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운병도의 비밀

2014. 8. 18.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조조 운병도라는 땅굴을 나와 화타를 모신 화조암(華祖庵)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화타와 조조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화타는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죽은 때가 208년이라 합니다.

조조는 155년에 태어나 220년에 죽었다고 하니 두 사람이 살았던 때가 비슷하군요.

그러나 화타는 조조보다 12년이나 먼저 죽었네요.

두 사람이 태어난 마을을 직접 걸어가 보니 걸어가도 멀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 소설 속에서는 관우는 위인으로 조조는 악인으로 만드는

도구로 화타가 이용당했습니다.

 

화조암으로 가기 전에 어제 보았던 2층 구조물부터 구경하고 나가렵니다.

높은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넓은 곳도 아닙니다.

좁은 곳에 더 많은 사람을 빨리 이동시키기 위한 구조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통로를 상하 2층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만약 적이 내부 사정을 모르고 2층을 걷다가 갑자기 아래가 푹 꺼지며

바닥으로 떨어지라는 말입니까?

그 속을 어찌 알겠어요.

 

좌우지간 조조의 잔머리에서 나온 구조가 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중의 통로를 만들어 놓아 군사를 신속하게 투입할 때 쓰기 위한 통로로 생각되었습니다.

위로 난 길로, 또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어보았는데 길이 다시 하나로 합쳐집니다.

그렇다면 정체현상 때문에 오히려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은 관광객을 위한 배려라고 보면

이는 이 안에 다른 암수를 숨기기 위한 곳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닥에는 함정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워낙 깜깜한 곳이라 자세히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안내도를 보면 날카로운 쇠꼬챙이

를 꽂아 놓은 함정으로 내부 구조를 모르는 적군이 운병도를 따라 무조건 쫓다 보면

이 무시무시한 가시밭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하 운병도는 아군의 이동뿐 아니라 적에게 발각되었을 때 적을 공략하는 시설도

함께 만들었다는 말이겠네요.

 

또 묘이동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아마도 고양이 귀라는 뜻으로 좁은 공간을 만들어 지하를 지키는 병사가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적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이곳에는 무기도 숨겨놓았을 것입니다.

숨어 기다리다 지나가는 적의 배후를 공격할수도 있고요.

 

컴컴한 곳에 여러 가지 시설을 해 놓았습니다.

조조다운 생각으로 지하 운병도는 조조의 지략(智略)과 용병술이 최대로 발휘된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니 조조를 조조 같은 놈이라 하나 봅니다.

 

이 시설을 만든 시기가 동탁을 공격하기 위해 원소를 중심으로 회맹에 참가했다가

모두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조조는 장안으로 도망하는 동탁을 혼자 쫓아갔다가 동탁이 숨긴

군사의 역습으로 간신히 목숨만 건져 고향인 이곳 보저우로 귀향해 적은 군사를 모아

재기를 준비할 때였다고 하니 자신의 비세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고육책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좌우지간, 조조를 대표하는 시설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운병도 내부 통로는 평행단행도(平行單行道)와 상하단행도(上下單行道),

이인도(雙人道, 두 명이 지나가는 길, 순환도(循環道) 등 4가지로 나뉜다고 합니다.

순환도란 돌아가는 길로 다시 돌아 나오게 하여 캄캄한 지하에 적이 들어오면 뺑뺑 돌며

고생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뒤를 쫓아오는 적을 다시 돌아가 배후를 공격함으로 혼란에 빠트리는

뒤통수 치기 공격의 목적일수도 있고요.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에서 업성유지를 들렀을 때 그곳에 조조가 만들었다는

전군동(轉軍洞)이라는 터널을 본 적이 있었지요.

佳人의 여행기를 보신 분은 위의 사진이 기억나실 겁니다.

그곳에서 조조는 관우에게 군사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군사를 회전문에서

계속 돌렸다고 했던 전군동 말입니다.

 

조조는 원래 이런 땅굴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탈출로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고...

좌우간 군사전략가로서의 조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음흉하다고 봐야 할까요?

세력이 약했던 조조가 살아남는 방편으로 이런 시설을 만들어

이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타의 죽음은 조조가 머리 수술을 권하는 화타를 의심해

죽였다고 하지만, 그 시기가 전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은 서로 만난 적도 없었다

하나 그런데 작가는 조조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사람이 신의(神醫)로 추앙하는

화타를 소설 속에서 죽임으로 조조를 조조답게 만들어 버렸답니다.

 

정말 조조는 억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관우도 만난 적이 없는 화타를 통해 수술도 하며 생살을 찢고 수술할 때 아주 멋지게

바둑두는 모습으로 그렸고 그게 생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나관중의 생살을 찢고 뼈를 바각바각 소리날 때까지 긁어버리고 싶습니다.

 

화조암으로 가는 방향만 알면 쉽게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곳이기에 굳이 택시를 타실 필요가

없으며 방향은 방금 버스를 타고 온 방향으로 되돌아 올라가다 첫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 골목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정표가 있기에 누구나 찾아갈 수 있고 만약 모른다면 길가는 사람이나

교통경찰에 물어보시면 쉽게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저우로 온 이유는 이곳이 바로 조조의 고향이고 화타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이라 해 뭐가 남아있을까요?

두 사람 모두 일찍 고향을 떠나 천하를 돌아다닌 사람들이 아닌가요?

 

두 사람은 같은 고향출신으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악연이 되어버렸지만,

이곳 보저우에서는 보저우를 빛낸 위인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조조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고 두 사람을 만나게 했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던

조조의 머리를 열고 수술로 치료하자고 했다고 화타를 죽이는 악역을 하게 했습니다.

도끼로 조조 머리를 뽀개고 긁어내자고요.

 

후세 사람들은 조조를 말하기를 천시를 타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조조가 때를 잘 만나 성공한 사람이었을까요?

이번 여행을 하며 느낀 점은 조조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뿐입니다.

그는 천시를 잘 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혼란한 시기에 영웅적 기질로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간 사람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최고의 영웅은 진정 조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왜 천하가 유서방의 나라여만 합니까?

조조는 모든 신하가 황제자리에 오르라 해도 제후로써 만족하고 사양했지만,

유비는 스스로 황제라 칭했지요?

그 전에는 스스로 한중을 공략하여 황제의 지시도 없이 한중왕에 오른 후

나중에 황제에 한중왕에 올랐다고 통보한 셀프왕이었고요.

 

조조는 군사가 적었을 때는 이런 시설을 이용해 거대한 세력인 원소에 대비했고 인재를

아꼈고 문학을 발전시켰으며 둔전제를 시행해 떠돌아다니던 농민을 정착하게 했으며 그때까지

효렴이라는 제도를 뿌리째 뽑아버리고 구현령을 발표해 전국적으로 인재등용을 시도했던

대단한 행정가이기도 했습니다.

나라가 혼란에 빠져 부도직전에 진정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한

현대판 전문 경영인의 CEO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조조가 간웅이라고요?

조조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섭섭했겠어요?

"내가 그리도 밉습니까?"라고 신세 한탄을 했을 겁니다.

얼마든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끝내 조조는 위왕으로 만족하고 말았습니다.

황제가 조비에 이끌려 낙향하자마자 바로 6개월도 되지 않아 황제에 오른

유비가 진정한 간웅이 아닐까요?

황제 즉위식에 필요한 전각을 짓고 행사를 위한 단을 만드는 시간이 그 정도라면

바로 황제 즉위를 준비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고 주변의 만류도 아닙니다.

조조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서였을까요?

아니면 염치가 있었던 사람이었을까요.

이런 조조를 간웅이라 욕하고 화타까지 동원해 나쁜 사람으로 만든

나관중은 빠떼루 받아야 합니다.

정말 조조만 한 영웅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독자는 신의 화타를 죽인 조조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일 놈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조조 운병도를 나오면 출구에 누각으로 만들어 놓았고 조조가 직접 쓴 글이라는 곤설이

보이는데 워낙 많이 본 글이기에 별 감흥조차 없습니다.

왼쪽에 보면 위왕이라는 글이 보입니다.

조조는 황제가 아닌 위왕으로 만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조가 혼란의 시기에 나라를 위해 애쓴 보답으로 위왕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이곳 보저우(亳州 : 박주)라는 지명은 한자로 무척 어렵습니다.

평소 거의 사용한 경험이 없는 글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亳)이라는 글자와 호(毫)라는 글자가 매우 비슷해 이 지역을 여행한 많은 한국 여행객이

헷갈릴 것 같습니다.

중국사람도 이런 한자를 쉽게 구분하며 읽을까요?

佳人이 별걱정을 다하고 여행 중입니다. 그쵸?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화조암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화희루라는 관우 사당도 조금 더 가면 있지만, 그곳은 제법 멀기에 차를 타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니 운병도에서 화조암은 가깝기에 걸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는 모두 걸어갔다 왔지만...

내일은 화조암을 구경하렵니다.

화조암은 화타를 모신 사당 겸 기념관이랍니다.

그리고 화타가 살았던 집터이기도 하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완벽함이란

더는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가 완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佳人이 쓴 글을 읽어보니 모두 뺄 곳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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