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추가 면산으로 간 까닭.

2012. 4. 2.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오늘은 면산을 빛낸 개자추(介子推)를 만나보렵니다.

면산을 면산답게 더욱 세상에 알린 이가 개자추라는 사람이라네요.

개씨는 한국인에게 발음하기도 듣기도 거북하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인데

바꿀 수는 없지 않겠어요?

 

사실 면산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개자추이고 개자추는 명실상부한 면산의 홍보대사인 셈입니다.

오늘 개차추의 미스터리 속으로 여행해 보렵니다.

개자추! 그것이 알고 싶다.

 

면산은 진나라(晋国) 시기에 할육구주(割肉救主)라는 바보 같은 짓을 한 개자추(介子推)의

일화로 유명한 곳이라 하네요.

할육구주라는 말은 충신 개자추에 얽힌 슬픈 전설 같은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라 합니다.

누구는 충신이라 하지만, 어떤 이는 바보라고도 하지요.

 

개자추와 얽힌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그의 옷을 묻었다는 무덤도 있는 산입니다.

그게 정말 개자추의 옷인지는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지만,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데는 효험이 있지요.

개자추도 그 어머니도 모두 불에 타 죽었다는데 웬 개자추 옷만 남는

미스터리한 일이 이곳에도 있었습니다.

정말 중국이라는 나라는 신통방통한 일이 가는 곳마다 있기에 다니는 게 즐겁습니다.

포클레인 불러다 파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개자추는 진(晉) 나라 문공(文公)이 권력다툼에 밀려 물먹고 19년간 망명생활을 할 때

문공과 함께하며 허기진 문공을 위해 자기 허벅지 살을 떼어 먹였다는 괴담과도 같은 이야기로

충심으로 보좌하였으나, 문공은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야기의 시작이 벌써 예사롭지 않습니다.

 

자추는 이제나저제나 왕으로부터 소식 오기만 기다렸지만, 끝내 소식은 없고...

이렇게 실망한 개자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가 지금 온 곳인 면산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와 은거하게 되었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오지 않았답니다.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질렀는데,

그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이게 사건의 전모라는군요.

여러분! 사람 찾는다고 산에다 불을 질렀답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입니까?

사람 찾자는 겁니까?

아니면 태워 죽이자는 말입니까...

 

우리 속담에도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말은 동지로부터 105일째가 한식이고 그다음 날이 청명이기에 하루 차이기 때문에

죽는 게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겁니다.

불에 타 죽으나 굶어 죽으나 개자추는 죽게 되었나 봅니다.

뭐 그때 찾는다고 세상에 내려왔다고 해서 지금까지 살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에 사람들이 불에 타 죽은 그를 애도하여 그날은 불을 피워 음식을 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겨나고 한식날 찬밥을 먹는 풍습은 당나라에서 신라로 전해졌으며,

고려 시대의 대표적 명절로 우리의 주요 절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네요.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개자추와 우리 조상과는 어떤 관계이길래 우리 조상님도 찬밥을 먹습니까?

사실, 이렇게 모두 꼬치꼬치 따지고 살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도 조상님께 찬밥을 대접하는 일에 한 번쯤 따지고는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 진나라의 문공(文公)이 후계구도에 휘말려

왕궁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할 처지에 이릅니다.

문공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개자추 등 여러 가신을 데리고 나라 밖으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먹을 게 하나도 없어 배가 고파 거의 죽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가신 중 서로 방법을 모색하다 방법이 없으니 있는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게

자신의 몸뚱어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때 가위바위보를 했는지는 몰라도 모든 신하는 일시에 개자추를 바라보게 되었을 겁니다.

할 수 없이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주군인 문공을 먹여 살린 일이 있었답니다.

아마 국을 끓였을 겁니다.

이 이야기를 할고봉군(割股奉君)이라고 하던가요?

중국에는 아름다운 미담도 이렇게 엽기적인 양념으로 범벅합니다.

그럴 정성이면 사냥을 하던지 남의 집 담을 넘지...

언제부터 중국이 이딴 엽기적인 짓거리를 했답니까? 나 원 참!!!

 

이게 무슨 해외 토픽에나 날 사건이란 말입니까?

지금 몬도가네 이야기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폐하께서는 영명하시니까 후에 다시 군주가 되어 컴백하시거든

청명한 정치를 하시라"고 말했다 합니다.

아~ 청명이랍니다.

청명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나 봅니다.

 

세월이 지나 후에 문공은 다시 컴백하게 되어 왕위에 올랐지만,

문공이 당시 어려웠을 때 개자추의 은덕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화장실 갈 때와 다녀온 후가 다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한 처사입니다.

논공행상에 개자추는 빠져버리고...

이렇게 개자추는 문공에게 잊힌 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더러운 경우를 대비해 공증제도가 생겼나 봅니다.

아무리 개자추가 선의로 문공에게 허벅지 살을 떼어 국을 끓여주었다 해도

나중에 좋은 시절이 오면 바라는 게 있었나 봅니다.

세상의 선의로 하는 일은 없나 봅니다.

 

결국, 개자추는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벼~'라는 마음이 들어 오늘 우리가 찾아온

면산으로 노모를 모시고 숨어들었다 합니다.

많이 삐쳤네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문공은 예전 어려웠던 때를 떠올리고 개자추의 스테이크 생각이 불현듯 나서

개자추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벼슬자리라도 하나 주려고 찾았으나,

아뿔싸~ 개자추는 이미 그의 곁을 떠난 후였습니다.

신하에게 물어보니 "갸는 삐쳐서 씩씩거리고 벌써 가버렸는데요~"라는 답만 들립니다.

 

문공은 그때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를 찾아 그가 숨어들었다는 면산(綿山)을

찾아옵니다.

그래도 개자추는 자신의 행선지를 남겼다는 말이네요. 그쵸?

원래 정말 사라지려고 떠나는 사람은 행선지조차 남기지 않는 게 순리입니다.  

문공은 군사를 풀어 온 산을 뒤지며 찾아다녔지만,

그러나 개자추는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 많이 삐쳤네요.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 서리를 내린다 했나요?

남자도 개자추 같은 사내는 삐치면 그렇걸랑요.

한 성질 하는 만만한 친구가 아니었나 봅니다.

세상에 선의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살까지 베어내 먹일 정도라면 훗날 문공은 그게 대가도 없는

 그냥 선의로 받아들인다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공짜 점심이 어디 있습니까?

 

개자추도 허벅지 살을 떼내 줄 때는 나중에 한자리 욕심이 있었나 봅니다.

선 투자할 요량으로 허벅지 살까지 때어내었건만, 화장실 다녀온 후로는 그만 언제 그랬냐 합니다.

이래서 각서를 주고받고 공증까지 서나 봅니다. 

 

그런데 세상은 서리가 내릴 무렵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이 듭니다.

아름다운 단풍은 차가운 서리를 먹고 생겨납니다.

그런 엽기적인 이야기로 말미암아 한식이라는 명절이 생겨난 겁니다.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는데 

사흘 동안 탔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입니까?

사람 찾겠다고 산에다 불을 질러요?

 

그는 "신하가 벼슬을 두고 다투는 게 부끄럽다."라는 말을 남기고 불타오르는 산속에서

정확히 빠떼루 자세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하네요.

이상합니다.

그 주변에 누가 있어 그의 이야기를 전했을까요?

정말 중국은 신통방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면산에는 별로 탈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올려다보세요.

돌산에 뭐가 탈 게 있겠어요?

그래도 우리는 모르는 척 속아주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중국 쟤들 또 삐쳐요.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자 군사를 풀어 산불이 쓸고 간 산을 모두 뒤지게 합니다.

그의 군사가 발견한 것은 홀어머니를 등에 업고 버드나무 밑동을 두 손으로 잡고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체 불에 타 죽어 있는 개자추의 시신 뿐이었습니다.

정말 정확한 빠떼루 자세가 아닙니까?

정말로 웃기는 문공이군요?

먼저 군사를 풀어 이렇게 찾았더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인데...

죽이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의미는 삐친 놈은 불에 태워 죽여버린다는 경고인가요?

 

개자추야 문공의 처사에 화딱지가 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니는 뭡니까?

아들 때문에 어머니까지 생으로 죽었습니다.

과연 이게 부모에게 할 짓인가 생각해보니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는 한 성질 하는 자식 때문에 그냥 생화장당한 게 아닙니까?

 

그 이듬해 개자추가 끌어안고 죽었던 버드나무에서 새싹이 나와

문공은 그 나무를 베어 신발로 만들어 신었다고 전합니다.

있을 때 잘하지...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불에 타 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하여 그날 하루만은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찬밥을 조상에게 제물로 올린다는 일은 누구 하고도 상의하거나

협의하지 않은 진문공의 혼자 생각이었네요.

 

어때요?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개차추는 죽어서도 평생 더운밥 얻어먹기는 글렀습니다.

나이 든 사내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바로 더운밥 얻어먹는 게 마지막 아름다운 꿈이 아니겠어요?

 

사내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 무르팍에 힘 빠지면 따뜻한 밥을 편안한 자세로

안방에 앉아 얻어먹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나이가 들면 저절로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하물며 죽은 귀신도 찬밥만 먹는 귀신은 개자추밖에는 없을 겁니다.

한식날에는 뭐 누구나 죽은 귀신은 다 찬밥이지요.

이렇게 개자추라는 사람 하나 때문에 죽어서 한식날에는 모든 귀신이 찬밥만 먹어야 한답니다.

 

나이가 들어 더운밥을 얻어먹겠다는 佳人의 꿈이 너무 야무지다고요?

왜 그러셔요~

그럼 그런 꿈도 꾸지 못합니까? 그쵸?

한식(寒食)의 유래는 이렇게 까마귀 고기 먹은 문공이라는 왕이

개자추를 섭섭히 대접함으로 생긴 사건, 사고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판에서는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기도 하며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는군요

매년 4월 한식날이면 면산이 들썩인다고 합니다.

바로 이 한식날이 유래된 곳이 면산이잖아요,

 

그 주인공 개자추(介子推)가 어머니와 불에 타 죽은 산이 이곳 면산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몸살기가 있어 무척 춥습니다.

개자추 때문에 佳人이 먼저 죽게 생겼습니다.

 

면산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무척 많은 중국인이 찾는 곳이

바로 면산(綿山)이라는 곳으로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란 멋진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멋진 곳으로, 중국 국가 AAAA 여행지라고 합니다.

산서(山西)의 성도 태원(太原)에서 남쪽으로 3시간, 평요고성(平遙古城)에서

1시간 30분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25km 협곡을 따라서 도교와 불교 사원, 12 존의 등신불을 모신 사찰 및 정자, 개자추 사당 등이

절벽에 보기에도 불안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제대로 구경하려면 그런 절벽을 통해 수차례 산을 오르내리며 다녀야 합니다.

 

이곳은 면산 안에 많은 숙소가 있기에 하루 정도 숙박하며 천천히 즐기는 방법도 좋을 것

같고 운봉서원이라는 호텔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이라 하고

가격은 1박에 최소 500원 이상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비수기에는 조금은 저렴하게 묵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알뜰하게 구경하시려면 우리 부부처럼 지에시우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들어와

전산에서 내려 후산까지 걸어가며 구경하고 오후에 나가는 버스를 타고 나간다면

무척 저렴하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개자추..

어감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만, 이 사람은 중국에서는 제법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중국에서는 "南有屈平, 北有介子"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남쪽에 굴평이 있다고 하면, 북쪽에는 굴평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개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굴평은 이름은 굴평(屈平)이고 자는 원이라 합니다.
굴평은 초나라 회왕을 섬겨 좌도(左徒)의 중책을 맡아 한때 내정, 외교에서 활약하였으며

학식과 문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잘 나갈 때가 있으면 언제나 그 기세가 꺾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굴평도 황궁 내의 정적(政敵)들과 충돌하게 되며

그들의 중상모략으로 국왕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때 왕의 지근거리에서 충성을 다해 보살폈으나

왕이 그들을 팽했다는 말이겠네요.

내일도 야금야금 걸어가며 면산의 멋진 풍경을 즐겨보렵니다.

비록,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지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에게도 절기 중 하나인 청명과 한식.

중국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이렇게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가 있기에 즐겁습니다.

물론 유렵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곳의 이야기는 그냥 교과서에서만 본 이야기지만,

중국은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이야기가 있기에 다른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