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31.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면산 입구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던 중 관제묘를 만났습니다.
관제묘야 중국에서 가장 흔한 곳이 아니겠어요?
공자를 모신 곳보다 더 많은 것이 바로 관제묘일 겁니다.
그런데 같은 관제묘라도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니 또 다른 맛이네요.
면산은 관우가 살아서 와보지 못한 곳이겠지만, 이렇게 관우는 죽어서도
중국 어느 곳이나 돌아다닙니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삼합원 형태의 사당으로 정면에 관우를 모신 곳이고 좌우로 관우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며 고뇌하고 동고동락한 동료도 함께 지내더군요.
다른 곳은 주로 관우 혼자 있기에 심심했겠지만, 여기는 함께 지내게 하여 놓아
심심하지 않아 좋겠습니다.
산이 워낙 험하기에 무서움을 타나요?
아니?
그러면 관우도 佳人처럼 고소공포증을 느낍니까?
황충 장군이군요?
역시 흰 수염 하나는 일품입니다.
황 장군!
佳人은 그대의 흰 수염이 보고 싶었소.
그대 흰 수염 때문에 적은 벌써 겁부터 먹었을게요.
금마초라고 불렸던 마초 장군입니다.
마초 장군의 선조는 작년 여행에서 구이린이라는 곳에서 만난 적이 있어 구면입니다.
마초 장군!
佳人은 그대 선조인 마원 장군과 야자 하는 사이라오.
조자룡입니다.
참 자알 생겼습니다.
물론 장비도 있었지만, 워낙 흔한 모습이고 그래서 빼버렸습니다.
관우도 이렇게 함께 전쟁터를 누빈 동료와 함께 지낸다면 심심하지 않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폼 잡고 있다가 사람이 찾지 않는 시간에는 관우네 방에 모여
고스톱이라도 때리지 않겠어요?
중국사람은 모이기만 하면 마작이나 쯔파이같은 놀이를 하잖아요.
관우라고 별수 있겠어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기웃거리던 중 하나의 비석을 만납니다.
아! 이런~
이 험준한 면산에서 관제시죽을 만났습니다.
관제묘야 중국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일이지만,
관제시죽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오늘 면산에서 조용히 관제시죽을 노래 합니다.
사실 관제시죽이란 얼핏 보면 대나무를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대나무 잎을 그린 게 아니라 글을 쓴 것입니다.
그 글자 수가 모두 24자에 이릅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대나무 잎에 쓰인 글이 보이십니까?
안 보이시면 그 아래 관제시죽이라고 쓰고 그 옆에 작은 글씨를 보셔도 됩니다.
어디 한번 면산에서 절벽 아래를 굽어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읊어볼까요?
이런 산에서 관제시죽을 소리 내 읊어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잖아요.
관제시죽을 발견한 사람만이 소리를 내 읽을 수 있습니다.
관제시죽(關帝詩竹)
不謝東君意 (불사동군의)
丹靑獨立名 (단청독립명)
莫嫌孤葉淡 (막혐고엽담)
終久不凋零 (종구불조령)
佳人이 관제시죽을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던가요?
서안을 갔을 때 비림을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곳에 있는 비석 하나에 관우가 썼다는 글이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관우는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을 때라 생각됩니다.
그때 유비의 부인도 함께 조조가 보살펴 주었고 조조는 관우를 얻기 위해 적토마를 내리고
유비 식솔이 어렵지 않게 집과 많은 재산을 내리기까지 했지만,
조조는 관우가 유비에게 보낸 이 시 한 편에 마음을 접어야 했지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견마지로를 다 했건만...
지금 관우가 중국사람에게 제왕의 반열에 오르고 가장 존경받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것은 아마도 이 시 한 편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림으로 편지를 쓴 관우도 대단하지만, 그 내용을 한눈에 읽어 낸 조조도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한눈이라 하면 잘못된 표현입니다.
조조가 아무리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지만, 눈을 다쳤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두 눈으로 읽었다 해야 바른 표현일 겁니다.
그리고 관우를 깨끗하게 단념한 조조는 대단히 현명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두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그 의미는...
동군(조조)의 후의에 감사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붉고 푸른 잎들은 저마다 색깔을 지켜나가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쓸쓸히 빛바랜 잎사귀가 되어 남는다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오래도록 시들지 않는 잎사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니 비록, 흑싸리 껍데기로 남을지언정 삼팔 광땡과 같은 마음으로 살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러니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명예와 금전과 영달을 흑싸리 껍데기로 알고 오직 주군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호프 관우...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의 철학이 무엇이고 신의가 무엇인지를 아는 머찐 놈.
내게 이런 머찐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위의 사진이 시안 비림에 있는 관제시죽입니다.
워낙 유명한 비석이라 탁본 때문에 매일 저렇게 옷을 입고 있습니다.
누구나 면산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면산을 오는 모든 사람이 관제시죽을 만나는 게 아닙니다.
워낙 구석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이런 퍽퍽한 곳에서 관제시죽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웅장한 면산에서 관제시죽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시작부터 잠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이번 면산 여행은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도 관우를 뛰어넘는 멋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방원의 '하여가'에 멋지게 '단심가'로 화답한 선죽교의 피이신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단심가를 보면 관우의 관제시죽은 아이들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관우는 흑싸리 껍데기가 되어도 삼 팔 광땡으로 남겠다는 말이지만,
정몽주 어른은 한 번 죽는 것도 아니고 일백 번 고쳐 죽는다는 말이 아닙니까?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이 되어서라도 변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하시니 관우가 어디 비교라도 되겠습니까?
사실 관제시죽이란 후세 사람이 쓴 글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 글로 관우만 더 멋진 사람으로 알려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때요?
일망무제...
눈앞에 거칠 게 없는 이런 절벽 길에서 천 길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제시죽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자유 배낭여행의 묘미가 아니겠어요?
여행사를 따라다니다 이곳에 혼자 서서 웅얼거리면 눈총 받습니다.
성질 사나운 가이드 만나면 빠떼루 줍니다.
자~
다시 한번 관제시죽을 봅니다.
不謝東君意 (불사동군의)
丹靑獨立名 (단청독립명)
莫嫌孤葉淡 (막혐고엽담)
終久不凋零 (종구불조령)
이런 곳에서 비석 하나 만난 것으로 여행은 한결 즐겁고 가벼워집니다.
이런 곳에서 관제시죽을 만나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만약 여러분도 이곳에 가시면 관제묘를 찾아가셔서 관제묘 입구에
오른쪽 절벽이 보이는 구석에 바로 관제시죽이 보일 겁니다.
그냥 가시면 관우가 얼마나 섭섭해하겠어요.
관우 쟤 또 삐쳐요.
쟤 성질 있습니다.
이곳에서 관우의 기를 듬뿍 받고 출발합니다.
그리하시면 면산 여행에서 힘든 일이 없을 겁니다.
관제시죽까지 웅얼거렸는데...
관우가 설마 모른 체할까요?
관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시고 그곳에 서서 시를 한번 읊어 주세요.
그리하시면 관우도 매우 행복해할 겁니다.
문을 들어가면 안에 관제묘가 작게 보이시죠?
바로 관제묘를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을 보시면 관제시죽을 새겨놓은 비석을 보실 수 있습니다.
면산 여행이 어디 풍경만 보는 일인가요?
이렇게 관제시죽도 바라보고 마음에 들면 불역 열호(不亦說乎)아!!!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런데 관우가 정말로 저 돌에다 글을 썼을까요?
그러면, 저 돌을 우체통에 넣었다는 말이고 우체부는 저 비석을 유비에게 배달했다는 말이 됩니까?
아니?
우체부 죽일 일이 있습니까?
저 무거운 돌 편지를 배달시키다니요?
아니면 택배회사에 탁송을 의뢰했을까요?
관우가 우체부를 죽이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했습니다.
아니면 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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