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저우(亳州) 화타기념관

2014. 8. 25.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화조암에 화타 기념관이라는 글은 곽말약이라는 사람이 쓴 모양입니다.

이번 여행을 하며 중국 여러 곳을 들려보았는데 곽말약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자주 보았습니다.

서하객 못지않게 곽말약이라는 사람도 중국 곳곳을 누비고 다녔나 봅니다.

서하객은 그곳의 모습을 글로 남겼다는데 곽말약은 주로 간판만 쓰고 다녔나 봅니다.

물론, 佳人은 사진만 찍고 다녔습니다.

 

중국 여행 중에 가장 힘든 일이 한글로 쓴 안내판을 읽는 것입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유추하면 통하지 않을 한글이 없겠지만, 처음 본 순간

잠시동안 멘붕이 되어 고민하게 합니다.

이런 글이 한두 개가 아니라 중국 관광지는 가는 곳마다 대부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국 관광객을 위해 한글 간판을 만들어 서비스한다는 생각은 가상하지만...

 

보저우를 찾은 이유는 이곳이 조조와 화타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허저의 고향이기도 하고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소설 삼국지에서 관우까지 서로 함께 출연했더군요.

 

이제 안으로 들어가 화조묘의 이모조모를 살펴보렵니다.

화조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입구를 들어가면 먼저 화타 묘사가 있고요, 그 뒤로는 화타가 살았다고 우기는 화타 고거가

있고 그리고 그 뒤로는 제법 큰 연못을 만들어 정원으로 꾸며놓았고 제일 뒤로는

화타 한약문화 박물관을 만들었네요.

그러니 제일 뒤의 박물관은 단체여행객에 약을 파는 그런 곳으로 보였습니다.

 

화조암 전경도를 보시니 이곳을 다 보셨다고요?

그만 나가도 된다고요?

그래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쥔장도 만나고 구경은 하고 나가자고요.

 

화타를 칭송하는 많은 글을 돌에 새긴 비석만 모아놓은 비원이라는 정원이 보입니다.

어렵게 이곳에 왔는데 글이나 하나 남기고 갈까요?

 

화타는 정치가도 아닌 사람의 목숨을 살린 사람이었기에 안티 세력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많은 문인이나 권력자는 화타를 칭송했을 겁니다.

 

화타의 얼굴 모습을 돌에 새겨놓았습니다.

화타의 모습은 늘 저렇게 앞이마가 유난히 튀어나온 짱구로 그렸더군요.

저 짱구처럼 튀어나온 앞이마에 독수리 오형제보다 더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환자를 스캔하는 능력말입니다.

화타는 두통을 앓는 조조를 그냥 한번 쭈욱 훑어보고 뇌에 문제점을 MRI보다 더 정확하게

찝어냈으니 그러니 튀어나온 이마 속에 MRI라는 첨단 의료장비를 숨겨다녔을 겁니다.

 

화타가 당시 환자를 돌보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았습니다.

청진기가 없는 세상일지라도 저렇게 손을 환자의 가슴에 얹으면 심장의 울림을 읽었고

폐의 소리를 감지했나 봅니다.

앞이마가 튀어나왔기에 그곳에 비밀의 기계를 숨겨두고 한자의 몸을 스캔했을 겁니다.

 

원화 초당(元化草堂)입니다.

원화 초당은 바로 화타가 머물던 방이라 합니다.

元化는 화타의 字이기도 하고요.

 

여기는 바로 화타가 살았던 고택이라는 옛집이라는 말이겠네요.

방안에 화타의 조상을 모셔놓았습니다.

 

저기 보이는 유발이나 그릇은 요술 그릇으로 유봉을 돌리기만 하면 영약이 나와

죽어가는 환자를 살렸을 겁니다.

의원이란 누구나 갖추고 있는 기구지만, 어느 사람은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약을

만들어 내지만, 어떤 사람은 환자의 주머니만 터는 요술 방망이였을 겁니다.

 

원화 초당 동쪽에는 익수헌(益壽軒)이라고 부르는 진료실이 있고

서쪽에는 존진재(存珍齋)라 부르는 약을 만들었다는 방도 있습니다.

물론, 당시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이런 정도의 시설은 기본적으로 갖추었을 겁니다.

 

그 뒤로 들어가면 고약원이리고 부르는 넓은 곳이 나옵니다.

버드나무와 회화나무 아래 세지원이라는 정원을 만들고 물과 다리로 연결하여

앞에 있는 화조암과 더불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지금 이 모습이 옛날의 그 모습은 절대로 아닐 겁니다.

 

이곳은 화타가 후학을 양성하던 교육장소라 합니다.

그런데 왜 그 유명하다는 청낭서는 후학에게 전하지 않고 엉뚱한 옥리에 전달해

그 마누라가 불살라 버리게 했을까요?

의학에는 남다른 재주가 있지만, 사람 보는 눈은 영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화타는 한세상을 살았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이야기뿐인가 봅니다.

이야기뿐이라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요.

佳人도 한세상 살아가지만, 죽고나면 누가 기억이나 하겠어요?

 

후원에 속하는 고약원은 잠시 쉬었다 가기에는 아주 좋은 곳입니다.

정원처럼 보이나 그곳에는 약초도 키웠고 약초를 씻은 연못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화타가 약초를 가꾸던 공간은 오늘날 작은 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고약원(古葯園)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곳에 심어진 약초들은 약효가 뛰어난 약초일까요?

왜?

화타가 처음 약초를 심었던 곳이니까요.

 

위의 그림은 화타가 조조에 의해 옥에 갇힌 후 그를 정성껏 돌보아준 옥리라는 오압옥의

모습으로 저 위에 보자기 속에 있는 책이 바로 화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라

는 청낭서(靑囊書)일 겁니다.

왜 자꾸 저 책에 눈길이 머무나 모르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정성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혹시 그 사람이 화타일지 모릅니다.

화타는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어느 날 문득 우리 곁에 다가올 지 모릅니다.

화타였다면 청낭서라는 책을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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