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를 준비한 마을 장벽고보

2012. 4. 12.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어제 이어 오늘은 마을 안으로 좀 더 들어갑니다.

청석길로 접어들면 길 양쪽으로 줄지어 선 아름다운(?) 옛 건물이 보입니다.

말은 인사치레로 아름답다고 했지만, 사실 우중충한 건물이지요.

이 지방은 황토가 널린 곳이라 황토를 구워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이 골목의 벽돌집이 몸통에 붙은 용의 비늘인 셈입니다.

 

골목 끝에 있는 북문 위에 있는 노란색 유리기와를 올린 절의 모습도 정겹습니다.

그곳이 용의 꼬리 부분이 되겠네요.

꼬리라 하기에는 그렇고 사실 용의 똥꼬가 맞는 표현일 겁니다.

마을의 모든 물이 그리로 흘러 나가게 남쪽이 높고 북쪽이 얕게 만든 곳이니까요.

그러면 우리 부부가 지금 용의 내장 속을 걷고 있는 겁니까?

 

용의 몸통은 이렇게 약간 휘었습니다.

왜?

꿈틀거리는 용처럼 보이기 위해...

 

장벽 고보에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사라진 수, 당시기의 동네의 특색인 이방(里坊)이라는 골목도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오시면 이방이라는 독특한 골목을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장벽에는 용가(龍街)라는 골목과 작은 골목의 삼거리에서 항문(巷門)이라고 하는 골목 문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佳人이 항문이라 했습니까?

똥꼬가 아닌 항문(巷門)이라고 하는 골목 문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골목을 출입하는 유일한 출입문으로

이 문만 닫게 되면 이방(里坊)은 완전히 폐쇄됨으로 성안의 또 다른 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골목길이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이방이라는 골목길은 각각 격리된 구역으로 변합니다.

그러니 큰 골목길(용의 내장이었던 청석길)에서 다른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면 골목마다 위의 사진처럼

항문이 있어 외침이 있을 때 이 문만 폐쇄하면 안에 들어온 적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독 안의 쥐처럼 된다는 골목 구조입니다.

 

이방이란 위의 사진 같은 모습입니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 암시를 주어 스스로를 강하게 할 최면을 걸기 위해

개선(凱旋)이라는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이런 이방들은 서로 연합도 할 수 있고 또 독립적으로 외부에서 침입한 적을 몰아넣고

단독으로 싸울 수도 있습니다.

방어하는 처지에서는 적을 분산시켜 힘을 약하게 하여 물리치는 아주 기발하고 완벽한 방어 개념입니다.

 

그러니 만약 천 명의 적이 마을로 진격해 들어오면 천 명의 군사와 한꺼번에 대적하는 일은 어렵겠지만,

천 명의 적을 백 명씩 열 군데로 나누어 분산시킨 후 문을 닫아버리고 공격하면 무척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지요.

적은 독안 에 든 쥐가 아니라 골목 안에 든 쥐가 되는 셈입니다.

어때요?

이방이라는 골목을 이해하셨나요?

이해가 되지 않으셨다면 직접 가서 보셔야 합니다.

 

며칠 전 우리 부부는 핑야오 고성을 보았습니다.

그 고성은 거북을 본떠 만든 성이라 했지요.

그러니 이곳 장비 마을에 비하면 핑야오 고성은 아무것도 아닌 곳이었습니다.

작지만, 강한 곳...

바로 거북보다 훨씬 강한 용을 본떠 만든 마을이 바로 이곳입니다.

칫! 깜도 되지 못하는 핑야오 고성이 까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벽 촌은 마을의 골목길에도 외부의 침입에 대비한 완벽한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외부의 적이 이곳에 들어와 갇힌다면 용의 뱃속에서 난리를 치는 게지요.

만약 뱃속에서 난리 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적군은 결국 피똥 쌉니다.

이렇게 마을 자체가 모든 골목길이 방어개념으로 만들어 놓고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마을 안에만 이런 구조로 만든 게 아니라는 게지요.

 

그리고 동서방향으로 세 갈래의 깊은 골을 만들어 마을을 닫아버리면 세 군데로 나누어지게 하여

유사시에는 세 곳이 서로 다른 마을처럼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외부에서 침입한 적은 마을 안에서 분산되며 자연히 우왕좌왕하게 되겠지요.

한꺼번에 많은 적을 물리치려면 힘이 들지만, 이렇게 적은 여러 골목으로 집어넣고 분산시켜 가둔 후

공략하면 쉽고도 적은 병력으로 모두 섬멸하기 쉬운 겁니다.

 

마을을 에워싼 성벽을 넘어 들어왔다 하더라도 적은 마을 안에서 또 한 번 곤욕을 치러야 할 겁니다.

그러니 이 마을은 그 자체로 완벽한 보루인 셈입니다.
전쟁을 대비해 특별히 만든 군사도시인 셈이지요.

마을의 지형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지형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처럼 나머지는 절벽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안에서 남쪽 성 밖으로는 몰래 통하는 암도 같은 비밀 통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성의 서쪽으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30m 깊이의 아찔한 절벽으로 되어 있고 동쪽 또한 비슷한 형태의 지형으로

되어 있기에 수비하기에는 쉽고 공격하기는 골치 아픈 군사 보루입니다.

 

장비 꾸바오는 지상의 이런 구조뿐이 유명한 것은 아니었지요.

바로 지하전에 대비한 땅굴이 있는 마을입니다.

마을 안으로만 들어와도 골치 아팠는데 이번에는 지하전까지 부담해야 하니 적은 정말 죽을 맛이겠습니다.

적 처지에서는 산너머 더 높은 산입니다.

지상과 지하를 완벽히 전투를 위한 마을로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오늘은 그 은밀한 지하요새로 들어가 보렵니다.

 

관광객은 아무 곳이나 땅굴 안으로 드나들 수 없습니다.

땅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마을의 우물 속으로도 있고 어느 가정집 벽장 안으로도 들어갑니다.

그러기에 관광객은 들어가는 입구를 한 곳으로만 지정해 놓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관광객이 우물 속의 입구로 들어가 덜수네 부부가 한창 사랑을 나누는 순간 남의 집 안방에 만든 벽장문을 열고

나와 대뜸 묻고 따지지도 못하게 "안녕하세요?"라고 한다면 덜수네 부부가 식겁하지 않겠어요?

그것도 우리나라 말로 말입니다.

 

우선 장비 마을 입구인 남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으로 계단과 램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쉽게 입구를 찾으실 수 있겠네요.

램프는 수레가 오르내리기 쉽게 하여 놓았습니다.

 

그곳으로 올라가면 가한왕사(可罕王祠)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 사당의 정확한 설립연도는 알려지지 않고 명나라 때인 1627년 중수하며 대들보에 쓰인 글에

유연우원년(1314)에 중건했다는 글이 남아 있었다 합니다.

그러니 훨씬 그 이전에 만든 절이라는 말이 되겠네요.

그러나 지금의 건물은 청나라 때인 건륭 32년에 다시 중건했다 합니다.

 

이 절의 이름이 가한왕사라 하지만, 가한왕에 대한 인물은 사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지방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가한왕은 유무주(劉武周)라는 사람이라 전해집니다.

좌우지간 이 사당이 유무주를 모신 사당인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 부부가 면산에 올라 당나라 군영을 구경할 때 그 군영의 목적이 이세민이 유무주와의 전투를 위해

군사를 주둔시킨 군영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무주는 허베이(河北)사람으로 이곳 산서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나라 때인

대업 13년(617년)에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국호를 위천흥(爲天興)이라 하고 자신을 정양가한(定楊可汗)이라 했던

것으로 보아 가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 돌궐의 후예가 아닌가 생각한답니다.

가한이나 칭기즈칸의 칸이나 신라의 마립간의 간이라는 명칭은 모두 지도자를 부르는 이름이지요.

그는 결국, 면산에 군사를 주둔시킨 당나라 이세민에 의해 패하며 유무주의 시대는 끝이 났다 합니다.

 

젠장, 이렇게 마을을 지상과 지하 그리고 용을 본떠 만들었지만, 유무주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늘이 점지하지 않은 지도자란 이렇게 한바탕 꿈만 꾸다가 세상을 끝내버렸습니다.

사실, 하늘이 점지했던 이세민도 지금은 개털보다도 못한 지나간 사람이지요.

일찍 핀 꽃이 일찍 지지만, 영원히 피는 꽃도 없지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어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라고 소리치니 경찰관 한 명이 열쇠를 들고

나타나 우리 부부가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 줍니다.

아무도 없고, 안내자도 없고...

그러니 관광객에게 열린 지하 터널 입구는 가한왕사의 사당 안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사당 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다고 생각하겠어요.

 

그 사당의 문 중 하나를 열면 지하 암도로 내려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지금 이곳은 군사상 중요한 곳이라 경찰이 지키고 관리하는 곳인가 봅니다.

만약 문을 열지 않았다면 입구조차 알 수 없게 되어 있네요.

아마도 이곳은 새로 시집온 며느리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 곳인가 봅니다.

 

그런데 지하 안내자가 없고 불만 켜주며 그냥 우리 부부 둘이서 캄캄한 지하로 내려가라 합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말도 통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 문만 열어주고 안내자도 없이 컴컴한 지하로 내려가라 합니다.

그럼 안에 들어가 죽든지 말든지...

길을 찾아 나오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말이 아닙니까? 나 원 참!!!

 

칫!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눈물 지이이이이~질~ 짜며 무섭다고 할지 알았나요?

우리 부부는 여행 준비물에 언제나 작은 손전등을 넣어서 다닙니다.

어둠은 우리 부부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즐길 수 있는 디딤돌입니다.

내일은 고 군사 지도라고 쓰인 땅굴 입구부터 더듬거리며 들어가 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런데 장벽 고보는 지상의 이런 구조뿐이 아닙니다.

바로 지하전에 대비한 땅굴이 있는 마을입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입니다.

 

아마도 지상만 아니라 땅굴까지 파고 전쟁에 대비해 지은 군사 마을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한 게 아닐 겁니다.

게다가 모든 종교시설과 관우를 모신 사당마저 성문 위와 성벽 위에다 만들어 부처와 관우,

그리고 도교의 신선이 힘을 합쳐 외부의 적을 물리치게 해 놓았습니다.

그래도 이세민에게 패하고 사라졌답니다.

이세민에 세긴 센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