정은 아주 평온한 모습입니다.

 

사실 역사란 전쟁과 종교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교와 전쟁이 만나서 서로 다투게 되면 그게 역사의 아주 큰 획을 긋는다는 말이겠죠.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도 동로마 시절에 만든 성당이지만, 오스만 튀르크가 점령하며

지금까지 모스크로 사용 중입니다.

부수고 헐기보다는 이렇게 유적을 서로의 편의에 따라 재활용하면 어떨까요?

 

그게 우리 인류 모두의 유산이 아닌가요?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니고 어느 민족의 것도 아닌....

우리가 하는 아나바다 운동을 이들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오스만 제국은 어느 지역을 침공하면 3일간 자유롭게 병사들에게 약탈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합니다.

그게 함께 전쟁을 수행한 병사에게 보상하는 의미일 겁니다.

그래도 성 소피아 성당은 "빠셔 버릴까요?"라고 물었을 때 "냅둬!"라고 했기에 지금까지 1.500여 년을 견디며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으며 얼마 전까지 모스크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바로 위의 사진이 아야 소피아라는 1.500년이 넘은 성당의 내부 사진입니다.

정말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이 아닙니까?

"피의 그믐달"이라고 부르는 1453년 5월 29일에 술탄 메흐메드 2세는 그동안 갈고닦은 전쟁을 통하여

그동안 뿌리를 내리며 살았던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콘스탄티노플을 접수합니다.

콘스탄티노플이 지금의 이스탄불이지요.

 

그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제거하기 위해 제일 먼저 김종서를 찾아가 철퇴로 내려치며

계유정난이 일어난 해였을 겁니다.

술탄이 아야 소피아에 안에 들어와 이 광경을 보고 흠칫 놀랐을 때 그의 부장이 뭐라 했겠어요?

"고객님! 많이 놀라셨어요?"라고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천장의 회를 칠하고 그 위에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쓴 부분을 벗겨내니 예수의 모습이나 가브리엘 대천사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났습니다.

 

마차시 성당의 지붕은 도자기 타일로 만들어 붙였기에 눈에 띄게 조금 특색이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더 색이 곱고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삼위일체 탑이 여기도 있습니다.

여기는 다른 곳과는 달리 탑도 하얗게 관리되고 있네요.

이 탑도 다른 곳처럼 흑사병이라는 페스트가 창궐했다가 퇴치된 기념으로 만든 탑일 겁니다.

 

당시 흑사병은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지요?

아마도 인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종말이 왔는지 알았을 거예요.

신앙의 힘으로 이 도시만은 그런 질병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탑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광장 모퉁이의 흰색 2층 건물은 옛 시청사 건물이라 합니다.

건물 코너의 장식은 부다페스트의 수호신이라 합니다.

 

마차시 성당 앞으로 청동 기마상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뉘시우?"

 

바로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라는 헝가리 초대 국왕인 성 이슈트반 기마 동상입니다.

헝가리에서 이슈트반의 위치는 대단합니다.

머리의 쓴 관 주위의 둥근 원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 성인의 반열에 등극했다는 라이선스일 거고요.

 

이슈트반 국왕은 이중 십자가를 손에 들고 있는데 그 의미는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리고 대주교 결정권도 교황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청동 기마상을 받치고 있는 기단에는 네 곳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그런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올랐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공으로 이중 십자가를 들고...

 

1083년 이슈트반 왕은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대관식 장면이 교황 그레고리오 7세로부터 헝가리의 사도 왕이라는 칭호를 받는 장면이 아닐까요?

관을 수여하는 교황의 머리에는 원이 보이지 않지만, 이슈트반의 머리 주위에는 원이 보입니다.

인간이 성인에게 하관식을?

 

아시아로부터 흘러온 민족이 유럽의 일원이 되고 그들 속으로 동화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일이 바로

유럽의 대세였던 기독교를 받아들인 일일 겁니다.

이렇게 성당을 지어 봉헌함으로 이방인이 아닌 당당한 그들의 일원으로 말입니다.

이 의미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는 의미겠지요?

 

이미 1906년에 만든 것으로 그 동상 아래 단에는 네 곳에 그의 업적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슈트반 국왕은 사후 성인으로 추대되어 그는 헝가리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남아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 보았던 모습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의 핵심일 곳 같습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도 보이고..

역사도 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