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원,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2012. 12. 27.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이제 해기취를 모두 보고 이번에는 바로 해기취 북쪽에 있는 미궁이라고도 부르는

황화진(黃花陳)으로 갑니다.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팔괘진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황실 정원에 있다고 이름조차 폼 나게 황화진(黃花陳)이니 미궁이니 붙였을 것 같습니다.

가운데 정자 하나가 있고 그 정자를 향해 들어가는 길은 미로로 꾸며 놓았네요.

 

해기취를 구경하고 뒤로 돌아서 나오다 보면 아까 본 국화꽃 문양의 작은 분수가 있고

계속 그 길을 걸어나오면, 바로 앞에 보입니다.

여기는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했던 퍼즐 놀이가 바로 이런 놀이였습니다.

우리는 그림 위에서 했고 여기는 직접 몸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겠네요.

 

우선 모형으로 먼저 보셔야 제대로 황화진의 모습을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한가운데 백옥으로 지은 예쁜 정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자의 모습이 마치 동서양의 절묘한 조합처럼 보입니다.

 

처마는 전통적인 동양의 처마 모습인데 지붕은 돔 형태며 그 주변의 장식 조각은 또 서양의

장식입니다.

그렇지요. 매일 같은 모양만 바라보고 살던 청나라 황제는 이런 색다를 모습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나 봅니다.

매일 가정식 백반만 먹다보면 가끔 양식도 먹고 싶고 청요리도 먹고 싶잖아요.

 

대부분 파괴되어 돌무더기만 남았지만, 이곳만큼은 원형보존이 잘 되었나 봅니다.

혹시 서양 오랑캐가 여기에 왔다가 공명의 팔괘진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기라도 했을까요.

공명의 장인인 황 노인을 불러와야만 탈출이 가능할 텐데...

 

황제가 후궁들과 이곳에서 '나 잡아 봐라~"라도 했나요?

그래서 그런가요?

이곳을 찾는 남녀 모두 그런 놀이를 하고 노는 곳이랍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월담도 합니다.

머리 나쁜 덜수도 월담해 넘어갑니다.

 

지금 사진 찍는 곳에 황제의 보좌가 있었을 겁니다.

궁녀들의 미궁 놀이를 하며 놀고 자빠진 모습을 우두커니 내려다보며 미소지었을 겁니다.

왜?

궁녀뿐 아니라 황제를 알현하러 들어오는 신하들이 미로를 헤매는 모습이

우습고 재미있기 때문에... 

 

위의 사진은 모형도로 황화진과 그 위에 보이는 해기취를 한꺼번에 잡은 모습입니다.

물론 해기취는 모두 부서졌지만, 위의 사진은 모형으로 만든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황하진이란 이름은 중추절 밤에 여기서 궁녀들이 황색 비단으로 만든 연등을 들고

팔괘진에서 미로찾기 놀이를 했다고 하여 황화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정말 달밤에 이상한 짓을 하고 놀았습니다.

 

고생하며 들어가면 끝나는 게임이 아닙니다.

다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가 나쁜 덜수는 나올 때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지요.

덜수는 늘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황제의 자리에 이번 여행에 자주 등장하는 佳人이 있습니다.

찾으셨어요?

성질 급한 사람은 담장 위로 올라가 넘어갑니다.

성질이 급한지 머리가 나쁜지는 물어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습니다.

 

정자 제일 가운데는 옥좌를 놓고 황제가 앉았을 겁니다.

그러나 황제는 미로를 따라 들어갔을까요?

아니랍니다.

마로 담장 위에 길을 만들어 그 위로 넘어들어갔다 합니다.

왜?

황제니까.

그러면 덜수와 동급인가요?

 

이제 다시 자리를 옮겨 다음 유적으로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새를 키운 양작롱(養雀籠)이라는 곳입니다.

정말 인생 폼 나게 살았습니다.

새를 키웠던 곳도 따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살았으니까요.

중국인들은 새 키우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민족이지요.

 

1759년 건륭 24년에 지은 아주 호사스러운 건물로 가운데 방이 문 역할을 하고 남북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희귀한 수많은 새를 키운 곳이라 합니다.

동서 양쪽에 건물 밖으로는 분수탑을 만들어 새들이 먹을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장치를 했다 합니다.

민초는 먹을 물이 없어 황허 강의 누런 물을 먹었을 텐데...

 

양작롱 북쪽에는 유럽풍의 고방(庫房)을 만들어 창고로 이용했다 합니다.

정말 더는 호사를 부릴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새가 이렇게 대접받는 세상은 인간이 새를 위해 일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새보다도 못한 삶이란 불행한 삶이지요.

그러다 새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새 되고 말았지요.

 

이번에는 오죽정(五竹亭)이라는 곳입니다.

방외관과 마주 보고 북쪽으로 바라보며 자리했다 합니다.

북쪽에는 둥근 모양의 분수가 있었고 좌우 양쪽으로는 연꽃이 피는 연못을 두었다 합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위의 사진처럼 연못 터만 남았네요.

 

위의 사진은 오죽정과 서로 째려보고 있는 방외관(方外觀)입니다.

제법 유럽풍의 냄새가 납니다.

새를 키웠던 양작롱 동쪽에 있으며 유럽풍의 건물로 2층으로 지은 건물에 방이 세 개였다

하며 그래서 예전에는 삼간루(三間樓)라고도 불렀다는군요.

이 건물의 용도는 건륭제가 사랑했던 이슬람 후궁 향비라는 용비를 위해 지은

사원용도의 건물이라 합니다.

그러니 이슬람 사원인 셈이네요.

 

그런데 정말 향비는 몸에서 향기가 났을까요?

아니면 향수의 힘이었을까요.

건물 내부에 두 개의 석판이 있었고 그곳에는 이슬람의 교훈을 새겨놓았답니다.

 

뭐라고?

"奧斯芒愛上帝, 上帝愛奧斯芒",  "阿利愛上帝, 上帝愛阿利"라고...

뭐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살아가라는 말이 아닌가요?

우리도 모두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가족도, 이웃도, 나라까지도...

 

이번에는 해안당(海晏堂)이라는 건물입니다.

이곳은 1759년 건륭 24년에 만든 건물로 서양루 경구 안에서 가장 큰 정원입니다.

여기에는 물시계와 분수가 있었던 곳이라 합니다.

말로만 들어도 아주 대단히 멋진 곳이네요.

마치 보석을 바라보는 그런 기분입니다.

 

11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2층으로 양쪽 입구에 물이 두 번 중첩해 떨어지게 한 대형 분수가

있었다고 하며 그 물이 아래층으로 큰 물 저장소로 떨어지게 설계해 인간의 몸에 동물의 머리를 한

12지신의 청동 조형물을 대형분수 주변에 만들어 2시간마다 각각의 동물이 자기 시간에 입으로

물을 뿜었으며 12시가 되면 모두 일시에 물을 뿜어 장관을 이루었다 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상상해보고 지나가야 합니다.

왜?

그래야 여기를 좀 더 알 수 있으니까..

어때요?

그모습이 상상 이상이지요?

 

그랬기에 이 조형물을 물시계라 불렀답니다.

여기에 있었던 동물 머리의 청동 조형물은 프랑스와 대만에 세 개가 있고 소, 호랑이, 원숭이,

돼지 머리는 북경 바오리(保利) 예술박물관에 보관 중이라 합니다.

 

매 두 시각마다 12지신이 번갈아가며 시각을 알렸다는 해안당 물시계의 동물상 중 2개가

서양에서 수집가들의 손을 떠돌다 경매시장에 나와 중국인들이 구매하려 했지만,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인정하라는 조건을 붙여 중국인 자존심만 건드렸다고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닐진데...

 

건물 뒤에는 위의 사진처럼 이곳의 환상적인 조각 예술작품과는 다르게 단순 무식하게 생긴

일자형 건물이 하나 있고 이 건축물의 용도는 바로 물을 저장해 두고 여기 주변에 있는

많은 분수로 물을 보내는 역할을 하는 물통인 물저장소입니다.

정말 많은 분수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모두 작동시키면 이곳의 온도가 북경시내의 온도보다 훨씬 낮았을 겁니다.

 

여기에는 어디서 나온 조각인지 알 수도 없는 돌이 여기저기 모여서 놀고 있습니다.

돌도 제자리를 찾을 때 그게 예술작품이고 유적으로 인정받지만,

이렇게 쌓여있으면 그냥 맨 돌입니다.

하루라도 일찍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원명원...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부서져 더 아름답다는 생각은 처음이었습니다.

누구는 부서진 폐허라서 구경거리가 없다고 하겠지만, 부서졌기에 오히려 상상하며 볼 수 있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곳은 눈으로 보는 곳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