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요새 장비꾸바오

2012. 4. 13.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오마나! 세상에~

어제 이야기는 문만 열어주고는 그냥 우리 부부 둘이서 캄캄한 지하로 내려가라 했지요?

그러면 무섭다고 칭얼거릴지 알았나요?

그러나 우리 부부는 여행 준비물에 언제나 손전등을 넣어서 다닙니다.

그게 비록 작지만, 제법 밝게 비추기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지요.

어둠은 우리 부부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즐길 수 있는 디딤돌입니다.

 

그래도 내려가는 지하도 입구 위에 이렇게 그림으로 지도라도 그려놓았네요.

얼마나 친절한 곳입니까?

그런데 캄캄한 지하에 내려가 동서남북도 구분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살아서 나오라고 이러십니까?

그림에는 외길처럼 일직선이지만, 들어가 보면 무수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한번 길이라도 잃어버린다면 천 년의 지하요새에 갇혔다가 만 년 후에나 나올지 모르겠어요.

 

보세요.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니 손도 떨려 사진이 흔들려 버렸잖아요.

이곳이 이런 지하요새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지방이 황사의 영향으로 오랜 세월 고운

입자의 황사가 날아와 쌓임으로 아주 단단하게 굳어진 황토고원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 지방의 요동이라는 주거형태도 이런 황사가 켜켜이 내려앉아

굳어진 땅을 파고 사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이런 곳에 굴을 쉽게 팔 수 있었고 워낙 오랜 세월 동안 단단하게

다져졌기에 쉽게 무너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안으로 들어와 입구인 뒤를 돌아봅니다.

우리 부부만 둘이서 들어가라 하면 한번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라는 말이지요?

천 년의 세월 동안 음지만 지향하고 숨어 지낸 그들의 땀 냄새가

벌써 솔솔 풍기는 듯합니다.

 

입구에는 제법 높이가 있어 허리를 펴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라 튼튼하게 벽돌을 쌓아 무너지는 것을 예방해 놓았네요.

그러나 내부는 전기시설이 없이 아래 보이는 반딧불이 불같은 희미한 빛만 따라다녀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 둘만이 캄캄한 굴속을 돌아다닙니다.

무서워 울지 알았나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우리 부부는 굴 안에서도 사진 찍기 놀이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고 돌아다닌답니다.

그냥 맹숭거리며 돌아다니기보다 귀신놀이도 하게 만들어 놓았으면 더 좋겠어요.

 

이곳은 마조(馬槽)입니다.

말도 안에서 키우며 지내게 시설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안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며 살았답니까?

폴란드에 있는 유명한 소금 광산에 가보니 그곳에도 지하에 말을 키우며 소금 채취에

이용했는데 태어날 때부터 광산 안으로 데려가 죽어서 나왔기에

자연히 눈이 멀어 슬픈 짐승이 되었다는...

 

지하에 있다는 땅굴의 길이가 3.000여 m나 된다고 하는데 이 또한 정확한 게 아니라

하며 땅굴은 현재 확인하고 있어 지금까지 확인된 곳이 서남쪽의

한 부분인 1.500m 정도라 하네요.

아직 이 땅굴을 만든 역사적인 자료는 전혀 남아있는 게 없어 추정일 뿐이랍니다.

이런 시설에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하니 중국답지 않은 일입니다.

용을 본떠 만든 마을 지하에 이런 은밀한 땅굴이 있다는 것은

용의 혈관 속이라는 말이 아닌가요?

아니면 용의 국물 정도가 되나요?

 

다만, 땅굴로 들어오는 주 출입구에 만든 가한왕사의 주인인 유무주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는 수나라 장수로 망해버린 수나라의 복원을 위해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이곳에 터를 잡아

명나라의 이세민과 마지막 한판을 겨루기 위해 만든 요새라는 것만 추정할 수 있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장소가 지휘소라 하니까 혹시 유무주의 자리가 아닐까요?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 있을까요?

 

지하라 답답하면 안 되겠죠?

가끔 이렇게 하늘을 향해 공기구멍을 뚫어 숨은 쉬고 살았습니다.

저 위는 아마도 어느 가정집 굴뚝으로 위장했을지 모릅니다.

 

나라가 손바뀜 할 때가 되면 개나 소나 모두 왕이라 하지만, 그중 잘난 개 한 마리가

다른 개를 발아래 꿀리고 천하를 통일하면 그게 바로 용이라는 황제가 되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 분명히 용은 그 출처가 개가 맞지요? 그쵸?

 

물론 이세민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며 그의 꿈은 사라져 버리고

지금 남은 것은 이 마을에 남은 것이 전부겠네요.

비록 역사적인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 지하요새는 당시의 군사시설을 연구하는

아주 중요한 현장인 셈인데 입체적으로 만들고, 연결하고, 상 중 하 3층 구조의 연결과

교차에 대한 아주 중요한 자료인 셈이겠죠.

유무주는 그냥 개로 남고 이세민이라는 개는 용이 된 마지막 전투 장소가 여기일 것 같습니다.

 

가끔 이렇게 약간 밝은 곳도 있습니다.

하나의 땅굴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삼층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땅굴 위에 땅굴, 땅굴 밑에 또 땅굴인 형태입니다.

 

위층 땅굴로 오르내리는 계단입니다.

가끔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계단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북쪽의 호찌민 군이 승리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땅굴이라고 했나요?

아마도 이곳에서 배워갔나요?

그곳에서는 땅굴 안에서 아이도 태어나고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외부인은 모두 돌아볼 수 없습니다.

땅굴 안에는 곳곳이 폐쇄되어 출입할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이곳은 제법 넓은 곳입니다.

작전회의를 하는 곳입니다.

얼마 전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카파도키아를 가는 길에 이와 비슷한 데린쿠유라는 지하도시를 들린 적이 있었지요.

그곳에는 땅굴 안에 교회도 있더군요.

 

그곳은 돌을 파낸 곳이고 이곳은 황토를 파낸 곳이라는 게 다릅니다.

그곳은 종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이고 이곳은 전쟁을 준비하며 만든 지하요새라는

점이며 화타의 고향이고 조조가 태어났다는 안휘성 보저우(亳州)에 가면

조조가 팠다는 땅굴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와 비슷한 규모의 땅굴이 있는데 보저우는 조조가 위급 시

도망할 수 있는 도주로로 팠다고 하지요.

 

이곳의 땅굴에는 벽을 이용한 환기구가 있고 위의 사진처럼 곳곳에 함정이 있고 서로 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시설이 있고 마구간에 우물까지 있습니다.

밖의 동정을 살필 수 있는 구멍이 있으며 매복 습격할 수 있게 만든 곳, 탈출구, 배수구 등

다양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전쟁의 신이 만든 곳입니다.

 

위의 사진은 위층의 함정입니다.

멋모르고 걷다 보면 함정에 빠져 아래로 떨어지게 하여 놓았습니다.

물론 관광객을 위로 갈 수 없도록 막아 놓고 아래에서 쳐다볼 수 있도록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하에서도 호흡할 수 있게 환기구도 곳곳에 뚫어놓아 안에 있어도

숨쉬기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안에서 오래 돌아다녀도 산소 문제는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불편한 것은 간혹 땅굴이 좁고 낮아 허리를 굽히고 지나가야 하는 곳이 간혹 있었습니다.

걷다 보면 위로 올라갈 수 있고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사병 숙소에 지휘관의 숙소까지 없는 게 없이 모두 갖추어 놓았네요.

만약, 핵전쟁이 나도 안에만 들어가 있으면 견딜 수 있겠네요.

그런데 왜 중국사람은 이런 시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에만 사용할까요?

 

이런 곳을 개발해 관광객 숙소로 이용하면 황토라 우리 몸에 좋다는 원적외선도 나올 것이고

전기시설을 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하면 동네 수입도 늘어날 텐데 말입니다.

삔관으로도 만들어 도미토리 룸도 만들고 스위트룸도 만들어 관광객에게 하루 정도

체험할 수 있게 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제일 아래층까지 깊이가 지상에서부터 20여 m에 이른다 하네요.

 

이곳을 둘러본 군사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이 땅굴 안에서 공격과 수비가 모두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있고 그 방향 또한 상하 좌우에도 동시에 이루어지게 하여

놓은 대단한 시설이라 합니다.

그런 말은 군사전문가가 아닌 佳人도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는 무슨 쥐뿔....

 

적어도 전문가라 하면 좀 더 과학적이고 전략적으로 설명을 해야지 어느 날

문득 예고도 없이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들린 佳人도 금방 알아볼 정도의 말을 하면

그게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되잖아요. 그쵸?

안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내부를 훤히 알기에 눈을 감고도 다니겠지만,

외부인은 사실 불을 끄면 눈을 뜨나 감으나 마찬가지이지요.

 

땅굴 안에는 이렇게 우물도 만들어 놓았네요.

천 년 만 년 이 안에서 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 이곳을 공격하기 위해 들어온 병사는 그야말로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고

위에서, 아래에서... 또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언제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으니

들어가면 100년이 지나도 나올 수 없는 곳일 겁니다.

일반인들의 출입제한 구역이 이 안에는 많습니다.

땅굴 안을 걷다 보면 가끔 이렇게 길을 막아놓았습니다.

혹시 막아놓은 저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출구를 찾지 못한 당나라 병사를 만날지 모릅니다.

그러면, 손을 잡고 밝은 세상으로 인도합시다.

 

옴마야!!!!

땅굴을 나와서 보니 모자와 옷에 황토가 묻어 난리군요?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땅굴로 드나드는 문입니다.

누구나 쉽게 보이는 곳에 만들어 놓았다면 금방 발각되어 당장 공격을 받잖아요.

그래서 땅굴의 출입구는 아주 은밀하게 여러 곳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방금 우리 부부가 나온 출구는 절벽으로 드나들게 한 곳입니다.

일반 가정집의 벽장 안에 아무나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은밀한 곳에 만들어 놓기도 하고

주로 우물 안에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장벽 고보의 마을 안에는 모두 10개의 우물이 있는데 그중 8개의 우물이

땅굴로 드나드는 입구가 만들어져 있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방대하고 완벽한 군사시설을 만든 이유나 자료가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고 하니 안타까우데 그 이유는 이 시설이 엄청난 보안 속에서 만들어졌고

그 후 자료를 모두 일부러 없애버린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 외에는 구전으로라도 전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그런 이유밖에는 없잖아요?

다만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이유는 추정만 할 뿐이라 합니다.

 

아닌가요?

외계인이 만들어 놓고 어느 날 훌쩍 떠나버렸나요?

혹시 용쟁호투에서 용이 호랑이를 상대하려고 만들어 놓고는 사라져 버렸나요?

장벽 고보는 전쟁의, 전쟁에 의한, 전쟁을 위한 그런 마을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전쟁을 대비하여 완벽한 준비를 한 마을도 흔치 않을 겁니다.

 

위의 사진처럼 밥을 해 먹던 부엌 시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땅굴 안에서

거주했던 흔적이 확실한 데 말입니다.

너무 캄캄해 플래시를 비춘 후 겨우 사진을 찍었네요.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지상과 지하에 전쟁을 위한 준비만 하고 살아온 이 마을 사람은 소는 누가 키웠을까요?

 

이렇게 우리 부부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나온 출구는 절벽에 있기에 마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라 적으로부터도

발견되지 않을 곳이더군요.

내일은 마을 안을 기웃거려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을 목격합니다.

이곳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이 찾았기에 놀라움은 몇 배나 더 큽니다.

우리는 여기 살았던 사람이 그냥 이렇게 하고도 살았구나 하지만,

당시 이런 지하 암도를 만든 사람은 목숨을 건 작업이었을 겁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마을 대부분이 전쟁과 연관되지 않은 마을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전쟁과 도둑떼의 약탈이 있었던지 자유로웠던 마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