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운주사 와불이 일어나는 날에는 세상이...

2023. 1. 16.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전라남도, 제주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위의 사진은 와형석조여래불(臥形石造如來佛)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말로 간편하게 와불이라고도 부른다네요.

그러나 이곳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여기에 누운 부처가 일어나는 날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교는 중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탄생한 종교지요.

인도에서 탄생한 힌두교에는 중요한 세 신인 쉬바, 브라흐만 그리고 비쉬누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혼탁해지면 쉬바는 세상을 철저하게 파괴해버리고 브라흐만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며 새로 탄생한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비쉬누는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는데 9번째로 나타난 것이 부처의 모습이라고 하지요.

 

이제 세상이 다시 어지러워지면 비쉬누는 부처의 모습에서 10번째 화신인 칼키(Kalki)가

칼을 든 백마를 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힌두교에서 말하는 부처 다음 세상에 온다는 백마 탄 초인이라는 칼키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화순 운주사에 누운 모습의  와형석조여래불일까요?

 

대웅전 오른편 산등성이에는 거대한 불상 두 기가 위의 사진에 보시듯이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이 불상의 공식 명칭은 와형석조여래불(臥形石造如來佛)인데 흔히 와불(臥佛)이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사실은 이곳의 와불은 열반에 든 모습은 아니지 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운주사에서 가장 볼만한 것이 와형석조여래불이라는 조각이 아닐까요?

 

열반상이라고 하면 위의 사진에 보듯이 대체로 옆으로 누운 모습과 발이 밖으로 나온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이곳은 반듯하게 누운 상태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까 열반상이 아니고

그래서 여래불이 누운 모습으로 돌에다 조각했다고 하여 와형석조여래불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와불은 실제로는 와불이 아니라 바위에 조각을 하는 중 미완성 상태로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부처들일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아마도 제대로 완성했다면

이곳 운주사에 무수히 많은 석불처럼 어디엔가 세웠을 것이지요.

 

손의 모양으로 보아 각각 비로자나불 좌상과 석가 여래불 입상으로 본다는군요.

이들이 일어나는 날 세상이 바뀐다는 설화가 후대에 생겨나기도 했다는데,

애초의 의도대로 이 거대한 불상들을 세웠더라면 크기로 보아 단연 운주사의

중심 불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진실이지 싶습니다.

 

200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크기도 각각 12.7 m와 10.3 m 나 되어

국내에 있는 석불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네요.

운주사의 낮은 산등성이에 길게 누운  2구의 불상으로 왼편은 하반신을 마치 결가부좌한

다리처럼 만들어 좌불이라 하고, 오른편은 따로 다리를 나타내지 않아

입상으로 알려졌다네요.

 

넓적한 바위 암면을 다듬어 불상의 형태를 만들었으나 운주사의 다른 불상처럼

얼굴과 머리만 윤곽이 분명하고 신체는 장승처럼 처리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누운 모습의 불상은 유례가 드물기 때문에 일설에는 먼저 조각을 하고

일으켜 세우려다 실패하여 현재와 같이 누워있는 모습이 됐다고 전하지만,

바위 모습으로 보면 처음부터 입상을 세우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넓은 암반에 불상을 조각한 것뿐으로도 보입니다.

 

심지어 운주사를 세운 도선국사가 하룻밤 만에 천불 천탑을 다 만들려다가 동자승이 장난 삼아

닭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날이 밝아오는 줄 알고 안타깝게도 석불 2좌는 마지막으로

세우려다가 실패하여 그대로 두어 완성을 보지 못했다는 전설도  있다네요.

 

통상적으로 와불은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처럼

하늘을 똑바로 누운 모습의 불상을 와불이라고 할 수는 없다지요.

와불은 부처의 열반 장면을 재현한 것이므로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형상이라고 하고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와불을 만드는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운주사 와형 불상 2좌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며 좌우지간,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누워있는 모습의 불상이라는 데 의의가 있겠네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운주사 지역은 무등산의 한 줄기로 해발

100여 m의 야트막한 야산으로 운주사는 남북 방향으로 두 산등성이 계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천불천탑의 사찰이라는 운주사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처 조각인 와형 석조여래불인 와불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북극성을 상징하고 운주사 경내에 배치되어 있는 많은 석탑들은 북극성인

와불을 중심으로 하늘의 별자리와 거의 일치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최근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답니다.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했을 때 화장을 하는데 불에 타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부처님이 가장 사랑하는 가섭이라는 제자가 있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보냈는데도 오지 않으니까 부처님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답니다.

당시 교통상황도 열악하고 또 거리도 멀었기에 가섭이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테니까요. 

 

가섭이 도착하고 장례식을 치르려고 하면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도 저희와 다르실 게 없다.

돌아가시니까 제가 와도 알아보시지도 못하신다"면서 넋두리 삼아 푸념을 했답니다.

그러니까 열반하신 부처님이 다리 하나를 쑥 내밀더랍니다.

 

사실 부처님께서는 인도 붓다 가야의 마하 보리수나무 아래서 6년간 고행 후 열반하신 모습은

위의 조각처럼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근데 누운 상태로 다리가 나왔다는 이 부분이 불교 경전인 팔상록에 나온다는데 팔상록은

부처님의 8가지 생애를 기록한 경전인데 이곳에 곽시쌍부(槨示雙趺)라고 기록돼 있답니다.

곽시쌍부란 화장을 할 때 시신을 관에 넣었는데 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는 의미랍니다.

 

그런데 인도는 화장할 때 시신을 관에 넣지 않고 헝겊으로 몸을 감았는데 아무래도

그 내용이 중국으로 전해지며 중국식으로 헝겊이 아니라 관이라는 말로 변했지 싶습니다.

이를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부활과 같은 의미의 이야기겠지요.

위의 사진은 태국 아유타야에서 찍은 열반에 든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열반상이라고 하면 옆으로 누운 상태로 위의 사진처럼 발은 외부로 노출되어야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런데 이곳의 와불은 분명 열반상이 아니라 그냥 바위 위에 여래상을 조각을 한 후

나중에 떼어내 따로 모시려고 하다가 그대로 내버려 둔 미완성의 조각이 맞지 싶습니다.

 

오래전에 보았던 중국 대족에 있는 보정산에는 바위를 깎아 많은 석각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곳 석각에 중 대표선수인 열반상인 석가열반성적도(釋迦涅槃聖迹圖)입니다.

길이가 31m이고 높이가 7m나 되는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돌아누운 대형 열반상입니다.

 

아마도 단단한 바위 언덕을 일일이 쪼아 가면 만든 많은 불교 조각 중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조각상이었지요.

그곳에서도 가장 컸던 조각상이 바로 위의 열반상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보았던 나무나 시멘트로 만든 열반상과는 그 차원을 달리했던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