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7.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이제 18 굴로 갑니다.
제18 굴은 노사나불 입상으로 입삼불동(立三佛洞)이라고 하네요.
18 굴은 효문제의 3대 선조인 세조 태무제인 탁발도를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탁발씨 가문은 모두 부처입니다.
집안이 모두 부처 패밀리인가 봐요.
가문의 영광이지요, 뭐~
담요는 이렇게 탁발씨 문중을 부처로 만들어주고 북위가 불교를 국교로 삼는 딜을 성공했나 봅니다.
부처상의 크기가 대단하지요?
앉아있는 모습도 대단한데 이곳을 서 계십니다.
1500여 년 동안 앉지도 못하고 서 있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 아닐까요?
앞에서 올려다보며 사진 찍는 사람과 비교해보세요.
마치 우리가 지금 걸리버 여행기 속으로 들어온 듯하지 않습니까?
입삼불동이란 제18 굴, 제19 굴, 제20 굴을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운데 있는 위의 사진에 나오는 제19 굴이 중심 굴이 되는 셈이고
그 양쪽으로 18 굴과 20 굴이 양쪽을 호위한 듯합니다.
그러기에 가운데 굴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佳人도 올려다보며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우리의 눈높이가 부처의 발목에도 미치지 못하네요.
그러나 18 굴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진 곳이라 합니다.
제18 굴의 가운데 있는 불상은 높이가 15.5m이고 머리가 돌출되어 있으며 통통한 뺨, 오뚝한 콧날,
천 개나 되는 부처가 그려진 가사를 입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바라보면 마치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확인하셨죠?
이런 모습은 장대한 체구, 넓은 이마, 등은 탁발 유목민족을 잘 나타내는 외형이라 하네요.
그 양쪽으로 또 다른 협시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협시보살과 그 주변에는 10대 제자상도 보입니다.
왼쪽 협불의 머리 위를 자세히 보시면 화개(華蓋)라 부를 수 있는 뚜껑 같은 게 보입니다.
매일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구석에 모셔 놓았다고 혹시 화가 나서 뚜껑이 열린 것은 아니겠죠?
둥근 얼굴에 강인한 모습의 체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조각은 너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그럼 아래 사진처럼 오른쪽의 조각상을 보며 감상해 보렵니다.
오른쪽의 조각상도 비슷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조각상이 제법 온전한 모습으로 많이 남아 있네요.
입은 옷을 살펴볼까요?
아주 엘레강스하고 우아한 옷을 입고 화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파쑝은 佳人의 영역이 아니고 앙드레 김이 설명해야 할 겁니다.
오른손에는 물병 하나를 들고 있네요?
혹시 저 병 속에 곡차라도? 서구인이라면 양주가 아니겠어요?
약병이라고 생각되면 약사여래일까요?
상단에 다섯 제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너무 작아 그 부분만 확대해 보겠습니다.
이는 중국인이 아니라 서역인으로 보일 정도로 다른 체격에 얼굴 모습입니다.
역시 들고 있는 게 술병인가요?
아~ 가슴으로 올린 왼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습니다.
꽃이 보이세요?
보이시는 분에게만 저 꽃을 드리겠습니다.
아주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고 부처의 가르침에 눈을 감고 경청하며 조금 건방져 보이지만,
모두 이해한 듯한 표정을 보세요.
정말 대단한 조각이 아닙니까?
아닌가요?
저 작은 구석에 있는 조각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조각한 장인의 생각을 순식간에 읽고 여러분에게
거짓말처럼 소개하는 佳人도 대단하지 않나요?
퍽~
......
아니군요...
제가 찍은 사진을 보시고 제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대단하신 인내심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위의 사진에서 왼손에 물병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꽃을 들어 앞섶에 댄 조각상을 찾으셨나요?
여행이란 이렇게 구석 어두운 곳에 작은 조각 하나를 바라보고
그 조각을 만든 장인과 시공을 넘어선 대화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런 느낌은 직접 여행을 한 사람 외에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무언의 대화도 나누며 간답니다.
이제 다음 동굴인 제19 굴로 넘어갑니다.
19 굴은 보생불동(寶生佛洞)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바쁘다고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저렇게 앉아 창문 너머 바라보고 계시는데 인사 정도는 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얼마나 섭섭해하시겠어요?
바로 2대 황제라 하는 명원제인 탁발사를 나타낸 불상입니다.
처음 19 굴이라는 글을 보았을 때 그 글자가 왜 19금이라고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佳人이 19금을 지나치게 좋아해서일까요?
이런 제가 너무 미워요.
가운데 있는 주불이 가부좌로 앉아 있습니다.
앉으나 서나 부처는 부처이지요.
앉았다고 앉은키는 작아지나요?
높이가 헐~ 자그마치 16.8m나 된답니다.
윈강석굴 중 두 번째로 큰 대불입니다.
귀가 얼마나 큰지 뺨을 덮고도 남아 어깨까지 내려옵니다.
귀걸이 한지 알았어요.
세상의 어떤 작은 소리라도 모두 들으시려는 듯합니다.
오른손을 들고 계시는데 팔이 아프신가 봐요.
팔꿈치에 목침 같은 것으로 괴어놓았습니다.
끄~ 하하하~ 부처님도 가끔 이렇게 울 마눌님처럼 조금만 아파도 죽는시늉을 내며 엄살도 피우십니다.
울 마눌님은요~
몸살만 나도 금방 숨넘어가듯이 밤새 끙끙거리며 옆에 있는 사람을 겁나게 합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내가 아픈 게 편합니다.
쫄쫄이와 같이 몸에 밀착하는 승복을 입고 있는데 그 맵시가 아주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게 표현했네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갑자기 조지훈님의 승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가다가 서서 생각나는 시도 한번 읊조리고 가는 겁니다.
자유여행인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아니군요?
마눌님이 혼자 구시렁거리며 뭐하냐고 하십니다.
남쪽 벽에는 윈강석굴에서 제일 먼저 만든 불교에 관한 고사를 조각으로 남겨놓았습니다.
굴 밖으로는 각각 하나씩 양쪽으로 창이 있고 그 안에 방이 있어 앉아있는 불상을 모셔놓았습니다.
그 모습이 장엄하여 북위의 석굴 조형을 볼 수 있습니다.
왼쪽 창문 너머 보이는 불상을 보시면 귀가 얼마나 크게 만들어진 지 알 수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보리 한 줌 움켜쥔 손으로는 쌀을 한 가마니를 준 들 받을 수 없고
자기만의 곳간을 지은 자는 곳간보다 큰 물건이 들어와도 갈무리할 곳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며 모아야 할 시기가 있고 베풀어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며 욕심은 적게, 시야는 넓게 가져야 하는데
佳人은 반대로 보리쌀 한 줌과 작은 곳간과 혼자만의 생각으로 더 움켜쥐려고만 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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