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전설의 새 툴루

2014. 1. 28. 08:00동유럽 여행기/헝가리

오늘은 부다 왕궁에서 보았던 전설의 새 툴루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비엔나 문 옆으로 두나 강을 내려다보며 페스트 지역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조형물 하나가 눈에 보입니다.

 

바로 헝가리 사람들에게는 전설의 새라는 툴루라는 새입니다.

오늘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전설의 새 툴루에 대해 이야기하렵니다.

처음 헝가리를 세울 때 일곱 명의 족장이 모여 나라를 세웠다 합니다.

그중 우두머리인 아르파드는 새의 아들이라 합니다.

 

이곳에 만든 새의 크기가 엄청나게 큽니다.

왕궁 아래서 찍은 위의 사진을 보면 오른쪽에 툴루라는 새가 보일 정도로 큽니다.

아마도 아르파드가 새에서 나왔다면 알에서 나왔나 봅니다.

그럼 아르파드의 머리는 새 머리?

 

그래서 먼저 툴루의 머리를 유심히 찾아보며 탐구생활에 들어갑니다.

아닙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독수리의 몸과 날개에 용의 머리를 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용 이상의 동물은 없습니다.

용은 바로 황제를 의미하잖아요.

헝가리를 세운 아르파드는 인간의 자손이 아니라 용의 자손인 셈입니다.

 

우리나라도 알에서 태어난 이야기가 있듯...

이렇게 나라마다 그 나라 시조는 알에서도 나오고 바위에서도 나오지만,

지금은 그런 기적은 없습니다.

왜?

옛날에 그런 기형적인 모습으로 다 나오고 이제는 품절이니까요.

 

여기에 만든 툴루라는 전설의 새는 양발로 칼을 움켜잡고 있는데 그 칼 끌이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한다 합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다칠까 겁납니다.

 

툴루라는 새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 옆에 있습니다.

위의 문이 바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광장에서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문을 비엔나 문이라고 부른다네요.

 

예전에 신성로마제국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을 때를 잊지 말자는

의미일까요?

그러면서 왜 여기저기에 합스부르크 시절 장군의 동상도 세우고

황후의 이름으로 다리 이름을 정했을까요?

 

안을 들여다보면 이런 모습이지요.

저 앞에 멀리 기마 청동상 하나가 보입니다.

 

왕궁 앞에 세워놓은 청동 기마상의 주인공은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헝가리를 독립시킨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라데츠키 장군이라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 손을 흔드는 사람은 절대로 라데츠키 장군이 아닙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영웅으로 요한 슈트라우스는 그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행진곡인 라데츠키 행진곡을 작곡해 이탈리아에서 개선해 돌아오는 라데츠키를 위한

개선 축하회에서 연주하였다 합니다.

지금도 세상 어디를 막론하고 행진곡으로는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곳이지 싶습니다.

 

이슈트반 1세가 헝가리를 건국한 후 독립국으로 잘 지내던 헝가리는 몽골군의 침략으로

그 시련을 겪기 시작합니다.

몽골이 쓸고 지나간 후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에 따라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여기 부다의 언덕에 새로운 왕궁을 짓기 시작했다네요.

 

이 궁전이 완공되자 헝가리는 에스테르곰이라는 곳에서 이곳으로 왕궁을 옮깁니다.

그때가 13세기 중반경이었다 합니다.

 

이제 우리 일행은 왕궁을 떠나 세체니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역으로 넘어갑니다.

이번에 구경할 곳은 영웅광장입니다.

저 멀리 겔레르트 언덕이 보이고 그 위에 종려 잎을 든 여신상이 보입니다.

앞에 보이는 다리가 에르제베트 다리 그리고 보일락 말락 한 다리가 자유의 다리라 합니다.

 

그러나 이 부다 왕궁은 이번에는 한 핏줄인지도 모르는 돌궐의 후예 튀르크 족의 나라인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을 받아 다시 파괴되었답니다.

새살이 돋아나오기 전에 그 자리에 또 상처를 주면 더 아프잖아요.

 

마자르족인 헝가리는 훈족과 돌궐인 튀르크 족과 이웃사촌 간인지 모르는 흉노족에서

가지를 친 민족이라는 설도 있다네요.

 

그러니 이웃사촌이라고 믿었지만, 땅따먹기에는 이웃이고 형제고 없나 봅니다.

 

그 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에 의해 연합국가 형태로 이어오다 나치 독일에 얻어터지고

또 소련의 영향 아래 놓이고...

정말 부다왕궁은 너무 힘든 세월을 보냈나 봅니다.

강대국 사이에 있기에 힘이 약한 나라의 비애가 아니겠어요?

 

우리가 지금 돌아본 지역은 헝가리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라도 찾는 곳일 겁니다.

왕궁과 세체니 다리 그리고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

이 지역이 바로 헝가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왕궁은 그 흔적만 남았고 모두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도서관으로 이용된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적은 그냥 왕궁으로 보존하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왕정시대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며 그 맥을 끊기 위해 그리 했을까요?

절대군주시대가 막을 내리며 민초를 주인으로 섬긴다는 세력도 그 또한 새로운 절대군주가 아닌가요?

왕궁으로 지은 건물은 왕궁으로만 그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을 하다 보면 개인적인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나라의 정책이나 사상에 따라 그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적의 힘은 순수한 그 목적과 정신대로 보존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