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기취(諧奇趣). 원명원의 폐허

2012. 12. 26.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서양루 안을 더 자세히 살펴보렵니다.

그 이유는 그냥 둘러보면 폐허로 변한 유적뿐입니다.

그러나 그냥 땅 위에 뒹굴고 있는 그 돌조각 하나하나는 모두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무나 밟고 지나가는 돌이지만, 어디 처음부터 그랬겠어요?

걷다가 우두커니 바라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물어보기도 하렵니다.

 

서양루라는 이름에서 알듯이 바로 서양풍의 유적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덕수궁은 서양식 건물이지요?

같은 서양식 건물이지만, 덕수궁은 우리의 조선 황제가 잠시 거처했고

여기도 청나라 황제가 잠시 거처했기에 비슷하지만, 보존은 다르네요.

 

 

바라보아 더 시리도록 아름답고...

생각하면 더 아리도록 가슴 아프고...

파란 하늘과 하얀 백옥의 조화가 오늘은 무척 곱습니다.

이런 곳이 사흘 밤낮으로 불에 타 자금성에서도 그 불빛을 볼 수 있었다 하니...

타도 더는 탈 수 없어 이렇게 그날의 아픈 마음을 열어 보여주려나 봅니다.

 

 

오늘은 주둥이가 사라지고 다리마저 잘린 사자가 왜 이리도 불쌍해 보입니까?

아무리 멋진 갈기가 살아있다 해도 저 눈에 보이는 슬픈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더 이야기하면 금방 저 맑은 눈에서 눈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의족이라도 한 모습에 한번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손이라도 성했으면 손이라도 잡아줄 텐데...

 

 

마치 떡 주무르듯이 정교하게 만든 석 조각...

떡 장사는 도저히 저런 문양과 조각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렇게 부서졌기에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佳人만의 생각일까요?

 

 

여행 중에는 이렇게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왜?

여행자 마음이니까요.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오늘은 하늘마저 왜 이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겁니까?

위의 사진에 보이는 둥근모습의 조각에 보이는 주름...

어찌 저렇게 돌로 조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바라보지만 말고 중얼거려도 좋습니다.

왜?

우리 말을 다른 여행객은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해기취는 이렇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황제처럼 이런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하지만, 곁눈질로 구경은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가장 화려했던 시기에 지은 곳이라 그 화려함은 세상에

어느 정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해기취는 눈물입니다.

바람이며 구름입니다.

아침 이슬처럼 해만 나면 사라져버릴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우선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폐허가 해기취(諧奇趣)라는 유적입니다.

모두 무너져버렸지만, 그 웅대한 모습을 느낄 수 있고 당시 분수가 솟아올랐던

자리에는 지금 연못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그냥 마음속으로 상상만 하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연못에서는 분수가 아름답게 물을 뿜고 있습니다.

佳人이 분수도 모르고 분수이야기 한다고요?

 

 

위치는 장춘원 위에 있는 서양루 서쪽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서양 오랑캐는 원명원을 불태운 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었나 봅니다.

석조건물에 불에 탈 게 없으니 "뿌셔뿌셔~" 했나 봅니다.

 

 

이렇게 부수기도 쉽지 않았을 거에요.

혹시 다이너마이트로?

그럴지 몰라!

 

 

1751년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인 건륭 16년에 서양식으로는

제일 처음 만들어진 유적이랍니다.

주 건물은 3층으로 이루어졌고 1층과 2층에는 일곱 개의 방이 있었고

제일 위층에는 세 개의 방이 있었다 하네요.

그리 크게 짓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주 건물 앞으로는 주랑을 따라 좌우로 아홉 개의 방이 있었고 주랑은 2층 규모의

 팔각정으로 이어졌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는 중국 음악은 물론 서양음악을 연주했던 연주장이었나 봅니다.

아~ 그러니 여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그런 곳으로 지었나 봅니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아까 그 연못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사람답게 살았나 봅니다.

 

 

누각 남쪽으로는 능금 모양의 대형 분수가 제 분수도 모르고 물을 뿜고 있었나 봅니다.

바로 위에 보시는 사진의 연못이 그때의 멋진 능금 모양의 분수였던 모양입니다.

위에서 보면 분수의 연못 모습이 하트모양으로 생겨 능금 모양이라 했나 봅니다.

 

 

그런데 물을 뿜는 곳에는 청동으로 만든 양과 오리, 그리고 서양식 번미석어(翻尾石魚)라

할 수 있는 꼬리가 하늘로 치솟은 물고기 조형물이 있어 그 화려함을 자랑했다 합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폐허라지만, 그때 모습을 잠시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본관 건물 뒤인 북쪽으로는 작은 국화꽃 모양의 분수가 또 있었다 합니다.

바로 위에 보시는 사진이 그 분수랍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이 분수는 제법 옛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네요.

여기에 이렇게 많은 분수를 만든 이유는 여러분도 다 아시죠?

북방민족이라 조금만 더워도 개처럼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거렸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더 폼 나니까...

 

 

물의 공급은 해기취 서북쪽에 있는 물 저장고인 축수루(蓄水樓)를 만들어

그곳으로부터 물을 끌어다 사용했다 합니다.

나중에 그 축수루라는 곳도 사진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높은 곳에 물을 저장해 낮은 이곳으로 흘려보내 그 압력으로 물이 하늘로 뿜어 올렸을 겁니다.

 

 

원명원이 파괴된 후 번미석어는 근처 베이징대학 구내에서 발견되었고 국화문양 분수는

베이징 시내의 취화(翠花)라는 후통에서 찾았다 합니다.

물론, 지금은 모두 제자리에 돌아와 있습니다.

중국사람은 이렇게 유적을 가져다 자기 집안을 장식하거나 집을 짓는 데

사용하기를 즐기는 문화민족인가 봅니다.

지금도 사리지는 만리장성이 집을 지으려 돌과 벽돌을 몰래 빼 간다 합니다.

얼마나 유적을 사랑하는 민족입니까?

 

 

그런데 제자리에 돌아오면 무엇합니까?

이렇게 자빠지고 곤두박 치며 제멋대로 놓여있고....

그것까지는 좋습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마다 발로 밟고 건너가고 또 그 위에 올라서서 기념사진만 찍는걸요.

이렇게 방치하더라도 관광객이 지나다닐 통로를 만들고 유적 위로는

넘어다니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경 쓰지 말라고요?

문명을 존중하는 민족이기에 더 가까이하기 위함이라고요?

 

내일은 미궁이라고 부르는 황화진(黃花陳)부터 기웃거리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영화란 영원하지 않나 봅니다.

그때는 세상을 모두 움켜쥐었고 천하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살았지만,

세월은 모두 자연으로 돌려보내나 봅니다.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살았던 육신은 사라져 흔적조차 없고 유적은 점차 먼지로 변해가는

중이며 그런데 아직도 그 작은 욕심 하나 놓지 못하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佳人 자신을 볼 때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