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100만 대군 동원이 과연 가능한가?

2014. 6. 11.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어제 이어 오늘도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계산기부터 두드려가며 시작합니다.

원래 옛날 사람의 식사는 주로 밥으로 해결했으니 아무래도 머슴 밥처럼 밥그릇도 크고

수북이 담았을 것이고 지금이야 다양한 먹거리로 예전처럼 쌀의 소비가 많지 않았지만,

옛날에는 정말 밥을 많이 먹었다 합니다.

그래서 계산기로 두드려 보겠습니다.

 

왜?

장강이라는 강 위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며 지금 보이는 풍경도 자꾸 보니 지겹잖아요.

그래서 이런 놀이를 해보렵니다.

날씨마저 운무로 맑지 못해 그 풍경 또한 온종일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이 도움될 것인가 고민하시겠지만,

佳人은 태생적으로 그런 일에 둔감할 뿐 아니라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생각해 내지도 못합니다.

 

하루 1kg이 정량으로 계산해 이것을 100만 명이 먹는다 생각하면 하루에만 쌀이

1.00.000kg이 필요하고 전쟁이 한 달만 계속되었다 해도 30.000.000kg으로

보통 20kg 정도의 쌀포대로 환산하면 1.500.000포대가 됩니다.

계산이 맞나 모르겠습니다.

틀리더라도 이해하시며 보세요.

그 정도의 쌀을 운반하고 보관하려면 사실 전투보다 더 힘든 게 이동과 보관이 아니겠어요?

매달 쌀을 실어오고 보관하는 일이 전투보다 더 힘든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밥만 먹습니까?

부식으로도 또 그만한 양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것을 사람이 일일이 짐을 지고 나를 수 없고

그렇다고 트럭도 없었으니 대부분 우마차를 이용해 일일이 운반했을 겁니다.

포장도 되지않은 옛날의 길이란 또 어땠을까요?

지금과는 달리 무척 열악했을 겁니다.

 

그러면 소나 말은 로봇도 아니고 먹어야 운반할 게 아니겠어요?

지금이야 트럭으로 나르고 기차로 나를 수 있지만, 당시는 겨우 말이나 소를 이용한 수레가 전부였을

것이기에 그러면 소나 말도 자신이 먹을 건초더미도 날라야 할 게 아닙니까?

 

식량을 운반하는 소나 말은 자기가 먹을 건초는 자기가 책임지고 다닌다 하더라도 전투에

투입되는 말은 누가 대신 건초를 실어다가 주어야 할 게 아니겠어요?

천지가 풀밭이라고요?

그럴 수 있겠네요.

 

전투에 투입되는 말에게 건초더미를 짊어지고 전투하라고 할 수도 없거니와

한 번도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소는 가끔 신선한 고기 제공을 위해 스스로 살신(殺身)하면

그 소가 져 나르던 군수품은 누가 나릅니까?

소 잡아 먹은 사람보고 대신 져 나르라고 하라고요?

왜 그러셔요~

전쟁에 임해 불안한 병사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닙니까?

 

거기에다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솥도 필요하고 임시 주방도 만들어야 하고...

이동하면서 만들어 사용한 임시 화덕에 대한 이야기도 소설 속에서는 자주 나옵니다.

화덕 숫자로 군사의 숫자를 유추하는 일 말입니다.

공명도 적을 혼동시키려고 제법 여러 번 화덕 숫자를 가지고 장난하기도 했잖아요.

 

또 이 군량미를 보관하는 장소도 필요합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일이지요.

소설 속에서도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식량창고를 불태우고 병기창고를 불태움으로

전투에 유리한 처지가 되어 결국,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올 만큼

식량은 아주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제압할 때 거의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떻게

목숨만 부지해 후퇴할까 고민하다 적의 식량기지와 병기창고를 불태움으로 일시에 전세를

역전하고 중원 이북지방을 모두 손에 넣고 천하를 호령할 기반을 닦기 시작했잖아요.

 

군량미를 보관할 때 비를 맞으면 쌀만 슬픈 게 아니라 그걸 먹어야 하는 군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기에 군사의 사기란 바로 전투력입니다.

전투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잖아요.

그 전투력은 바로 배부르게 먹은 밥심입니다.

 

식수는 또 헬리콥터로 공수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적벽대전은 무척 다행이지요.

물 위에서 싸웠으니까요.

 

그래도 식수문제로 수인성 질환이 발생해 전염병으로 발전해 결국,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이릉전투가 벌어진 효정산 전투장에도 유비가 배탈 난 병사 때문에 고심했던 흔적이

남아있는데 나중에 이릉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못가시는 분을 위해 나중에 佳人이 직접 사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100만 명의 군사가 장강의 물을 한꺼번에 마신다면 장강 물이 마를 것이고

한꺼번에 모여서 쉬를 하면 장강이 넘칠 겁니다.

공명의 1차 북벌에서 마속이 공명의 명을 어기고 산 위에 진을 침으로 식수를 구할 수 없어

패퇴했다고 알려졌듯이 이는 전투란 전투 외에 다른 여러 조건이 다 유리해야

이긴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또 제갈량이 북벌을 하며 이엄의 조카 구안에게 군량의 보급을 맡겼더니 보름이나 늦게 도착함으로

군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결국, 변변한 싸움조차 해보지 못하자 나중에 도착한 구안을

다른 사람 같으면 참수했을 텐데 이엄의 조카라는 이유로 곤장 80대로 다스린 적도 있을 정도로

군량은 전투력과 상응하는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라도 전투가 벌어지면, 그나마 자주 왔다갔다하며 실어나르겠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땅덩어리가 무척 넓어 전쟁이 벌어지는 곳까지 적기에 식량과

군수품을 나르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당시의 열악한 수송로나 운송장비로 볼 때 과연 10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며 전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만약, 한 달 정도만 전쟁했다 하더라도 군사의 이동과 군수품의 이동이

아마도 100리도 넘는 길이 아닐까요?

장수나 말을 탔지 일반 전투병은 모두 걸어서 이동했을 게 분명합니다.

근방에서 약탈하면 된다고요?

 

조조는 군사가 이동할 때 논밭에 난 풀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한번은 군사가 이동할 때 밭에 있는 새가 갑자기 날자 자기가 탄 말이 놀라 잠시 밭에 들어가자

스스로 죄를 청한 적도 있습니다.

바로 위의 그림이 법불가어존이라는 일화를 그린 그림입니다.

 

앗!!!

중국은 밥심으로만 싸우지 않는군요?

중국은 국수를 먹는 인구가 더 많을 겁니다.

특히 위나라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그러니 쌀은 줄이고 대신 밀가루를 실어와야 하겠지요.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려면 중국집 주방장도 많이 필요했지 싶네요.

 

그랬기에 쌀이 늦게 도착하면 수송을 책임진 관리는 참수형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삼국지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100만 명이 아니라 10만 명만 동원하고

100만 명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전투를 위해 100만 명의 군사가 임지로 떠난다면 후미가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전투가 모두

끝났을 것 같기도 하고 트럭을 타고 가기 전에는 모두 걸어서 갔을 것 아니겠어요?

말은 장수만 타고...

 

그런데 당시 인구로 보아 가능했을까요?

아이나 노인을 제외하고 전쟁을 했을 테니까요.

70살 먹은 할머니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고 3살 먹은 아이가 장팔사모를 휘두르기 전에는... 

 

당시에 제법 큰 지방의 인구가 모두 합해 30만 명을 넘기 어려웠다 합니다.

반은 여자이니 빼고 나면 15만 명에 아이나 노인을 제외하면 동원 가능한 인구는 5만 명 정도이고...

그럼 소는 누가 키웁니까?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논문집인 관자(管子)에 이런 글이 있다 합니다.

"한 남자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누군가 굶게 되고 한 여자가 옷감을 짜지 않으면

누군가는 추위에 떨게 된다." 이 말은 아무리 전쟁을 해도 농사를 지을 농부는 있어야 하고

모든 사내를 병사로 동원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아무리 단순무식한 중세라 해도 이 정도의 지혜는 있게 마련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놈 빼고 저놈 빠지고 배경이 있어 빠지고 아파서 빠지고...

심지어 전쟁을 피해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가버리고 없는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빽만 있으면 모두 군대에 가지 않았나 봅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유능하기에 나이가 들면 더 중히 기용되더군요.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그 자식도 병약해 군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

전투가 시작되면 산으로 도망가고 숲 속으로 튀고 나면 이렇게 빼고 빠지면 정말 전투에

투입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인구가 겨우 1만 명에서 2만 명 사이가 아닐까요?

 

그것도 전투가 벌어지면 삼베바지 방귀 새듯 슬금슬금 사라질 겁니다.

삼국지 소설 속에서도 하룻밤 지나고 나니 병사가 반이나 도망가고 없었다는 이야기가 무수히

나오며 지금도 중국의 오지를 다녀보면 이런 곳에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되지만,

전쟁을 피해 숨어들어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원래 전체 인구의 20%를 최대 동원 가능한 군사요원이라고 보고 있다는군요.

원소가 정예군사를 이끌고 참전한 삼국지의 3대 대전의 하나라는 관도대전에 업성에 도착한

군사가 10만 명이라 하니 이 숫자가 가장 큰 전투에 동원된 숫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 당시 삼국의 인구와 병력을 비교한 도표가 있어 사진으로 찍어 올려드립니다.

100만 대군은 얼마나 부풀린 숫자인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런 사실로 비추어 볼 때 10만 명의 군사만 동원해도 대단하니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두 동원한다해도 도성 수비나 다른 지역 수비를 위해 일부는 남기고 떠나야 하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유비가 이릉전투때 7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갔다고 하는데

당시 촉한의 인구가 100만 명도 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부풀린 숫자인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아닐까요?

 

촉한의 경우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고 동오로 들어갈 때 60만 명이니 80만 명이니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위의 도표에 나타난 촉한의 인구가 90만인데 그럼 유비는 무슨 재주로

남녀 가리지 않고 갖난 아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모두 동원해

그 멀고도 먼 이릉으로 들어갔단 말입니까?

 

그때 업성에서 우리가 보았던 전병동이라는 토굴 말입니다.

그때도 조조는 관우에게 군사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회전문처럼 계속 백만돌이 놀이를

했다고 했고 삼국지에 나오는 시기는 많은 전란으로 인구도 줄었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깊은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을 것으로 아무리 동원해도 어느 나라나 1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라 여겨지네요.

 

그리고 동원하면 무엇합니까?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군사가 반이나 도망가고 없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걸요.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내일은 유비의 탐욕이 만든 이릉전투가

벌어진 이창으로 간 이야기부터 하렵니다.

그곳에서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불살랐던 효정산 전투장도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적벽대전에서 과연 조조의 군사가 100만 명이었을까요?

배 한 척에 100명만 타도 전투함이 만 대나 필요합니다.

그 배로 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지들끼리 부딪혀 다 깨지겠습니다.

어디 조조의 군선만 있겠어요?

오나라 주유의 전투함도 있어 장강은 교통경찰을 배치하고 신호등을 설치해도

체증이 심해 꼼짝도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