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두커니 서서 길을 묻는다.

2012. 2. 29.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오늘은 운강석굴의 마지막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지루한 이야기를 들으시느라 무척 힘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제20 굴을 지나면 대단한 석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 사람은 여기까지만 보고 다시 돌아가거나 석굴 앞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공연장으로 갑니다.

물론 그 공연을 보려면 별도로 돈을 내야 합니다.

 

나머지 석굴 중 그나마 볼만한 게 탑굴동(塔窟洞)이라 부르는 제39 굴이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탑묘굴(塔廟窟)이라고도 부른다네요.

들어가는 출입문이 아치형으로 만들었네요.

출입문 위로는 내부를 밝힐 두 개의 창문도 만들었습니다.

내부 상인방에는 인동초 문양으로 장식해 놓았습니다.

 

실내로 들어오면 한가운데에 6m 높이의 5층으로 만든 석탑이 우뚝 서 있네요.

삥 둘로 각 면마다 층층이 5층에는 모두 벽감을 만들었고

그 안에 수도 중인 부처상을 만들었고 그 주변은 기둥 형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각 단마다 촘촘하게 처마를 만들고 타일을 가지런하게 붙여놓은 듯합니다.

처마 아래로는 사각형으로 탑의 바닥을 만들고 기둥을 세운 형태이네요.

 

이 탑은 고대 중국의 불탑을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단히 섬세하게 조각되었고 아주 잘 보존되었기에 인정을 받겠지요. 

윈강석굴 후기에 만든 곳으로 제일 규모가 크고 보존 또한 완벽하게 되었다네요.

 

네 군데 벽에는 수많은 부처조각이 있습니다.

동굴 천장에는 해와 달을 든 아수라(악신)가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나마 남은 석굴 중 이게 제일 온전하게 남아 있네요.

나머지는 알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버렸네요.

이곳도 문화대혁명의 바람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드나드는 출입문 오른쪽을 보시면 반가사유상도 있고 비천상도 보입니다.

고뇌하고 수도 중인 반가사유상 위로 아주 요염한 자세로 압사라가 저렇게 춤을 추며 난리를 피워도 괜찮을까요?

믿음이 약한 佳人은 옆에서 저러고 춤을 추면 뻑 소리나게 가버릴 것 같습니다.

바로 위에서 두 보살에 내려다보고 고민하고 있네요.

역시 탑이 왼쪽으로 보입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마약이라고 포교활동을 금하지 않았나요?

왜 말없이 앉아만 있나요?

요즈음 티베트에서는 벌써 여러 사람의 승려가 자주독립을 외치며 소신공양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아픔이 없는 세상은 부처도 어찌하지 못하나 봅니다.

더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백마 탄 칼키가 제일 먼저 티베트에 나타날 것 같습니다.

 

특이한 고리 모양의 매듭이라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이런 형식은 현대에서도 얼마든지 사용하고 있는 매듭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의 종교란 국가의 힘이 필요했고 국가는 종교의 힘을 빌려 왕권을 더 강화하는 윈윈 전략이 맞아 들어

지금까지 번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유럽에는 지금도 남아있는 모자이크 화를 보면 교황의 발아래 납작 엎드린 황제의 모습도 보입니다.

또 무솔리니와 딜을 하며 독재와 탄압을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바티칸의 자율을 보장받은 교황도 있었고요.

왕이란 부처도 되고 신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다스린다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이슬람의 나라에서는 황제가 종교지도자를 함께 함으로 칼리프라는 제도를 만들어 종교와 왕권을

모두 틀어잡고 통치하기도 했고 캄보디아를 가면 바르만이라고 불리는 황제가 자기가 비슈누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고 부처라고도 생각해 마치 신이 환생해 태어나 통치를 하다가 다시 신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도 궁예가 한때 이런 생각에 빠져 관심법이니 뭐니 하며 혼자 이상한 행동을 하며 살다 갔잖아요.

 

그러니 이곳도 황제가 곧 부처요, 부처가 잠시 황제로 태어나 사바세계에 머물며 통치하다가

극락세계로 간다는 착각에 빠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민초의 어려운 생활과 고통은 지배층의 수탈이 아니라 전생에 지은 업보라고 생각하고 수탈에 수탈을

거듭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황제는 자손 대대로 민초에게 삥땅을 쳤는지도 모릅니다.

 

강력한 국가란 하나의 이념으로 뭉쳐야 합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믿는 신이 다르고 내를 건너고 산을 넘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미신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통치자는 백성을 하나의 믿음으로 묶어 강력한 나라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 신이 누구냐 일 뿐이지요.

우리의 희망인 덜수를 모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담요가 생각해낸 일이 바로 자기가 모시던 부처를 핍박으로 사라져 가기 전에

황제에게 어필시키는 일이었을 겁니다.

북위는 사실상 유목민족으로 여러 부족의 연합체였을 겁니다.

문자도 통일되지 못했기에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신앙이 아니었을까요?

지금까지 부족 연합체의 형태에서 강력한 국가가 되기 위해 각 부족이 사용하던 언어를 버리고 한자로 글자를

통일하고 이제 종교마저 통일하면 제법 나라다운 강력한 국가로 재탄생되는 겁니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황제는 곧 미륵이다."라는 말로 황제를 부처의 반열에 올리고 용비어천가를 불러주면

자장가처럼 시나브로 황제의 뇌에 스며들어 정말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5대조부터 미륵이었다고 하면 백성마저 달리 봅니다.

미스터리 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을 만들어 널리 퍼뜨리는 겁니다.

그런 말을 만들어 장독대에 넣어 몇 년간 푹 삭히면 그게 정말 신화가 되던 시기였으니까요.

누가 확인하자 덤빌까요? 아니면 증거를 내놓으라 따지기를 하겠어요.

 

그래서 이곳 윈강석굴에는 16 굴에서부터 20 굴까지 황제의 얼굴이 부처의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불교는 황제를 부처로 미화시켜주면 황제 또한 불교를 국교로 삼아 보호해야 합니다.

윈강석굴 또한 이러한 배경 하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누이 좋고 매부 좋다면 다 좋은 게 아닌가요?

앗! 다 좋은 게 아니군요?

누이랑 매부 둘만 좋군요.

그러니 오늘 돌아본 윈강석굴은 그야말로 담요와 문성제가 담합한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황제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담요(曇曜)에게 문성제가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승려마저 살해한 나라에서

포교를 허용하고 이 거대한 유적인 윈강석굴을 남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잖아요.

담요 오굴...

이 앞에 서서 그를 잠시 동안 '아니면 말고.' 식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佳人의 여행기는 이렇게 얼렁뚱땅 혼자만의 생각을 하며 다니기에 호환 마마보다 더 위험합니다.

 

이 다섯 개의 석굴은 아마도 담요가 만들며 문성제의 다섯 선조가 부처였다고 생각하게끔 하며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원래 황제의 조상이 보통사람과 다르다고 하면 황제는 무조건 좋아 죽습니다.

그리고 담요는 다 만든 후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오~ 부처시여! 진정 이것을 제가 만들었나이까?"

 

사실 담요가 만든 것은 아니죠.

세상 어디나 그냥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정으로 쪼고 갈아가며 만든 게 이런 역사 유물이지요.

그러나 역사는 늘 지시한 사람만 기억합니다.

혼자 읽어보고 부끄럽지 않았을까요?

천 번을 거짓말을 하면 진실이 된다 했습니까?

 

운강석굴에 가면 그곳에는 한국판 용비어천가가 석불로 남아 있습니다.

20 굴이라는 노천대불은 바로 북위를 세운 태조 도무제(이름은 탁발규)라고 합니다.

선비족으로 좌우지간 나라를 세운 사람이라 범상치 않았기에 가장 크게 만들었나 봅니다.

문성제의 조상을 모두 부처로 만든 담요의 작전에 문성제도 뻑 소리 나게 가버리고

불교를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합니다.

 

담요는 보통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지녔습니다.

당시에 조상이 부처라고 하는데 싫은 사람 있겠어요?

그것도 북위에서는 제일 유명한 고승이 그렇다고 하는데...

그냥 못 이기는 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어느 고매한 고승이 나타나 "당신 5대조 할배가 미륵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이미 미륵의 피를 받고 태어났기에 부처를 모셔야 한다."라고 한다면...

"옴마야~ 아이구 좋아라~"

그런데 그 할배가 神氣가 있었다면 혹시 그 신기를 미친 기운이 아닐까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신기가 올라 굿을 해야 하고 무당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간혹 있잖아요.

 

없는 것도 만들어 신의 자손으로 행세하고 싶은데 고승이 신의 자손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모두가 그렇다고 말하면 자기도 그렇다고 믿게 되잖아요.

거짓말을 천 번 하면 사실로 된다고 마오쩌둥도 그랬잖아요.

 

佳人은 말하지 않아도 조금은 압니다.

황제라는 사람의 머리는 무척 단순합니다.

조상을 둔갑만 시켜주면 좋아 죽습니다.

 

앙코르 제국의 수리야바르만은 정말 자기가 비슈누의 화신이라 착각하고 살았고 자야바르만은 부처의 화신이라

생각하며 평생을 산 사람들이라 하죠.

세상은 누가 옆에서 자꾸 뽐뿌질 하면 정말 그런 줄 안다니까요.

일단 한번 믿어보시라니까요.

 

종교와 권력...

때로는 견제와 화합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종교인은 나라가 어려울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국가는 그런 종교인을 보살펴주고...

그래서 국가가 종교를 선포하고 그 종교를 통하여 민초가 마음의 복을 누린다면

그게 바로 행복한 정책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큰 부처상을 만들었을까요?

돌에다 새기면 사람이 돌에다 절을 하고 금으로 만들면 금에다 절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지요.

다른 동물은 절대로 그런 것을 만들고 그곳에다 절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佳人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지 않고 자꾸 손톱에 낀 때만 바라보고 삽니다.

언제 사람이 되겠습니까?  

 

윈강석굴이라는 곳은 1km 정도의 절벽을 벌집처럼 구멍을 내고 부처를 새겨 놓은 곳입니다.

이곳의 부처는 우리와 다른 모습이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생각도 다를 수 있는 佳人의 마음을 이해할까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네요.

그 미소의 의미를 알면 佳人도 끄~ 하하하~

염화시중의 미소가 별게 아니군요?

 

염화시중은 佳人이 해야 하는데 佳人이 오늘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외치니 석불이 미소를 보이십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정말 미소 짓고 있잖아요?

佳人을 향해 손을 들어 "짜이찌엔~"까지 외칩니다.

 

주객전도... 그러나 바쁘고 혼탁한 세상에서 누가 그 의미를 먼저 알면 되지 않겠습니까?

윈강석굴에 오시면 누구나 부처가 되고 염화시중의 의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평범한 여행자도 부처로 만들어 줍니다.

 

오늘 윈강석굴을 나오며 아무도 찾지 않는 제일 먼 곳의 마지막 부처를 만나고 왔습니다.

다른 곳은 언제나 사람으로 들끓지만, 이곳은 찾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얼굴마저 누가 일부러 구멍을 내버려 형체조차 사라져 버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외딴곳에 부처가 있습니다.

 

오늘 외로워하시는 부처의 손을 가만히 잡아드렸습니다.

"부처님~ 제 손이 아직 따뜻하죠? 너무 외로우셨죠?

제가 손을 잡아 드릴게요. 사람이 찾지 않는다고 슬퍼 마세요."

좌불의 다리 아래에 양손으로 다리를 잡고 받치고 있네요.

佳人보고 잡으라 할까 봐 이제 이곳을 조용히 떠나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두커니 서서 길을 묻습니다.

가끔 사람은 어떤 일이 끝나면 멍하니 서서 다음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게 대단한 감동을 안겨준 곳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내일은 지루한 윈강석굴을 떠나 선화사라는 절로 갔던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또 부처를 만나야 하겠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불행한 사람을 놀리거나 비웃지 마라!

자기 행복이 언제까지 영원할 것이라 누가 감히 장담할 것인가.

행복한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지 마라!

나의 행복이 내일부터 시작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것인가.

모두 부질없는 짓이고 잠시뿐인 불행과 행복인 것을...

윈강 스쿠는 담요라는 고승이 불교를 탄압하며 수도자를 살해하지까지 했던 왕에게 불교를

국교로 만들기 위해 왕의 5대조부터 부처로 만듬으로 불교를 국교로 만들며 이곳에 5대조부터

조상의 모습을 부처로  탄생시켰습니다.

어쩌면 희대의 사기행위일 수도 있는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이런 멋진 예술작품과도 같은

석굴을 구경한다고 생각하니 세상은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