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기(妲己) 이야기 6 - 여자의 한은 무서운 겁니다.

2012. 9. 24. 08:00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그 무렵 서백후 희창은 주왕에 의해 유리라는 곳에 갇혀 지내고 있었습니다.

희창의 큰아들 백읍고는 아비를 구하려고 세 가지 보물과 미녀 열 명을 주왕에게 바치며

자기가 아비를 대신해 옥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효자 많지 않습니다.

 

달기는 매일 쭈구리 주왕만 바라보다가 백읍고의 수려한 용모를 본 후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매불망 백읍고가 자꾸 눈에 아른거립니다.

젠장, 잠자리에만 들면 왜 더 또렷하게 눈앞에 알짱거립니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우리가 말하는 백읍고는 성은 희(姬), 이름은 고(考)입니다.

백(伯)은 아버지 희창의 작위이며 읍(邑)은 장자라는 의미로 후계자임을 나타낸다고 하지요

그러니 백읍고는 즉 희백(姬伯)의 장자 고라는 뜻이랍니다.

 

어느 날 주왕이 술에 취한 틈을 타 슬그머니 백읍고에 수작을 걸었으나 본 척 만 척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달기가 포기할 여자라면 달기가 아니지요.

백읍고는 가야금을 무척 잘 켠다고 소문이 난 사내입니다.

그래서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백읍고를 불러 유혹하기로 합니다.

당장 1안이 실패하면 2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 여인입니다.

 

드디어 날을 잡아 백읍고를 내실로 부릅니다.

그리고 음탕한 눈을 살포시 내리깔고 목소리 또한 연인에게 속삭이듯 한마디 합니다.

 

"그대를 윗자리에 옮겨 앉게 하겠소. 내 자리는 그대 마음대로 하시오.

그대가 내 손을 잡고 줄을 같이 튕긴다면 금방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요런 게 바로 수작이라는 게지요.

그러나 달기는 수작이 아니라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라 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영화 "사랑과 영혼"의 명장면을 떠올립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자다가 깨어난 데미 무어 말입니다.

왜 오밤중에 그 짓을 했나 모르겠어요.

무슨 자기가 도공입니까?

도자기 물레는 왜 돌린 겁니까? 나 원 참!!!

 

물레는 혼자 돌리면 재미없다고 감독이 영화에서는 샘이라는 페트릭 스웨이지도 깨워

같이 돌리라고 했고 그러면서 나오는 음악이 언체인드 멜로디라고 분위기 죽이데요.

남녀가 오밤중에 일어나 물레나 돌리며 흐르는 음악을 듣고

많은 여성들 뻑 소리 나게 갔다 하더군요.

오늘 이 노래를 특별히 들으시며 이 글을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러나 저작권 때문에 노래는 올려 드릴 수 없습니다.

 

네...

바로 달기가 백읍고에 노린 것이 바로 이 장면과 같은 자세라는 점입니다.

자기가 데미 무어처럼 가야금을 앞에 놓고 앉으면 뒤에서 백읍고가 페트릭 스웨이지가 되어

뒤에서 달기의 손을 잡고 위의 사진 속의 자세처럼 가야금을 연주하는 겁니다.

 

정말 분위기 죽여주는 여인이 달기죠?

 그러나 영화와 현실은 다릅니다.

이건 달기의 오산입니다.

 

사람은 왜 로맨스를 자꾸 불륜이라 하는 겁니까?

달기는 내 자리는 그대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나는 무장해제했으니 자네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눈치 빵점의 백읍고가 정색을 하며 말을 합니다.

"신을 만고의 죄인으로 만드시렵니까?

사관들이 만약 이런 모습을 역사에 남긴다면 황후께서는 또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황후께서는 본디 천하의 국모로써 존경을 받고 계시고 겨우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존귀한 몸을 굽히신다면 어찌 체통이 서겠습니까?"

지금 체통이라 했습니까?

천박한 달기가 언제 체통이라는 말을 알기나 할까요?

 

"만약 이 소문에 궁 밖으로 나간다면 수정보다 맑고 옥보다 더 깨끗한 황후라도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실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달기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습니다.

 

두 사람만 은밀한 내실에 있는데 세상 사람이 어찌 안다는 말입니까?

두 사람 사이의 내실에서 있었던 은밀한 사연을 마치 사마천은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후세에 글을 남겼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달기 아줌마!!!

이미 소문이 다 나 한국 사람도 모두 알거든!!!

 

그리고 달기가 수정보다 맑고 옥보다 더 깨끗하다고요?

이 말은 오히려 아닌 사람이 들으면 비꼬는 말로 들립니다.

그래서 쥐구멍을 찾았을 겁니다.

 

그러나 달기는 순간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숨이 턱 허니 막혀버립니다.

마치 도둑질하려다가 현장에서 들킨 그런 모습입니다.

정신을 차린 달기는 백읍고를 물러가게 하고 혼자 부끄러움에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백읍고를 마음에 두고 연정을 품었지만, 부끄러움이 증오로 변합니다.

이거 무서운 겁니다.

여자의 연정이 증오로 변한다면 그 파괴력은 쓰나미를 능가하고 태풍 매미를 넘어서잖아요.

더군다나 달기라는 창조적인 여인에게는 증오가 어떻게 발산이 될까요?

 

결국, 달기는 주왕에게 백읍고가 가야금을 가르치면서 음흉한 작업을 걸어 수작을

부렸다고 고해바치자 주왕은 당장 백읍고를 참살할 것을 지시합니다.

완전히 업어치기 한 판으로 역전승해 버렸습니다.

 

백읍고는 무척 어리석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인데 미인계는 아니더라도 미남계라고 써서

아버지를 구하는 게 도리가 아니었을까요?

 

살신성인...

자신을 버려 아버지를 구했다면 만고에 효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가 하자고 하면 거부하거나 토를 달면 안 됩니다.

더군다나 달기 같은 여자에게는 말입니다.

佳人은 평생을 살며 여자에게 토 조차 달아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기는 너무 쉽게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합니다.

달기가 착안하고 달기가 결정하고 달기가 걸어가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형벌의 역사가 됩니다.

늘 신화와 전설이 창조되는 게지요.

얼마나 학구적인 여인인가는 우리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백읍고의 팔다리에 네 개의 대못을 박고 몸뚱어리는 칼로 초를 뜨듯 살점을 도려내

육젓을 담그고 살덩이는 국을 끓여 감옥에 갇힌 아비인 서백후 희창에게 먹으라고 보냈습니다.

이 일로 제후국인 주나라는 군주국인 상나라와 불구 대천지 원수 사이가 됩니다.

이런 이유로 나중에 제후국 주나라가 군주국이었던 상나라를 제대로 몰아붙였죠.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형벌을 가만히 보면 그냥 형벌이 아니라 중국인의 오래된 식생활인

음식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인육을 먹었던 중국인의 음식문화 말입니다.

 

공자도 먹었고 유비도 먹었지요.

뭘?

인육을 말입니다.

삼국지라는 이야기 속에서도 전투 중 군량미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인육을 먹고 버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마저도 해라고 불리는 인육으로 담근 젓갈 없이는

밥을 먹지 못했다는데, 공자의 제자 자로가 위나라 신하로 있다가 왕위 다툼에 휘말려

죽임을 당해 해로 만들어져 자신의 식탁에 오르자 다시는 해를 먹지 않았다고 하며 집안에

고이 보관했던 모든 젓갈을 모두 버리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세 사표라는 공자마저도 말입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도 믿지 마세요.

 

그때 달기가 했다는 형벌을 살펴보면.... 

해형은 사람을 죽여 살을 저며 젓을 담그는 것이고,

포형은 사람을 죽여 육신을 조각내 육포로 만드는 형벌이라 합니다.

자형은 사람의 인육을 굽는다 합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쓴 사기에 기록된 이런 형벌은 그냥 형벌로 끝낸 게 아니라 사실은

중국에서는 이때부터 인육을 먹는 풍습이 있었고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한 후에는 이런 것을

팔고 사는 시장까지 정식으로 열렸다 합니다.

어느 때는 너무 많은 인육이 시장에 나오는 바람에

다른 고깃값이 떨어지는 일까지 있었다네요.

출고 조절에 실패하면 가격 폭락까지 오는 게 시장 원리가 아니겠어요?

 

그러니 달기 이야기에 나온 형벌은 달기가 고안한 형벌이 아니라 중국에서 인간을 먹는

식인 풍습이 있었기에 나온 아주 자연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해형, 포형, 자형은 사실은 형벌을 이용하여 인육을 요리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라

봐야 할 겁니다.

남의 나라 음식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인육을 먹는 문제는...

위의 사진 속의 배추와 무는 옥으로 만든 작품으로 실제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었더군요.

이런 배추와 무를 맛난 젓갈로 담근 김치를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인육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이야기가 아주 쉽게 회자되는 나라지요.

우리에게도 유명한 제갈량이 썼다는 출사표 말입니다.

지금 출사표의 대부분은 위의 사진 속에 제일 왼쪽에 보이는 송나라의 악비의 글로 알고

있는데 그가 썼던 글을 하나 보고 오늘 이야기를 끝낼까 합니다.

 

그럼 잠시 만강홍(滿江紅)이라는 것을 보고 갑니다.

만강홍이란 짬뽕 국물 맛이 죽여주는 중국집 이름이 아니고

 악비(岳飛)의 유명한 시라고 합니다.

 

怒髮衝冠, 憑欄處, 瀟瀟雨歇.
성난 머리칼 투구를 찌르고, 난간에 기대서니 오던 비도 그친다.

 

擡望眼 仰天長嘯, 壯懷激烈.
눈을 치켜뜨고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으니 비장한 마음에 피가 솟구친다.

 

三十功名塵與土 八千里路雲和月.

서른 나이에 얻은 세상 공명은 티끌 같아서, 전선을 치달은 팔천 리에

뜬구름과 달빛만 스칠 뿐이라.

 

莫等閒, 白了少年頭, 空悲切.
어느 때 한가한 적이 있었던가. 소년이 어느덧 백발이 되었으니, 

공허하고 슬픈 마음에 가슴이 에인다

 

靖康恥, 猶未雪.
하지만 아직 정강의 수치를 갚지 못했으니,

 

臣子恨, 何時滅?
이 한스러움을 신하된 자가 어찌 잊겠는가.

 

駕長車踏破 賀蘭山缺!
이제 전차를 몰아 하란산을 돌파하리라.

 

壯志飢餐胡虜肉, 笑談渴飮匈奴血.
장부가 뜻을 세웠으니 배고프면 오랑캐의 살을 뜯어먹고, 

목마르면 흉노의 피를 마시리라.

 

待從頭, 收拾舊山河, 朝天闕.
이제 진두에 섰으니 빼앗긴 산하를 모두 수복한 후에야 천자의 궁궐을 조회하리라.

 

어떻습니까?

주먹이 불끈 쥐어지지 않습니다.

피를 토하고 비분강개해 지금이라도 창칼을 곧추세우고 오랑캐를 무찌르러

나가고 싶지 않으세요?

 

아니라고요?

마치 격문처럼 과격한 단어가 많이 보인다고요?

그렇군요.

특히 "장부가 뜻을 세웠으니 배고프면 오랑캐의 살을 뜯어 먹고, 목마르면 흉노의 피를

마시리라."라는 글은 너무 자극적입니다.

차라리 만강홍의 "짬뽕 면을 씹어 먹고 국물을 벌컥벌컥 마시리~"라고 하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중국인은 인육에 대한 존경심도 예의도 없는 민족인가요?

 

그러나 중국에서는 인육을 먹는 나라이기에 우리에게는 자극적인 말이지만,

저들은 일상의 식생활로 자주 겪는 일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악비이기에 그의 글이 한족의 마음에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양식이라서 악비의 출사표가 천하를 지배하나 봅니다.

누구는 악비의 글이 아니라 명나라 때 악비를 사칭해 쓴 글이라고도 하더군요.

워낙 짝퉁이 많은 나라이기에...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