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봉(茱萸峰) 오르는 길

2012. 5. 21.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미소년이 보입니다.

이게 뉘신 가요?

왕유(王維)가 아니신가요?

잠시 첫 번째 계단으로 사진 찍으며 잠시 머물다 갑니다.

책을 들고 있다는 것은 먹물깨나 먹었다고 자랑하는 것이지요?

 

왕유는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 (畵中有詩 詩中有畵)라고 말한

남종화의 창시자이자 유명한 시인이라 하네요.

왕유는 9월 9일 산동의 형제를 그리며 썼다는 九月九日憶山東兄第(구월구일억산동형제)라는

시 한 편이 수유봉 올라가는 입구에 동상과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시를 이곳에 동상과 함께 새겨놓은 이유는 이곳과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겝니다.

 

그는 이 시에서 이곳 운대산의 풍광에 빗대어 고향을 그리워했다 합니다.

어디 그 시를 한번 보고 가도록 하지요.

 

獨在異鄕爲異客
홀로 타향에서 낯선 나그네 되어

每峰佳節倍思親
봉우리마다 명절 오면 부모 생각 간절하네

遙知兄第登高處

멀리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올랐음을 알거늘

遍揷茱萸少一人

수유봉 다 돌아도 여전히 혼자라네

 

그렇군요.

바로 지금 우리 부부가 걷고 있는 이 수유봉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울 마눌님도 수유봉 모퉁이 돌아도 혼자입니다.

우리는 타향이 아니고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이고 우리도 형제자매 다 있걸랑!

여행이 길어지니 자식도 보고 싶고 한국 음식이 그리워도

찔찔거리지 않고 모퉁이 돌아간다! 왜!!!!

집이 그리워 투정 부려보았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우리가 오르는 이곳이 바로 수유봉입니다.

손사막과는 달리 얼굴을 자세히 보시면 아주 젊은 미소년의 얼굴입니다.

 

그 이유는 약관의 나이로 진사에 합격한 수재였기 때문일 겁니다.

말년에는 속세에 환멸을 느껴 세상을 등지고 방콕 했다 합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佳人처럼 주유천하나 하지?

 

인물 잘났지, 약관에 고시 패스했지, 글 잘 쓰지, 그림까지 잘 그리지...

사람은 이렇게 너무 잘나면 세상이 우습게 보여 오히려 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은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지요.

佳人처럼 부족한 사람이 되어 덜수처럼 사는 게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냥 덜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겁니다.

 

잘난 사람 너무 찾지 마세요.

평생 뒤 바래질 하며 삽니다.

조금은 부족한 듯하여 서로 메워주며 사는 겁니다.

톱니바퀴가 서로 매끈하면 헛돌게 되어 있잖아요.

 

손 영감!

영감 얼굴도 확대해 올려 드릴 테니 왕유와 한번 비교해 보슈~

후세 사람은 약관에 입신한 왕유는 어린 미소년으로 기억하고 손 영감은

쭈그렁탱이 영감으로 기억하고 있다오.

영생 불로를 위해 평생을 산 영감을 후세사람은 이마에 내 川 자를 그린

영감탱이로 기억하고 있다니 충격적이지 않소?

영감~ 지금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싶을 게야~

영생 불로..

이 얼마나 허황된 꿈이런가?

 

그 모든 게 헛된 꿈이라는 것을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파란 하늘을

마지막으로 올려다보며 숨을 몰아쉴 때서야 느꼈을 게야~

인간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늘 꿈만 꾸다가 한 세상이 긴지 알고 살았지만,

마지막 들이마신 숨조차 다 내뱉지 못하고 간다는 사실을...

 

수유봉 정상은 이 산에서 가장 높다는 1.306m라 하네요.

그곳에는 도교사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고 그냥 산길을 걷는 트레킹이 목적입니다.

잠시 오르니 정자 하나가 보입니다.

우리 부부는 늘 가까운 산에 가지만, 정상까지 올라간 적이 몇 번 되지 않습니다.

그냥 우거진 숲이 좋아 숲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정자의 이름도 없는 거 있죠.

다른 정자는 전설까지 있지만, 정자도 못나면 중국에서 이런 찬밥이 됩니다.

게정(憩亭)이랍니다.

그냥 쉬는 곳이라는 말이죠.

 

이제 여기서 잠시 쉬며 고민합니다.

올려다보니 아직 정상은 까마득합니다.

올라가?

말아?

 

저 사다리로 걸어 올라가면 정상에 있다는 도교사원인 진무관이 있고 그곳에는 도사들이

있을 것이고 약왕이라는 손사막이라는 자도 여기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든다는

난리법석 부렸지만, 그는 갔습니다.

저 위에 산다는 도사는 어떨까요?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꿈만 좇아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자 앞에서 좌판을 열어놓고 앉아있는 노인네가 우리 눈치를 채고 손짓으로 길을 알려 줍니다.

우리 부부를 보니 딱 올라가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거든요.

그래서 올라왔던 계단으로 내려갈까 망설이고 있으니....

 

옆으로 난 길을 알려줍니다.

그 길로 걸어가면 주차장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답니다.

그리고 경치마저 좋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산에 오르는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게 아닙니까?

근데 왜 올라가요?

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어제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한 천폭협을 가려고 하니

시간이 넉넉지 않습니다.

핑계도 좋지 않아요?

 

이제 이곳도 가을이 익어가나 봅니다.

제법 가을 냄새가 나지 않나요?

이곳의 가을은 흉내만 내나 봅니다.

환장하게 예쁜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정신 나간 중국산 개나리도 있습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꽃은 피워요?

이런 시비도 걸며 오솔길을 걷습니다.

 

요통환자가 지나갔나 봅니다.

누군가 나뭇가지를 꺾어 바위 사이에 받혀놓았습니다.

참 소박한 모습입니다.

허리 통증이 저런 나뭇가지를 꺾어 받쳐 놓았다고 낫는다면 여기에 신약 개발한다고

난리 친 손사막은 바보 천치라는 말입니다.

저 나뭇가지 꺾다가 오히려 허리 삐끗할까 겁이 납니다.

 

심심한데 왕유의 다른 시 하나 읊으며 걸어가죠.

어때요?

이런 길을 그냥 맹숭하게 걷기보다 시라도 읊조리면 업그레이드나 된 듯하고 폼이 나잖아요.

마누라~ 내가 창을 하면 당신이 "얼쑤~"하며 박자를 쳐주실라우?

 

相送臨高臺(상송임고대)하니 

서로 이별하고 고대에 오르니

 

川原杳何極(천원묘하극)이라

내와 들판은 어디가 끝인지 아득하네

 

日暮飛鳥還(일모비조환)한데

해 저물어 새들은 보금자리로 돌아가는데

 

行人去不息(행인거불식)이라

가는 님은 쉬지도 않고 떠나가네

 

왕유(701-761)는 이백(李白 : 701-762)이나 두보(杜甫 : 712-770)와 같은 시기에 살았나 봅니다.

물론 이백이나 두보와 비교하면 그 명성이 2% 정도 덜하지만,

나름대로 무척 많은 작품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네요.

 

한나라 헌제가 여름에 피서를 왔다고 피서대와 능묘가 남아있고

위진 시대에 죽림칠현이 이곳에서 세월을 낚았다고도 하고요.

그러니 이곳이 놀기는 좋았던 곳인가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르던 길과는 다른 길로 벌써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왔습니다.

 

오늘 수유봉 트레킹을 했던 지도입니다.

정류장을 출발해 노란색을 따라 산을 오르다 약왕동으로 빠져 숲길을 따라 산책하다

다시 정류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정상인 현제궁으로 오르는 길은 파란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

만선사로 가는 길이 있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버스를 타고 내려가렵니다.

그 이유는 어제 천폭협을 못 보았기에 그곳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미 끝나버린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라고 했습니다.

여행도 한번 지나치면 다시 가기 쉽지 않기에 돌아오면 많은 후회를 남깁니다.

늘 후회 없이 돌아보자 했지만,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늘 덜수처럼 살아가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