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강산 제일루

2014. 7. 25.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위의 사진은 황학루 5층에 오르면 볼 수 있는 10폭의 대형 벽화라고 합니다.

제목이 강천호한(江天浩瀚)으로 장강의 넘실거리는 파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냈으며 황학루의 변화를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형 벽화랍니다.

 

이 앞에 서면 정말 장강의 한가운데 서서 그 소용돌이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장강은 바람이 없는 날이면 그냥 밋밋한 강이었습니다.

장강이 태평양 한 가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런 소용돌이는 과장된 모습이 맞습니다.

 

황학루는 밖에서는 5층으로 보이지만 실제 안에서는 9층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군요.

황학루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주천과 난홍이라는 두 누각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네요.

황학루는 악양루와 등왕각과 더불어 중국의 삼대 명루로 꼽힌다 하네요.

그냥 바라만 보아도 대단한 누각으로 보입니다.

 

일층에 들어서면 먼저 10여m 높이의 도자기로 만든 대형벽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황학루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이 벽화에 새겨져 있답니다.

백운황학(白雲黃鶴)이라는 벽화라네요.

 

전설에 의하면 중국의 8대 신선 중 한 명인 여동빈이 신분을 감춘 자신에게 1년씩이나 공짜 술을 베푼 술장수

신 씨를 위해 학 벽화를 그려 귤로 노란색을 입혀 주면서 손뼉을 치면 이 학이 밖으로 나와

춤을 출 것이라고 말했다네요.

어느 이야기는 여동빈이 아니라 비문위(費文褘)라고도 하더군요.

그게 무슨 상관이 있어요?

꾸며낸 이야기인데요. 그쵸?

그럼 이 앞에 서서 발장단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골라 골라!"라고 해볼까요?

 

이게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이니까 당연히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손뼉만 치면 그림 속의 학이 나와 춤을 춘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을 것이고

덕분에 많은 돈을 번 신 씨는 다시 돌아온 여동빈이 그 학을 타고 떠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황학루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하네요.

 

당나라 때 염백리(閻伯理)가 지은 황학루기(黃鶴樓記)도 새겨져 있습니다.

2층에는 손권이 전망대를 건설할 당시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벽화가 있답니다.

 

3층에는 시대별로 황학루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형 누각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당나라 때의 황학루라고 합니다.

 

황학루도 시대에 따라 수없이 변천을 겪었나 봅니다.

송나라 때도 역시 2층 누각이었네요.

 

명나라 때부터는 한 층이 더 높아져 3층 누각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청나라 때는 5층으로 원래 높이보다 두 배나 높아져 웅장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때까지는 목조 누각이었다 합니다.

결국, 광서제 때 주변 인가에서 화재가 발생해 황학루로 번졌고 다시 짓는 과정에 위치를 지금 장소로 옮겼으며

3층 구조를 5층으로 변경되었으며 높이도 두 배로 높아지게 되며 한 층이 중층 구조로 내부는 10층으로 변했다네요.

 

 

이게 현대 지금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콘크리트에 목조를 덧대 지은 것으로 안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한 모양입니다.

 

4층에는 이백(李白)과 최호(崔顥), 악비(岳飛) 등 황학루를 노래한 역대 명인들의 작품과 함께 그림으로 묘사한

문인회췌(文人荟萃)가 눈길을 끈답니다.

 

천하강산 제일루라고 쓴 글자가 보입니다.

이는 미불의 글씨라 합니다.

미불이라 하면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라죠?

 

이곳 황학루는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황학루에 올라 수려한 경치를 노래했지만,

정작 황학루를 대표하는 시는 최호(崔顥)의 등 황학루(登黃鶴樓)라고 하는 시라고 합니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 이곳에 적어봅니다.

 

당나라 때 이곳을 찾은 이백에 주변 사람들이 황학루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시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이백이라고 하면 자타가 최고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다른 사람 같으면 누가 그런 부탁이나 했겠어요?

원래 이런 시인이나 묵객은 풍경 좋은 곳을 다녀가며 늘 기념식수하듯 시 한 수나 글을 남기기를 좋아하잖아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각필정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백도 주위의 많은 사람이 글 하나 남겨달라고 하니 황학루에 올라 붓을 들었답니다.

그때 이백은 이곳에서 장강을 바라보며 시상에 젖어 시를 쓰려다 말고 조용히 붓을 내려놓더랍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인가 하여 궁금해하던 차에...

이백은 최호의 시 등 황학루를 보고 "더는 무슨 말로 황학루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겠느냐"며 붓을 놓았다고 합니다.

 

이백도 염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쓴다 해도 최호보다는 더 잘 쓴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인가요?

그 후 최호의 시는 황학루를 대표하는 시가 되었고, 최호의 명성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로 최호라는 시인은 이백의 이런 행동 때문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합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시비가 시인 최호(崔顥)의 등 황학루(登黃鶴樓)라는 시비입니다.

 

최호(崔顥)기 지은 등황학루(登黃鶴樓)를 다시 보고 가렵니다.


昔人已乘黃鶴去 (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 황학 타고 이미 가버려
此地空餘黃鶴樓 (차지공여황학루) 땅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일거불부반) 한번 간 황학은 다시 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 천 년을 유유히 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 (청천력력한양수) 개인 날 강에 뚜렷한 나무 그늘
春草處處鸚鵡洲 (춘초처처앵무주) 앵무주에는 봄풀들만 무성하네.
日暮鄕關何處是 (일모향관하처시) 해는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인가
煙波江上使人愁 (연파강상사인수) 강의 물안개에 시름만 깊어지네.

 

어때요.

잘 지은 시가 맞습니까?

물론 이백이 이 시를 읽어보고 황학루에 대한 시는 더는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 훌륭한 시에는 분명하겠지만...

佳人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는 속이 상합니다.

佳人도 여기 황학루를 칭송하는 시 한 수 남기려다 말고 최호의 시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기에 그냥 가렵니다.

 

장관이라는 글은 현공사에서 보았는데 여기에서 또 보게 되네요.

그래도 섭섭하다고 여기에 장관이라는 글 하나를 후세사람이 새겨놓았습니다.

황학루는 우한 뿐 아니라 후베이성의 명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만약 佳人이 시상이 떠올라 멋진 시를 썼다면 그 시는 최호가 썼다는 등 황학루를 제치고

대표 시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다행이지요.

지금 웃으신 거 다 압니다.

재미없는 글 읽으시느라 힘들어하시기에 웃으시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도 웃지 않으시면 너무 심각하게 살고 계신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신선 여동빈의 호쾌함이 돋보이는 당시 한 수가 있다고 해 여기 옮겨보았습니다.

당나라 시대, 어느 날 동정호에 달이 휘영청 뜬 밤, 여동빈이 홀로 악양루에 올라 이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자영(自詠)   스스로 읊노라

獨上高樓望八都   독상고루망팔도
墨雲散盡月輪孤   묵운산진월륜고
茫茫宇宙人無數   망망우주인무수
幾個男兒是丈夫   기개남아시장부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검은 구름 흩어지고 둥근 달만 중천에 외롭게 떠있다.
망망한 우주에 사람은 많고도 많은데
사내대장부라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