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원(圓明園), 그림 속으로의 산책

2012. 12. 22.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2012년 10월 23일 여행 5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베이징 날씨는 이맘때가 되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무척 상쾌합니다.

작년에도 이 계절에는 여행 내내 정말 파란 하늘을 보았거든요.

오늘은 원명원으로 갑니다.

 

지난밤에는 같은 방에 머무는 이스라엘 청년이 밤에 무슨 짓을 하다 들어오는지 새벽녘에 들어와 부스럭거려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려웠지만, 아침에는 우리가 일찍 일어나 부스럭거리며 그 녀석의 잠을 깨웁니다.

그녀석은 혼자 부스럭거렸지만, 우리는 셋이 부산을 떨었습니다.

이제 비겼습니다. 됐지요?

아니군요?

세 배로 갚았기에 처절하게 복수(?)했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우리 부부는 원명원부터 보고 공왕부를 보려고 합니다.

친구는 이화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시간이 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걸어서 갈 수 있는 옆에 있는 자금성을 구경하라고 하고요.

그 친구도 중국어를 하지 못하기에 시내버스만 타고 단번에 다녀올 수 있는 그곳을 추천했습니다.

 

8시에 숙소를 출발해 전문 앞에 있는 전루에서 690번 버스를 2원 내고 타면 원명원과 이화원을 모두 갈 수 있지요.

종점이 이화원이고 그 전 정류장이 원명원이니 우리 같은 초보여행자에게는 딱입니다.

지하철을 타지 않는 이유는 짐 검색한다고 가방 모두 풀어야 하고 그곳이 무척 더럽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숙소를 나와 걷다보니 작년 베이징 여행에서 매일 아침을 먹었던 그 집이 보입니다.

아침에 만두와 죽을 파는 가게로 젊은 아들이 처음 우리 부부가 갔을 때 외국인임을 알고 만두를

"미트? 베지터블?" 하며 물어보았기에 내내 이용했던 집입니다.

 

그 집을 찾아 들어가니 우리 부부를 알아보고 반가워합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지만, 수만 마디의 말보다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어설픈 타국에서도 다시 만나 미소 지을 수 있는 즐거운 일입니다.

언어란 단지 대화의 여러 가지 중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버스를 타고 원명원에 도착하니 9시 30분 정도가 되었네요.

우리는 친구보다 먼저 내리며 살아서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홀로서기에 들어간 친구입니다.

 

우선 원명원의 위성사진을 통해 먼저 살펴봅니다.

원명원이라 하면 사실 한자로 品 자를 거꾸로 놓은 모습의 세 곳 정원 중 왼쪽 위의 정원의 이름입니다.

원명원, 장춘원 그리고 기춘원의 세 정원을 모두 합친 게 통칭하여 바로 여기 원명원 경구네요.

그리고 원명원은 아직 모두 개방하지 않고 숨겨놓은 곳이 있나 봐요.

 

원명원...

우리 글로 앞뒤로 아무 곳이나 먼저 읽어도 같은 원명원입니다.

중국을 다니다 보면 글자를 어떤 경우는 오른쪽부터, 또 어떤 때는 왼쪽부터 읽어야 제대로 읽더군요.

그러나 여기는 한자로는 달라도 아무 곳이나 좋습니다.

 

문표는 모두 들어갈 수 있는 통표가 25원인가 봅니다.

반표는 10원으로 모두 35원에 두 장의 문표를 끊었습니다.

생각보다 무척 저렴한 곳입니다.

중국의 입장료란 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거든요.

여기 원명원은 입장료 이상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 인민을 엄청나게 생각하는 정부입니다.

인민이라는 것을 내세우니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관광지의 문표를 보면 입이 따악 벌어집니다.

왜 중국은 국민소득에 비해 터무니없는 비싼 입장료를 받을까요?

 

아마도 인민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인민정부이기에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인민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세계 제일의 문명국이고 유일한 문화민족이기에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야만

일류인민이라는 자부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구경하라는 깊은 뜻이 있어 그럴 겁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입장료를 저렴하게 하나 봅니다.

중국 인민은 참 좋으시겠어요.

정부가 앞장 서 자부심을 심어주니 말입니다.

 

우선 입구로 들어서 왼쪽으로 잠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정자 하나가 보입니다.

감벽정(鑒碧亭)이라는 이름의 정자입니다.

1811년 처음 세워졌으나 1933년 다시 복원한 만춘원의 상징이라는 곳입니다.

 

원명원 남문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나오는 호수에 있는 정자입니다.

위에 보이는 작은 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습이 아름답지 않나요?

 

여기는 청대의 황실 전용 원림이랍니다.

추운 북방 초원을 거침없이 내닫던 기마민족이라 더위만 만나면 주눅이 들어 살았던 청나라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웅덩이를 파고 호수를 만들어 여름을 지냈던 그런 사람들의 정원인가 봅니다.

 

그 면적이 너무 크기에 하루에 걸어서 모두 돌아본다는 것은 다리도 돌고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넓고 힘이 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돌아봐야 할까요?

니 마음대로 하세요랍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우선 왼편에 있는 원명원을 먼저 보고 그다음 복해로 나와 장춘원에 들려 이미 모두

철저하게 파괴되어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로코코식 서양 정원을 볼 생각입니다.

그다음 들어온 곳인 남쪽으로 내려오며 기춘원을 살펴볼까 합니다.

 

원명원은 다른 중국의 원림과는 무척 다릅니다.

바로 서양식 정원이라는 점이죠.

처음에는 강희제가 넷째아들 윤진을 위해 지은 별정인 셈이랍니다.

아비 잘 만나면 이렇게 어마어마한 원림도 선물 받습니다.

 

그러나 청대의 황제 대부분은 이곳에 머물며 정무를 본 모양입니다.

호수 주변으로 100여 개의 전각을 배치하고 섬마다 아름답게 꾸미고 복해에 있는 섬 한복판에는 진시황이

서복이란 사내에게 눈뜨고도 당했다는 신선이 산다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의 세 섬을 상징하

는 작은 섬 3개를 조성했는데 역사상 유명했다는 정원의 모습을 흉내 내 지었고 특히 장춘원 북쪽에는 서양의

로코코양식을 본떠 만든 서양루는 무척 아름다운 건물이나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 프 연합군에 모두

파괴되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었답니다.

파괴되어 폐허 그대로 남겨놓아 더 시리도록 아름다운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어찌 오늘 하루로 만족하겠어요.

내일도 또 두리번거리며 구경해야 하겠어요.

우선 오늘은 경구 입구로 들어와 왼쪽 원명원 방향으로 먼저 구경하렵니다.

위의 사진에서 구주경구라는 방향이네요.

이곳은 유적이라고는 주춧돌만 보이고 건물은 모두 사라진 곳으로 호수와 수목이 우거져

산책하기에는 그만인 곳이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여행인 듯합니다.

그만큼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중국만 하더라도 하나의 지방이 어지간한 나라와 크기가 같으니까요.

그래서 돌아오면 또 다른 곳을 알아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