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운병도 안의 여러 시설들

2014. 8. 11.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조조 운병도 안에는 아무도 없고...

마눌님도 지하는 싫다고 들어오지 않겠다 하여 혼자 기웃거리며 다닌다는 일이 유쾌하지는

않으며 사진상으로는 밝아 보여도 사실, 운병도 안은 무척 어둡습니다.

조명시설이라고는 우리나라에서 도로 공사 중일 때 밤에 비닐 호수 안에 희미하게

불을 밝히는 그런 것으로 만든 것뿐입니다.

 

조조 운병도는 지하라 습도가 높고 기분이 상쾌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혼자 컴컴한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출구도 보이지 않네요.

다른 관광객이라도 있다면 덜 심심할 텐데...

 

위무는 조조의 시호로 생전 조조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지요.

염치를 아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조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걸림돌이 무엇이 있었겠어요.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권했지만, 조조는 제후인 위왕으로 만족하고

말았고 한실부흥이라는 명분으로 기병하여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비와는

분명 다른 행보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조조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조비(曺丕)에 의해 위무제(魏武帝)로 추존되는 바람에

얼떨결에 위무제가 되었다네요.

 

189년 뤄양에 들어와 권력을 휘어잡은 동탁은 어린 황제였던 소제(少帝)를 폐하고

더 어린 9세의 헌제를 황제로 옹립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동탁 스스로는 태위(太尉)가 되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전횡을

저질렀으며 동탁 또한 한때 바람을 일으킨 풍운아가 분명합니다.

그도 황제의 꿈을 키웠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지요.

 

이에 왕윤을 중심으로 동탁 제거를 모의하지만, 그게 바로 고양이 목에 방을 달자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고 이에 젊은 조조는 왕윤 사도의 집에 들러 자기가 나서겠다고 하며

왕윤 사도의 가보인 칠성검을 받아 동탁의 멱을 따겠다고 들어가게 되었지요.

모두가 동적을 척살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어느 누가 스스로 나서

행동에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을 때 불가능에 도전한 사내가 바로 조조였습니다.

조조... 정말 괜찮은 사내 아닌가요?

 

마침 여포도 외출했고 돌아누워 낮잠을 즐기는 동탁을 보고 거사를 하려는 찰라 그만,

거울에 칠성검이 번쩍이는 게 보이는 바람에 동탁에게 좋은 보검을 구했기에

드리려고 왔다고 둘러대고 도망을 가게 되었답니다.

도망하는 길에 조조의 명성에 처음으로 낙인이 찍힌 여백사 가족을 모두 죽이는 불행한 일이

생겼으며 비록 조조는 이력서에 악인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들켜 도망가다 생긴 사고가 아닐까요?

조조에 쫓기는 자가 위급한 상황에서 판단 잘못으로 우발적인 사고를 치게 되었잖아요.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얼마 못 가 동탁의 전횡을 견디다 못한 각 지방의 군벌이 들고일어나

동탁을 압박하자 처음에는 화옹을 내세워 연합군을 압박했지만, 소설 속에서는 관우가 술이

식기도 전에 화옹의 목을 따서 들어왔고 이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동탁은 네로가 로마를

불 질렀듯이 뤄양을 불태워버리고 어린 황제를 앞세워 지금의 시안인 장안으로

천도를 감행해버립니다. 
말이 좋아 천도지 사실 황제 납치가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이때도 조조는 장안으로 가는 동탁을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회맹에 모인 군벌 각자는

속으로만 주판알을 튕기며 잇속을 챙기기 급급했지 어느 제후 하나 나서서

 조조의 말을 귀담아 듣지않았지요.

결국, 조조는 다른 군벌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동탁의 뒤를 쫓지만,

결과는 조조의 참패로 막을 내립니다.

이렇게 조조는 때로는 의협심이 강한 젊은이였지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세상의 인심이 야박하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상한 조조는 일단 고향인

이곳 보저우로 돌아와 군사를 모으지만, 정말 초라할 정도였을 겁니다.

세상을 요령껏 살아가기에는 가장 중요한 일이 스스로 힘을 길러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다시 군대를 조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워낙 강한 군벌인 원소나 원술 형제보다

수적으로나 전술로나 불리한 상황을 느낀 겁니다.

이때 만든 것이 바로 오늘 구경하고 있는 지하 운병도라고 합니다.

약한 자의 고뇌가 바로 이곳 지하 대피소일 겁니다.

 

결국, 세력이 약한 조조로는 자구책이라 봐야 하겠지요?

이 지하 운병도는 업성유지에서 본 전군동과 같이 조조의 잔머리라고 할 수 있지만

군사가 성안으로 들어와 다시 이 지하 운병도를 통해 성 밖으로 나가 또 들어오게 하면

100만 군사가 쉽게 되지 않겠어요?

만 명의 군사가 백 번만 통과하면 말입니다.

 

땅굴을 파 사방으로 길을 내고 군사들로 하여금 성 안팎으로 연결된 지하통로를 통해

반복해서 들고 나게 했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성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렇게 성 안팎으로 군사가 수시로 드나들게 되면 지하의 암도를 알 수 없는 적은

이곳의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잖아요.

 

또 다른 의미도 있을 겁니다.

바로 비상사태에 대비해 도주할 땅굴 말입니다.

성이 적에 포위돼 함락될 지경에 이르면 피신하기 위한 암도가 되고 만약 성안의 군사를

이곳으로 내보내 성을 에워싼 적의 뒤통수를 치는 방법도 있잖아요.

이런 다목적 전술을 위한 시설이 바로 여기 운병도일 겁니다.

 

조조 같은 기발한 생각이 아니겠어요?

비상사태를 생각해 준비해둔 세력이 약한 자의 치밀함을 우리가 보고 있네요.

이렇게 지하운병도를 이용해 적군의 눈을 속이며 조조는 점차 세를 확장해나갔을

것이며 시간이 흐르며 권력의 축은 조조에게로 옮겨왔고 결국 당시로는 최대 군벌이었던

북쪽의 원소군과 관도대전을 적은 숫자의 군사로 군수기지를 급습함으로 일거에 불리했던 전세를

뒤집고 승리하게 되었지요.

 

지하 운병도 안을 걷다 보면 환기도 큰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위에 보이는 환기 장치라 합니다.

컴컴한 곳이기에 지붕으로 난 환기구를 플래시를 터뜨려 찍었습니다.

 

그럼 밖에서는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위의 사진처럼 현재 도로변에 환기구를 만들어 지하에 맑은 공기가 드나들게

했으며 지금이야 이런 모습으로 노출되었겠지만, 옛날에는 교묘하게 가려

이게 환기구로 보이지 않게 했을 겁니다.

 

지금 밖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대놓고 알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운병도 조성 당시 공기 순환을 위해 설치해 놓은 숨구멍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무척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지만, 그 세월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장애권이라는 재미있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아치 모양으로 만들었기에 권(券)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그러니 이곳은 불이 없으면 그냥 손으로 더듬거리고 가다가는 머리를 부딪혀

깨지라고 만든 곳입니다.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천장의 높이가 갑자기 낮아지며 모르고 그냥 가다가는 머리가 깨지기에 십상입니다.

장애권을 곳곳에 만들어 놓아 이 구간은 허리를 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네요.

 

천장의 높이가 구간마다 다르게 만들어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 마련한 첫 번째 장애물이라

생각되며 장애권이라는 아치가 있는 것은 똑바로 서서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가

낮고 허리를 굽혀야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구간입니다.

이런 시설이 곳곳에 만들어 놓았는데 높이만 다른 게 아니라 넓이도 달라 어느 곳은

몸을 옆으로 돌려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도록 좁게 만든 곳도 있네요.

 

여기저기 혼자 컴컴한 지하도를 돌아다니다 보이 이상한 모습이 보입니다.

위의 사진을 잘 보세요.

한 사람이 몸을 도사리며 빠져나갈 정도인 좁은 지하도에 무슨 시설을 한 듯합니다.

길이 상하로 나누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시설일까요?

내일 저곳을 탐색해 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生年不滿百  생년불만백   常懷千歲憂  상회천세우
晝短苦夜長  주단고야장   何不秉燭遊  하불병촉유
爲樂當及時  위락당급시   何能待來玆  하능대래자
愚者愛惜費  우자애석비   但爲後世嗤  단위후세치
仙人王子喬  선인왕자교   難可與等期  난가여등기

 

백 년도 못사는 인생이
항상 천 년의 근심을 품고 사네.
 낮은 짧고 괴로운 밤은 기니   
어찌 촛불 들고 놀지 않겠는가?
시간이라는 것은 영원한 손님이다.
어찌 내년을 기다릴까?
어리석은 자는 비용을 아끼나
오직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네.
신선이 되었다는 왕자교와 
똑같이 된다는 희망은 이루기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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