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12. 4. 16.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오늘은 부끄러워 감추고 싶지만, 유쾌한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준비에 실패하는 일은 실패를 준비하고 떠나는 일이라 했습니까?

완벽한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났더라면, 생길 수도 없는 해프닝이 일어난 겁니다. 

우리 여행은 늘 이렇게 불안정하게 진행됩니다.

 

장비 마을을 보고 입구에 나오려는데 정류장에 버스가 기다립니다.

저 버스를 놓치게 되면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합니다.

개휴에서 장벽 고보를 운행하는 버스는 2시간마다 한 대씩 다니기 때문입니다.

 

지하 암도(地下暗道) 40분간, 지상 명보(地上明堡) 50분간 모두 약 1시간 30분간에 걸쳐

장비 마을을 모두 보았습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네요.

그래서 얼른 뛰어 와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 개휴로 즐겁게 나왔습니다.

만약 저 버스를 놓쳤다면?

다시 마을로 들어가 조금 빠르게 한 바퀴 더 돌면 되지 않겠어요?

무엇을 걱정합니까? 그쵸?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장비 꾸바오를 보고 다시 지에시우에 나오니 9시 50분입니다.

이렇게 장비 꾸바오는 잠옷바람으로 아침 산책하듯 간단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다행히도 기차 출발 시각을 보니 10시 42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 출발하는 기차를 탈 수만 있다면 린펀으로 가서 오늘 중으로 후커우 폭포를 들어갈 수 있는

지시엔이라는 마을까지 바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린펀이라는 도시에서 하루를 묵어야 할지도 모르고요.

 

중국에서 이동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통편의 연결도 어렵고 시골은 버스마저 자주 다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동은 이른 시간에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찍 장벽고보를 구경하고 린펀으로 간다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연결인 것 같습니다.

기차는 출발과 도착 예정 시각이 거의 정확하기에 기차로 이동하는 게 안전하기도 하고 확실합니다.

만약 이 기차를 놓치게 되면 4시간이나 시간을 그냥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원했던 기차는 K689인 10시 42분 개휴를 출발하는 기차입니다.

이렇게만 진행이 된다면 하루를 벌 수도 있네요.

여행 중에 하루를 번다는 일은 한층 여유롭게 다닐 수 있어 좋습니다.

그래서 매표원에게 우리가 갈 기차 편명과 시간, 그리고 잉쭤라고 쓴 메모지에 써서

휘파람을 불며 기분 좋게 창구로 들이밀었지요.

 

그런데 역무원은 우리가 들이민 메모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한마디로 냉정하게 "메이요."라는 답을 하며

메모지를 다시 창구 밖으로 내주는군요.

중국 여행을 하다 보니 차편이 없으면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고 아주 매몰차게

한마디인 "메이요!"로 끝내더군요.

뭐.. 장황하게 설명한다고 우리 부부가 알아들을 것도 아니지만....

이것 참 난감하게 생겼습니다.

좌석이 없으면 입석이라도 타고 가면 되지 않겠어요?

린펀은 여기에서 약 2시간이 걸리는 곳이라고 기차 시각표에 나와있기에 입석이라도 타고 갈 수 있었거든요.

 

우리 부부는 좌석이 없으면 입석이라도 좋으니 달라고 웃으며 다시 창구로 메모지를 들이밀었습니다.

웃으면 없던 표도 나올지 알고...

그랬더니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요.

멍하니 서 있으려니까 매표원은 우리가 쓴 메모지에 글로 써서 다시 내보냅니다.

지금 무슨 핑퐁게임 하자는 말인가요?

중국이 원래 핑퐁은 잘한다 들었지만, 이렇게 쉽게 다시 내밀어 버리네요.

 

우리는 린펀으로 갈 표를 달라고 했지 우리가 쓴 메모지를 돌려달라고 했나요?

왜 이러세요?

그런데 뭐라고 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표가 없다는 것만 틀림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일 가시려오?"라고 묻는 듯합니다.

 

그러고는 창구 안에 있던 여직원끼리 뭐라고 하며 깔깔거리며 웃기까지 합니다.

우리 부부를 마치 무슨 동물원 원숭이 보듯 말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는 게 아주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자기들이 창살 안에 있으면서....

 

그래서 우리는 입석이라도 달라고 다시 들이밀고 내보내기 게임을 했습니다.

마침 그때는 이상하게도 창구에 표를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한 놀이였지요.

우리 부부가 꼭 이번 열차를 타고 가야 할 이유는 이 차를 타면 오늘 중으로 후커우가 있

는 지시엔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앞뒤를 가리지 않았나 봅니다.

여행 중 하루를 아낀다는 일은 하루를 벌 수 있는 무척 중요한 일이니까요.

 

우리의 요구는 좌석이 매진되면 살 수 없지만, 입석이야 왜 없느냐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더 탄다고 기차가 무거워 달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바퀴가 펑크 날 일도 없잖아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기차의 입석도 역마다 판매하는 표가 제한되어 있다는군요.

 

그런데 그런 사실을 우리 부부는 모르니 당연히 매표구 앞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진드기처럼 자꾸 표를

달라고 하고 그쪽에서는 오늘은 표가 없다는 그 말을 우리에게 해도 우리 부부는 알아듣지 못하고...

잠시 후 나이가 많은 남자 역무원이 우리가 핑퐁 게임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 나오더니만, 여직원에게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역장이 아닌가 생각 들 정도로 나이도 들었고 점잖은 사람이었지요.

 

이야기를 듣던 그 사내가 (역장이라고 하고) 뭐라고 직원에게 이야기하니 여직원이 표를 두 장 내어주는 것입니다.

역시 높은 사람 빽이 있으니 쉽게 표를 구할 수 있군요.

중국에서 빽이란 아주 대단한 나라가 아니겠어요?

이렇게 내어 줄 표를 왜 웃고 난리 친 겁니까? 나 원 참!!!!

그런데 해프닝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표를 확인하니 당연히 좌석은 매진되었으니 입석이 맞았습니다.

기왕 줄 표를 왜 여직원은 밀고 당기고 했을까요?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여행 중인 우리 부부를 놀리는 게 그렇게도 재미있었나요?

높은 사람 말 한마디에 이렇게 쉽게 표를 주면서 말입니다.

 

우리 부부는 표를 받아 들고 대합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그 역장이 대합실로 오더니만 우리 부부가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게 아니겠어요?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구나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확인한 이유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잠시 후 개찰이 시작되고 우리 부부는 당당히 표를 들고 다른 승객에 휩쓸려 개찰하는 곳으로 나갔지요.

역장의 빽으로 없던 표도 구했으니 얼마나 당당했겠어요?

따식들...

 

그런데 개찰하던 직원이 우리 부부에게 표를 보더니 뭐라 하는 겁니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높은 사람 빽으로 샀는데 웬 잔말이야!' 하며 그냥 표를 빨리 달라고 하고

그 표를 받아 플랫폼으로 위풍당당하게 나섰습니다.

비록 중국 기차표 중에 가장 저렴한 입석표일지라도...

 

중국은 기차를 탈 때 미리 역무원이 탑승객을 각 열차가 정차할 문 앞에 줄을 세웁니다.

우리 부부는 표를 역무원에게 보여주고 17호 차가 서는 곳으로 가서 서서 기다립니다.

잠시 후 여자 역무원이 우리 부부에게 다가오더니 따라와라 합니다.

자꾸 알 수 없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더니 제일 앞쪽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기다리라 하네요.

그곳은 기차표에 적힌 17호 차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데 말입니다.

잠시 후 열차가 들어오고 우리 앞에 정차하는 열차는 잉쭤가 아니라 잉워라는 침대칸이었습니다.

중국은 기차를 탈 때 모두 승무원이 열차표를 확인하고 태우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입석표로 침대칸 앞에 섰던 겁니다.

순간적으로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역무원이 이곳에 서라 했으니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열차에서 내린 승무원이 우리 부부의 표를 확인하고는 아니나 다를까?

뒤쪽을 가리키며 그리고 가라는 시늉을 합니다.

그곳이 입석 열차를 타는 곳이 맞습니다.

그때 우리 뒤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우리에게 선행을 베푼 바로 그 역장입니다.

 

그 역장이 무슨 말을 하자 여자 승무원은 아무 말도 없이 우리 부부를 열차에 태워주네요.

우리가 알아들은 역장의 말은 "한궈런"이라는 말 뿐입니다.

그러니 한국인이니 그냥 태워 드리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부부는 뒤를 돌아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열차에 올랐습니다.

물론 佳人이 지금 쓰는 대화 내용은 중국어를 모르기에 혼자 추측으로 소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눈칫밥 평생에 귀신같이 분위기 파악은 일가견이 있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바로 천하의 눈칫밥 달인 佳人입니다.

 

우리 부부는 혼잡하지도 않은 침대칸에 올라 어떻게 가야 하나 잠시 서 있었습니다.

물론 침대가 비어있는 게 많이 보였지만, 양심이 있지요.

입석을 끊어 침대에 누워간다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잖아요.

그것은 누워가는 일이 아니고 자빠져 가는 일이잖아요.

 

조금 있으려니까 그 승무원이 들어와 우리 부부에게 창문에 붙어있는 의자를 내리며

이곳에 앉아 가라는 말을 하네요.

그날 잉쭤가 있는 열차 칸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무척 혼잡했지만, 잉워 칸은 사진처럼 한가했거든요.

나중에 지시앤으로 가다 만난 중국 여행자가 바로 우리가 탄 열차의 잉쭤를 타고 너무 혼잡해 내리기도 어려워

혼이 났다는 말을 해주었기에 얼마나 복잡했는지 알았습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역장의 도움으로 표도 살 수 있었고 혼잡한 좌석 칸을 피하여 쾌적한 침대 칸에 앉아서 여행을 즐깁니다.

오늘 역장은 우리 부부에게 선업을 하나 쌓았습니다.

아니? 그것은 불법이네요.

 

佳人 마음이 느긋하여 잠시 뜨거운 물이 있는 열차 안이라 커피 한잔 마셔도 되겠어요?

오늘 같은 행복한 날 달리는 혼잡한 열차 안에 편안하게 앉아 커피 마셔 봤수?

끄~ 하하하~ 佳人 마셔 봤수~

 

지에시우에서 린펀까지는 기차로 약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며 기차표의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우리는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옴마야~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가 받았던 표는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내일 표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두 장을 비교해보시면 표는 28일 표이고 린펀에 도착해 숭강장 플래트폼을 나갈 때

그곳 전광판에 적힌 날자는 27일임을 알 수 있지요?

 

그러니 사연은 오늘 표는 입석이라도 매진이 되어 표를 줄 수 없어 내일 표를 주고 우리 보고

오늘 타고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대합실에 기다릴 때 우리가 이야기를 알아듣고 오늘 타고 가나 역장이 확인하러 들어왔고

나중에 열차에 오를 때도 나이가 든 우리 부부를 혼잡한 입석보다는 침대칸으로 옮겨 타게 했습니다.

세상에 중국에서 대명천지에 이런 아름다운 대형 사건,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런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날짜는 확인하지도 않고 당연히 오늘 표를 주었다고 생각하니

그냥 대합실에 무자비하게 들어가 기다리다 뻔뻔스럽게 기차를 타러 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나요?

 

오늘 우리 부부가 중국에서 말도 통하지 않아 대단히 무식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위의 사진과 아래 사진의 날짜를 확인해보시면 표는 10월 28일이고 우리가 기차를 타고 린펀으로 온 날짜는

27일 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렇게라도 여행을 다녀야 하겠습니까?

세상에는 이렇게 어리숙한 여행자를 위하여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네.. 우리 부부의 여행은 앞으로도 쭈우우우욱 계속하렵니다.

혹시 중국말을 몰라 여행이 망설여지십니까?

우리 부부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잘도 다니고 있는 걸요.

 

그때는 내용을 몰라 역장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글로써 선업을 쌓은 그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만날 수 있다면 중국어 중에서 가장 자신 있게 하는 말인 "씨에씨에"라고

정중히 전하고 싶습니다.

중국은 위험하고 중국사람이 나쁘다고요?

아닌 사람도 있걸랑요.

 

일용이 엄니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일용아~ 이눔아!

어여 봇짐 여행 갔다 와!!!

뭘 망설이는기여~

라고 했을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佳人의 여행도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기에 실패를 준비하며 떠난 여행입니다.

비록 실패를 준비하고 떠났지만, 우리 여행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Why worry~

우리 부부처럼 그 나라 말을 몰라 오히려 이런 특별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게 민폐라고요?

그렇군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고 배낭을 챙겨보세요.

우리 부부도 이렇게 즐겁게 여행하잖아요.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