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 흥망의 시작 형주(荊州, 징저우)

2014. 6. 30.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이창에서 징저우(荊州 : 형주)로 이동한 이야기를 하렵니다.

삼국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곳이 이곳 징저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곳 징저우는 군사적으로나 지리상으로 누구나 탐을 낸 곳이기에 그랬을 듯합니다.

조조나 손권 그리고 유비 모두 서로가 머리를 들이대고 마주보는 지점이 형주였을 겁니다.

 

일찌기 공명이 융중을 찾아 온 유비에 제일 먼저 이야기 한 곳이 바로 징저우입니다.

징저우란 바로 유비가 군벌로 대접받고 촉한의 싹을 틔우고 프랜차이즈를 갖춘 시작점이며

유비가 사망하고 촉한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시발점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아침 일찍 유비가 육손의 화공에 비참하게 패배하고 백제성으로 울면서 도망쳤던

효정산 고전장을 구경하고 다시 시내로 와 숙소에 맡겨둔 배낭을 찾아 바로 옆에 있는

터미널에 들려 징저우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버스는 작은 미니버스군요. (35원/1인)

 

우선 지도를 통해 이창에서 징저우의 방향을 먼저 보고 갑니다.

장강삼협을 벗어나 동쪽으로 오면 싼샤댐이 있고 바로 옛 이름 이릉인 이창이 있습니다.

이창에서 장강을 따라 형주로 가는 길에 장강 변에 유비가 육손의 화공을 당해

많은 희생을 치른 효정고전장이 있지요.

장강을 따라 계속 동남쪽으로 달리면 징저우가 나옵니다.

효정고전장은 촉한이 징저우로 가기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목구멍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렇게 옛날에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기에 주로 강을 따라 배를 이용하거나

잔도를 만들어 이동했을 겁니다.

 

이창에서 징저우까지는 거리가 약 100kn 정도로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가기에

가깝고 시간은 1시간 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버스는 수시로 다녔고 우리는 오후 1시 30분 버스를 타고 2시 40분경

징저우 초도객운참에 도착했지요.

오늘은 안개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합니다.

 

징저우의 숙소는 터미널 바로 건너편 골목 안에 있는 금원빈관으로 70원에 구했습니다.

와이파이 되고 난방시설인 콩티아오도 되는 곳이라...

아침부터 열심히 구경한 탓에 일찍 징저우에 도착했습니다.

그렇다고 숙소에 머물기가 그렇잖아요.

숙소에서 징저우성을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이렇게 글로 알려줍니다.

말은 몰라도 글로 쓰면 대강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숙소를 나와 터미널에 들려 다음 여행지인 우한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봅니다.

버스 터미널에 안내데스크가 있어 물어보니 우리에게 버스보다는 기차를 권합니다.

아니? 버스편을 물어보는데 기차를 소개하다니...

징저우에도 기차가 다니는가 봅니다.

이런 정보도 알지 못하고 여행 하다니...

 

버스는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리기에 힘이 들 것이라고 최근에 동차가

징저우에 개통되어 빠르고 저렴하다고 하네요.

사실, 우리 부부는 징저우에서 우한으로 가는 기차가 있는지도 모르고 왔거든요.

이제 내일 이동할 방법을 알았으니 오늘도 오후 내내 걸어서 징저우 성을 구경하렵니다.

이제 우리 부부 둘만의 여행이기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잖아요.

 

먼저 징저우 성을 지도를 통해 알아봅니다.

징저우 성은 장강 바로 북쪽에 만든 성으로 지도를 통해 보듯이 인공으로 만든

해자로 성을 둘러싸고 있어 남쪽은 장강이 자연적인 방어역할을 하고 있기에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에 무척 쉬운 곳입니다.

 

반대로 공격하는 측에서는 쉽지 않은 곳이라는 말이겠죠.

성의 모습은 네모 반듯하지 않고 수로를 따라 제멋대로 생겼네요.

인공위성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다 보니 형주성의 견고함이 느껴집니다.

 

또한, 장강에서 배로 바로 형주성으로 들어갈 수 있게 수로가 연결된 곳이라 합니다.

이렇게 지도를 통해 먼저 구경할 곳의 위치나 모양을 알고 나면 구경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되며 물론 우리 부부처럼 걸어서 구경하는 처지에서는 이렇게 지도만 머리에 넣으면

징저우도 우리 손바닥 안에 있지요.

 

징저우라는 곳이 이렇게 장강을 끼고 있는 곳이라 물산이 풍부하고 동오에서도 욕심을 냈고

조조도 껄떡거렸고 공명은 일찌감치 유비에게 이곳을 안면 몰수하고 삼키라고 했을 겁니다.

게다가 농사도 무척 잘되는 지역이라 아주 살기 좋은 물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대강 징저우 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그 방향으로 가다 보니

해자가 보이고 성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자는 자연적인 게 아니라 인공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네요.

성벽을 바라보니 쉽게 공략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유비는 인화(人和)를, 손권은 지리(地利)를 그리고 조조는 천시(天時)를 얻었다는

말이 있는데 조조는 때를 잘 만났다는 말이고 손권의 동오는 장강이 자연적인

방어역할을 했기에 지리적으로 유리한 곳에 자리했다는 말이고

유비는 사람 잘 만났다는 말이 아닐까요?

 

과연 그랬을까요?

이 말이 얼마나 유비를 과대평가하는 말입니까?

두 사람은 때와 장소를 잘 만났다는 말인데 그 말은 유비를 제외하고는

인간성이나 능력은 없다는 말이잖아요.

 

동오의 손권은 나이가 젊지만, 무척 영특했나 봅니다.

주로 젊은 인재가 언제나 넘쳐났던 곳이 손권 주변이죠.

게다가. 지역적으로도 살짝 비켜났기에 중원의 거센 풍파도 조금 약하게 지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손권을 모시고 동오를 움직였던 세력으로는 주유, 노숙, 여몽, 그리고 백면서생이라는

육손으로 이어지는 인화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관우도 유비도 모두 육손에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위에 보이는 문이 소북문이라는 문입니다.

소북문은 대북문의 스페어 문인가 봅니다.

이제부터 우리 부부가 걸어가며 눈으로 보았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것을 보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유비가 인화라고요?

모두 서천으로 가고 관우가 형주를 지킬 때 이곳 징저우를 떠나

잘난 체하고 주변에 건벙떨고 다녔죠.

왜?

공명이 집이나 잘 지키고 수성하라고 신신당부했는데 힘자랑이 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렇게 관우는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했는데 무슨 인화입니까?

장비도 수하 장수나 패며 꼴통 짓 하다 죽었는데 유비 혼자 인화라고요?

유비는 사실 우유부단한 사람 아니었나요?

 

아니군요?

마지막 전투였던 동오 침공 때 공명과 조자룡이 그렇게 말렸는데 고집으로 출전해

홀랑 말아 드셨고 맨날 명분 타령하며 혼자만 군자인척하며 살다가 왜 마지막 전투에

그리도 주변의 만류를 무시하고 고집을 부렸는지...

조조가 인화가 아니라고 하는 데 늘 조조 곁에는 인재가 넘쳐났고 조조를 주군으로 모시고

목숨을 버린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게다가 조조를 황제 자리에 오르라고 부추긴 사람은

모두 조조를 위한 조조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주군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마다않고 목숨까지 버렸던 사람이 지천이었습니다.

 

징저우와 오나라의 접경인 육구에 당시 동오의 장수 넘버 원인 여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을 핑계로 물러나며 처음 데뷔하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육손을 후임으로 맡기며

관우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게 하고 그다음 형주를 쳐 빼앗은 일을 꾸민

사람이 모두 육손의 작품이죠.

 

육손을 육구에 앉히고 병을 핑계로 후진으로 물러난 여몽은 드디어 3만의 병사를

80여 척의 배에 태우고 징저우로 향합니다.

징저우의 중요성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일이죠.

위, 촉, 오 모두가 욕심을 내는 군사상의 아주 중요한 요새입니다.

 

그리고 징저우라는 곳은 바로 장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이기에 배로 들이닥치면 바로

성문 앞이되니까 관우도 장강을 따라 징저우로 이르는 길목에 미리 봉화대를 설치해

오나라의 움직임을 세밀히 살폈습니다.

아주 사려 깊은 대비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했지만, 원래 도둑이 들라치면 개도 짓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봉화대를 지키는 병사가 개는 아니겠지만... 개보다도 못한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여몽은 미리 군선이 떠나기 전에 장사꾼으로 변장한 배를 먼저 보내 술과 음식으로

파수병을 취하게 한 후 봉화대를 접수한 후 투항한 병사를 설득해 하나씩 다음 봉화대로

나아가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고 징저우로 접근했습니다.

봉화대도 없는 징저우는 대문이 활짝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책일지라도 결국, 그것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사람이란 말이겠네요.

 

마지막에는 투항한 촉한의 병사가 일을 핑계로 징저우 성에 문을 열게 한 후 여몽의 3만의 군사를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 큰 전투도 없이 꿈에 그리던 징저우를 손에 넣었습니다.

징저우...

동오로는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입니까?

적벽대전이 끝난 후 이곳 징저우는 동오의 영토여야 했는데 공명의 장난으로 유비가 먼저 들어가

지금까지 요 핑계 저 핑계 대며 버텼잖아요.

 

성안으로 들어와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네요.

물론 정식으로 난 길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오르내려 오솔길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올라가 성벽 위로 걸어가렵니다.

 

참 한적한 곳이군요?

아무도 걷지 않는 이런 성벽 위를 걷다 보니 마치 관우를 만날 수 있고

당시 급박했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성벽 밖에서는 적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우리 부부는 마치 그때

공성전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시간이 흘러 그때의 긴박했던 분위기는 사라져버렸지만,

여기는 그런 숨 막히는 장소였을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니 이렇게 공성전의 한 가운데 서서 그때를 상상하기도 하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어때요?

바쁜 여행 중일지라도 이렇게 한가한 곳을 걷는다면 정말 기분이 상쾌합니다.

부부가 둘이서 데이트도 즐길 수 있잖아요.

정신없이 여행하다가 이런 고즈넉한 장소를 걷는다는 일은 마치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라도 받은 그런 느낌입니다.

어때요?

중국에서의 여행은 늘 많은 사람 속에 파묻혀 다니기 일쑤였지만,

이렇게 한적한 장소도 가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