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상부 내성은 전쟁을 대비한 군사 보루입니다.

2012. 4. 30.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오늘은 황성상부의 내성을 돌아보렵니다.

황성상부는 크게 두 곳으로 나누어진다는군요.

그러니 앞쪽을 외성이라 부르고 뒤를 내성이라 부르며 다른 말로 두축거라고도 한다는군요.

 

외성과는 달리 내성은 뭔가 느낌이 다릅니다.

아마도 내성 가운데 탑처럼 우뚝 솟은 건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워낙 멋없이 불쑥 솟았기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그 건물은 하산루(河山樓)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건물로 여느 건물과는 다르게

황성상부에서 가장 높이 우뚝 솟아 균형이 맞지 않게 지었습니다.

건물이 워낙 군계일학이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멋이 없기에 군계일학을 취소하고 군학일계라고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그 건물의 용도가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라면 담뱃잎이나 말리고 곡식 건조 창고로나 쓸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니면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본 소방서 망루처럼 멋도 없이 불쑥 솟아있네요.

 

하산루(河山樓)는 명대인 1632년 숭정 5년에 지은 건물이라 합니다.

진 씨 패밀리가 전란을 피하고자 지은 건물로 하산루는 그 내부를 천혜의 요새로 만들어 놓았다

하는데 건물 내부에는 아주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놓아 많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게

하여 놓은 곳이라 합니다.

그래도 노래방이나 뭐 그런 것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황성상부의 내성은 전쟁을 대비한 군사 보루인 셈입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군사시설이라니...

그러나 이런 시설로 말미암아 황성상부가 보존되었다니 비록 흉물스럽더라도

꼭 필요한 시설이었을 겁니다.

세상에 남을 공격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사는 민족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전쟁을 대비하는 시설은 어느 나라나 필요한 시설입니다.

 

주위의 건물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나 홀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하산루는 실제로 난이 일어났을 때 이 안에 800여 명이나 들어갔으며 난이 일어나는 동안

피해를 당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합니다.

이처럼 거대한 건물이 400여 년이나 풍상 고초를 겪었겠지만, 여전히 처음 지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이것은 명, 청 시기를 거치며 온전하게 보존되었기에 건축 역사의 일대 기적에 가깝다 할 수

있으며 안타까운 일은 내부를 돌아볼 수 있도록 개방하지 않고 잠가놓아

내부를 보여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전쟁을 미리 대비한 시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만약, 전쟁으로 이곳이 불타버렸다면 아무것도 남지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하산루는 벽돌과 돌로 지었으며 유사시 최대 천여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곳이라 합니다.

건물 내부의 통로와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7층 건물에는 3층부터 방에 창문을 냈고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는 지금은 편의상 계단을 설치했지만, 원래는 2층이 높게 설계되어

밧줄 다리를 통해서만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합니다.

그러니 안에서 내려준 밧줄 사다리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산루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구조라 합니다.

 

하산루 옥상에는 적군을 감사할 수 있는 성루와 성가퀴가 있고 유사시 이곳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지하에 따로 마련되어 있답니다.

그 비밀통로는 지하로 연결되어 있기에 적은 아무도 눈치를 챌 수 없다 하네요.

 

또 오랜 시간 이 안에 갇혀있을 것을 대비해 안에는 우물과 정미 시설 등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일상용품이 갖추어져 있고 상당한 양의 곡식이 언제나 저장되어 있었다 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늘 이렇게 전쟁을 대비하며 살았던 나라인가 봅니다.

 

이렇게 감옥보다 더 높은 담으로 둘러치고 살았던 이유는...

그러니 양반이고 황제의 사부고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재상이고 나발이고 도적 떼의 습격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이곳을 공격할 수 있고 약탈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젠장, 이렇게 아름답고 묵향 그윽한 곳에 전쟁을 준비한 건물이라니....

정말 환장하게 아름다운 곳이군요.

 

위의 사진을 보시면 하산루로 오르는 계단은 최근에 만든 것임을 아실 수 있겠네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지금도 언제든지 남의 나라를 침범해 훔쳐가면 그게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사는 민족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서해바다로 넘어와 노략질하다가 단속당하면 흉기를

휘두르며 단속하는 사람의 생명까지 해치는 해적과도 같은 일을 요즈음도 서슴지 않고 하잖아요.

 

중국이라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도둑과 함께 동고동락했다는 말인가요?

도적 떼와 겸상하고 밥을 먹는 기분으로 살았을까요?

하루하루를 살벌하고 아주 짜릿한 느낌으로 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중국에서는 늘 일어났다는 말이 되겠네요.

 

정말 혼돈의 세상 속에서 인내와 고통의 세월을 보냈나 봅니다.

가만히 성벽에 기대어 그때로 돌아가 대화를 시도해 봅니다.

그런데 말이 들린다 한 들 佳人은 중국어를 모르는데...

여행 중 이곳 사람과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가끔 시도하지만, 언제나 허당이며 우리 부부의 여행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가는 것을 금방 알아채고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집안의 모습을 둘러보고 다녀도 내성은 이렇게 답답합니다.

터가 부족한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좁은 골목을 만들고 살아갔나 봅니다.

골목을 이렇게 좁게 만든 그 이유는 또 따로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황성상부의 내성은 진 씨 가문이 명나라 때 지은 보루식 건물인 두축거이기

때문이고 바로 침입에 대비해 만든 보루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답답하게 보입니다.

곳곳에 문을 만들어 유사시 문을 닫아 모두가 작은 구역으로 나누어지고 하나하나가

전투 단위로 세분화하기 때문입니다. 

진씨네가 살던 두축거는 상대적으로 독립되면서도 교묘하게 서로 연결된 각자 폐쇄된

8개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제 군사를 숨겼다는 장병동을 살펴보렵니다.

위의 사진처럼 장병동(藏兵洞)은 글자 그대로 군사를 숨긴 토굴이라는 말입니다.

건물 모양은 산서성의 토굴집 모양인 요동처럼 만들었습니다.

125개의 방을 가진 장병동은 아주 세밀하게 포개지듯 있습니다.

개인이 사는 집에 병사를 주둔시켰다니....

 

진 서방은 노복 중 힘깨나 쓰는 젊은 노복으로 하여금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시켜 개인 사병으로

이용했다고 하며 군사가 기거한 토굴집은 경사가 있는 곳이라 그 경사를 이용하여 층마다

서로 다르게 통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유사시 바로 성문으로 직통할 수 있도록

지하와 지상에 비밀 길을 두었다 합니다.

 

아쉽게도 하산루와 장병동의 문이 잠겨 그 암도를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이와 비슷한 방법은 바로 이웃하고 있는 꾸어위촌에 갔을 때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비슷한 형태의 암도를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물론, 이곳 하산루는 그곳에 있는 예루를 본떠 만든 군사시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 암도는 1급 군사 비밀이라서 출구가 어디로 나가는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곳은 전체 설계를 공격과 방어를 겸비한 곳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아마도 매월 15일을 민방위 훈련일로 정하고 훈련 사이렌과 동시에

"이번 훈련은 실제상황입니다."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황성상부 내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모든 건물이 전투를 대비한 모습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큰 저택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간의 연결은 무척 좁게 만들고 미로처럼 연결해 놓았습니다.

외부 사람은 안에 들어오면 길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 부부도 안내도를 따라 걸었지만 몇 번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빠져나기도 했습니다.

 

지금 위의 사진을 보시면, 좁고 비밀스러운 골목의 하나입니다.

만약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노복을 중심으로 한 장병동의 군사는 이런 좁고

비밀스러운 길을 따라 신속히 이동한다 합니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좁은 곳으로 말을 타고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이런 좁을 길에서 우리의 호프 덜수 한 명이 만 명도 넘는 적군을 맞아

용감하게 버티며 수비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일부당관 만부막개는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요?

물론 스파이더맨이 나타나 벽을 타고 위로 넘어가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위의 사진으로 확인해 보시면 덜수 한 사람이 만 명의 적을 물리칠 수 있겠죠?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쉽게 통과해도 만 명의 군사는 쉽게 통과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외부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이런 비밀스러운 암문(暗門)을 만들어 놓아

이 문을 통하여 방어와 피난을 할 수 있도록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합니다.

이들에게 전쟁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전쟁에 대비한 방어시설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이 대단한 시설을 하였습니다.

 

전쟁을 사랑해서일까요?

아니면, 즐겨해서일까요.

전쟁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겠지요?

무엇 때문에 왜 사나 몰라~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는 이런 시설이 필요 없다고 하겠지만, 오랜 세월 시달리며

살았던 사람에게는 다른 어떤 시설보다 우선하여 준비하며 만들었던

시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았나 봅니다.

대단한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리고 살았던 진 서방네 집이 무슨 핵전쟁을 대비한 방어진지도 아니고...

정말 200년 주기로 새로운 왕조가 스러지고 다시 생겨나고를 반복한 나라이기에 전쟁이

중국사람의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대단히 컸던 모양입니다.

바뀔 때마다 도적의 무리가 떼를 지어 마을을 찾아다니며 노략질을 일삼았을 것 아니겠어요?

 

이곳만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절벽 꼭대기에도 난리를 피해

숨어들어 산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이렇게 살았기에 남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국민성이 되었나 봅니다.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어떤 곳일까요?

수없는 난을 겪으며 살았던 사람에게는 이런 시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