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건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바히아 궁전

2024. 4. 19. 04:00모로코 여행기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장식을 정말 아름답게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천장이나 출입문 위의 장식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쉽게 볼 수 없었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히아 궁전 단지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술탄이었던 하산 1세의 가장 중요한 보좌관 중

한 사람이 된 전직 흑인 노예였던 시 무사(Si Moussa)가 1867년에 완공했답니다. 

흑인 노예의 처지에서 일약 재상에 올랐다니 시 무사의 능력은 대단했나 봅니다.

 

 

그러나 능력보다는 모시던 술탄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후계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황이라 나이 어린 새로운 술탄을 옹립하는 과정에 반대세력을 흑인 시종이었던

시 무사(Si Moussa)가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앞장서 지켰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대재상에 올랐다고 하네요.

 

 

게다가 왕궁에서 오래도록 생활했기에 새로 옹립한 술탄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모시다 보니 거의 수렴청정에 가까운 보좌를 한 덕분이었지 싶습니다.

새로운 술탄은 시 무사 덕분에 자다가 떡이 생겼기에 보담을 해야 하겠지요?

 

 

Ba Ahmed ibn Musa(간단히 Ba Ahmed로 알려짐)는 술탄 Moulay Hassan의

하집(hajib)이었으며 그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Abdelaziz가 1894년 왕위에 오르도록 하여

그를 대총리로 승진시켰습니다.

압델라지즈가 겨우 16세였을 때, 바 아흐메드는 1900년 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모로코를 다스렸던 통치자가 되었다네요.

 

 

바이아 궁전은 비즈니스 및 행정 목적을 위한 홀과 같은 다양한 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의 아내를 위한 4개의 방은 크기가 동일합니다. 

이는 4명의 아내 모두의 지위가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24명의 후궁을 위한 방 12개(방 1개에 후궁 2명)와 식당, 아부의 아들과 딸들이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하루에 5번 기도하기 위해 모스크로 변신하는 학교

아부의 숙소에는 창문이 있는 여름 방과 창문이 없는 겨울용 작은 방,

그리고 자신만의 개인 식당이 있습니다.

 

 

이 궁전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아랍풍의 건축으로 그곳을 아름답게 장식한 조각들입니다.

주로 천장은 삼나무로 장식한 기하학적 문양이 있고 아라베스크 문양을 볼 수 있지요.

주로 반복적인 기하학적인 문양과 식물의 줄기나 잎이라고 생각되는 문양이

연속적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무슬림에게는 동물의 모양이나 사람의 형상은 우상숭배라고 하여 절대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에 이런 문양이 인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왔는데 우리는 흔히

당초(唐草) 문양이라고 하는데 당초문양이라고 하면 당나라 스타일이라는 의미인데...

 

 

그런 후에 중동과 그리스를 거쳐 건너온 문양이니 당나라 스타일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우리가 알지도 못했던 나라로부터 전해지는 게 많으니

직접 왕래가 없었더라도 문화의 세계는 모두 하나로 통합되나 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벌집 모양으로 생긴 무카르나스( Muqarnas) 또는 모카라베(Mocarabe)

장식은 무슬림만의 독특한 장식 방법으로 무카르나스는 이슬람 건축에서 매우 중요한데,

그 정교한 형태는 신이 창조한 만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궁전은 1859년부터 1873년까지 시 무사(Si Musa)에 의해 개인적인 용도로 처음

착공되었으며 그 후 1894년부터 1900년까지 술탄 Moulay Abdelaziz의 대재상이었던

그의 아들  바 아흐메드 이븐 무사 (Si Ba Ahmed ibn Musa)에 의해 계속 확장되어 오늘날

마라케시의 유명한 역사적 기념물이자 관광 명소가 되었답니다.

 

 

그러니 시 무사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시 바 아흐메드 이븐 무사(Ba Ahmed)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력의 큰 축을 담당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 이 궁전은 왕실 소유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시 무사 사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술탄은 이 궁전을 약탈할 것을 명령해 귀중품은

모두 사라졌고 건물은 주로 외국손님을 위한 접대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하산 2세에 의해 모로코 문화부로 이관되며 지금처럼 공개되었다는데

워낙 모로코 안에서는 잘 보존된 덕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답니다.

원래 무슬림은 다른 지역을 점령하게 되면 사흘간 그 지역을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전리품을 챙길 수 있도록 약탈을 허용하는 관습이 있지요.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치장 벽토, 그림, 모자이크로 장식된 건물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장식이 일부에서는 월등하게 뛰어나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오래된

마라케시에서는 그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되더라고요.

 

 

1956년 모로코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을 때 바이아 궁전은 한때는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하산 2세가 이 궁전을 모로코 문화부 관리소로 넘겨 문화 아이콘이자

관광 명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며 리야드의 살롱은 조각된 나무 상인방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디테일로 장식되어 있는데 바히아 궁전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장식 기능으로 사용한 북아프리카 최초의 건물이라고 합니다.

 

 

궁전 바닥은 주로 대리석과 타일로 포장했습니다.

천장의 모습은 화려한 꽃무늬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천장을 만든 재료는 삼나무로

아틀라스 산맥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는데 같은 무슬림들이 만든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도 같은 삼나무로 천장을 만들었다는데 아마도 같은 곳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천장의 일부는 삼마무로 장식하고 그 위에 금칠을 하기도 했으니

여기보다 더 화려하게 만들었네요.

타일은 테투안이라는 곳에서 가져온 것으로 당시 그곳의 장인까지 데려와 만들었다고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건물 구조는 일관성이 있지 않아 보이는데 그 이유는 궁전 건축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 완공한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세대를 이어가며 기존 건물에 붙여

만들었기에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더덕더덕 붙여 지은 듯 질서 정연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마라케시와 같은 혼잡한 도시에서 그나마 이런 규모와 정돈된 모습을 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