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추어버린 체스키크룸로프.

2013. 12. 12. 08:00동유럽 여행기/체코

이제 붉은 문이라는 성문을 벗어나면 요정이 살 것 같은 마을이 나옵니다.

집집이 색깔로 치장했고 꽃이나 예쁜 장식물로 아름답게 꾸며놓아

걷는 여행객에 즐거움을 줍니다.

그래요.

이렇게 예쁘게 꾸미는 일은 나를 위함도 있지만, 남을 위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이곳은 마치 숨겨놓은 보석과도 같은 그런 마을입니다.

시간마저 비켜 지나간 중세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체스키라는 말은 체코어로 보헤미아 또는 체코를 의미하고 크룸로프라는 말은

강의 만곡부의 습지라는 말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말 굽은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말발굽처럼 강이 휘감아 흐르는 곳이라는 말인가 봅니다.

 

독일어의 Krumme Aue를 어원으로 한다는군요.

1920년 이전에는 이 마을을 '크루마우 안 데아 몰다우'라고 불렀고 고지도에서는

크루마우로 기록된 곳이라 하네요.

이런게 다 무에 쓰겠습니까?

여행자는 그냥 예쁜 동네를 걸어본 것으로도 만족스러운 걸요.

 

그래서 여기 구글 위성지도로 다시 보고 갑니다.

이 말의 의미는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마을의 모양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가는 강의 모양이 마치 말발굽처럼 묘한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나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지요?

 

이런 모습의 마을을 얼마 전 중국 여행 때 랑중이라는 마을을 갔을 때 보았습니다.

아주 오지라 우리나라 여행객이 별로 가지 않는 곳입니다.

랑중이라는 마을은 바로 삼국지에 도원결의했을 때 막내로 나오는 장비가

부하에 의해 목이 달아난 마을이지요.

그 마을의 모양이 이곳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런 모양의 마을은 아주 명당으로 치는 마을입니다.

그 이유는 태극 모양을 하고 있어 주역의 원리에 따르면 최고의 명당이라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주역에서 말하는 명당이 과연 좋은 곳인가에 대해 믿으시면 안 됩니다.

 

왜?

실상은 랑중에서 장비가 자다가 부하 손에 목이 달아나는 비명횡사 했지요.

장판파에서 조조군을 향해 큰소리로 고함질러 조조가 오줌까지 저리게 했던

천하의 장비가 말입니다.

아마 이 마을에도 틀림없이 흉흉한 소문이 남아있을 겁니다.

이상과 현실은 이렇게 다릅니다.

 

천심십도 정혈법(天心十道 定穴法)은 주역에서 말하는 풍수지리의 하나로 혈을 중심으로

전후좌우 사방에 있는 산을 연결하면 십자형(十字形)으로 서로 응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하네요.

그러니 세상의 모든 기가 모이는 곳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마을은 점점 더 심오한 경지로 몰입 중입니다.

그 이은 선이 정확히 일치하면 그곳이 명당이고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곳이라 합니다.

오늘 여기 온 김에 그 혈 자리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서도 그 혈 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랑중에서는 그 자리를 중천루라는 누각을 지어 복희를 모시고 있더군요.

그러나 여기는 중천루도 없고 복희 씨도 너무 멀고 말도 통하지 않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니 올 수 없으니...

아마도 마을의 제일 가운데 넓은 광장인 삼위일체 탑이 있는 여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佳人이 이 짓을 하며 다녀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13세기 중엽 대지주였던 비텍(Vitek)家가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돌산 위에 고딕 양식의 성을 축조함으로 이 마을이 번창하게 되었다 합니다.

유럽의 성이라는 게 원래 대부분 이런 돌산 위에 짓는가 봅니다.

 

성이란 그때도 지금도 이 마을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건물일 겁니다.

지금은 그때 이런 성을 지었기에 이곳 체스키 크룸로프의 제일 중요한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고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잖아요.

그야말로 이 마을의 역사를 함께 시작했고 영원히 함께 할 상징적인 건물이라 하겠네요.

바로 이 성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니 지금의 후손이 먹고산다고도 봐야 하겠네요.

 

고딕 양식의 뾰족탑과 둥근 형태의 지붕...

그 아래에 난 정원과 길을 걷다 보면 마치 우리가 중세의 어느 마을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그런 기분이 드는 곳으로 성의 규모 또한 무척 크기에 세계 100대 성에 들어간다 하고

체코에서는 프라하 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하더군요.

 

블타바 강이 휘감아 흘러가는 절벽 위, 탄탄한 암반 위에 돌을 쌓아 그 안에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을 그대로 두어 당시 대지주며 영주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배낭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모습이고 우리는 그냥 외관만 슬쩍 훑어보고 지나갑니다.

 

이 성은 처음 비텍가문에서 지었지만, 세상에 모든 가문은 흥망성쇠를 하게 되나 봅니다.

해가 떴다고 늘 아침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지는 석양으로 변하는 게 하늘의 뜻입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에 따라 이 성도 보헤미아의 대영주였던 로젬베륵에 넘어가며 가장 번창한 시기를 맞이했다 합니다.

그 후 다시 루돌프 2세로 다시 에겐베르그 가문으로 손이 바뀌고 마지막으로 슈바르젠베르그에게

넘어갔지만, 체코가 공산화되며 1947년 국유화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합니다.

 

이렇게 성은 세월이 흐르며 여러 번 손바뀜하여 관광객에게 공개되어 지금에 이르렀네요.

성 안에는 정원만 네 개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있는 성입니다.

정원이 네 개가 있다고 해도 눈 여겨 볼 정도로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이 친구야?

무얼 그리 고민하시나?

그냥 방아나 돌리시게~~

 

걷다가 잠시 뒤돌아 보면 흐라테크라고 불리는 탑이 보입니다.

예전에 감옥으로도 사용된 적이 있다는 탑이라네요.

지금은 돈을 내고 탑에 올라가 도시를 조망할 수 있다지만, 우리는 그냥 쳐다보고만 갑니다.

 

그런데 그 탑은 마을 어디에서나 잘 보입니다.

골목 사이 열린 틈 사이로도 보이고...

 

마을 지붕 너머로도 보입니다.

왜?

체스키크룸로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니까요.

 

아름다운 이 성에도 귀신 이야기가 있답니다.

아까 佳人이 뭐라 했습니까?

명당이라는 곳에서도 장비는 비명횡사했고 여기도 그런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이야기는 꼭 있습니다.

우리 어린시절 달걀귀신 이야기 때문에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던 기억 하나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 마을에 떠도는 귀신 이야기가 있답니다.

원래 이런 고성에는 늘 이상한 이야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15세기경 이 성에는 괴팍한 성격의 영주 율리흐 2세와 그의 딸 페르흐타가 살았답니다.

영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딸을 모라비아 영주인 요한 폰 리히텐슈타인과 정략결혼을 추진했답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원래 아름다운 여인은 늘 모든 사람의 눈에 띄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그런 미인이 뽑혀가는 곳은 권력자와 세도가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세도가는 언제나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에 미인이 함께 당하는 것이지

미인이 복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결국, 딸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아버지를 원망하며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 늙은 사내에

시집을 갔고 영 시원치 않은 늙은 사내와 살다 보니 불행한 나날을 보냈답니다.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 죽음을 앞두고 딸에게 미안한 마을을 전하며 시집보낸 일에 대해

사과했지만, 딸은 그동안 억울하고 불행했던 자신을 생각하며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아비 입장에서 사과했지만, 그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질 고약한 아비는

딸에게 저주를 퍼붓고 죽었답니다.

부모 자식 간에 참 못할 짓을 서로 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이런 걸 두고 막장 부녀라 하나요?

 

그 후 세월이 또 흘러 딸도 나이가 들어 불행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삶을 마감하게 되었고

그러나 그의 아비가 퍼부은 저주가 퍼뜩 생각나기도 하고 행복했던

그때를 다시 생각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죽은 후에 바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이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 혼백이 돌아왔답니다.

 

그런데 그 혼백은 지금도 이 마을의 특별한 날에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합니다.

그녀의 귀신이 나타날 때 흰 장갑을 끼면 그녀를 본 사람은 행운이 오고, 검은 장갑을 낀 모습을

본 사람은 불행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옛 애인과의 좋았던 생각을 하는 날에는 흰 장갑을 끼었고 저주를 퍼붓고 죽은

아버지가 생각날 때는 검은 장갑을 끼지 않았을까요?

정말 막장 부녀지간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촌스럽죠?

우리 어린 시절에 많이 듣던 빨간 구슬, 파란 구슬과 같이 너무 진부한 이야기입니다.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마을을 걷다 보니 유난히 즈그라피토라는 기법으로 벽을 단장했습니다.

이 양식은 표면을 긁어내어서 만든 미술 양식으로 이탈리아어로 긁는다라는 의미라 합니다.

 

벽의 모양이 마치 벽돌을 쌓은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밋밋한 벽을 마치 벽돌을 쌓은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미술 양식이

즈그라피토라고 하더군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혹시 길을 걷다가 검은 장갑 낀 여인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녀가 뭐라 해도 대꾸도 하지 마세요.

그녀는 한국어를 모르기에 대꾸하지만 않으면 문제없을 겁니다.

혹시, 흰 장갑을 낀 여인이 지나가면 불문곡직 무조건 손을 덥석잡으세요.

그러면 만사형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