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5.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너무 지루하시죠?
저도 운강석굴 이야기를 이 정도에서 그만둘까도 생각 중입니다.
매일 봐야 석굴이고 그 안에는 부처만 있습니다.
이렇게 보고 다니는데 아직 성불도 못하고 있으니 모두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득도의 길이 이리도 힘이 드나요?
그런데 살금살금 지나치려 해도 저렇게 석창을 통하여 내다보고 계십니다.
빤히 내다보시는데 어찌 모른 체 외면하고 들리지 않고 지나친단 말입니까?
손까지 들고 아는 체하면 더더욱 모른 체 외면하고 지나칠 수 없습니다.
佳人은 아직 저를 바라보면 그냥 지나칠 용기가 없습니다.
그럼 제15 굴로 들어갑니다.
제15 굴은 그나마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만불동(萬佛洞)입니다.
千佛의 딱 열 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해전술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만 불이라는 것도 뭐 대단한 숫자는 아닐 겁니다.
중국이 잘하는 게 바로 툭하면 백만이라는 숫자잖아요.
그러니 중국에서는 겨우 만불동입니다.
벌써 들어가는 기둥에 부처가 보입니다.
만불동은 사각형의 하나의 방만 있습니다.
그러니 만불동의 주제는 그냥 단순하게 무지하게 많은 부처입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간단하다는 말과는 다른 말입니다.
부처라는 말...
그 안에 내포한 내용은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포함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만불동의 원래 이름은 천불동이었답니다.
그런데 최근에 석굴 안의 부처를 세어보니 천 개가 넘더란 말입니다.
처음 이름 지었던 사람에게 빠떼루 주어야 합니다.
제대로 세어보지도 않고 휘익~ 둘러보고 천 개라 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 개가 넘으면 줄이면서 깎아내릴 필요가 없잖아요.
쓴 김에 조금이 아니라 많이 써서 이름을 다시 지으니 만불동이 되었답니다.
천세보다 만세가 더 입에 쉽게 나오니 천불동보다 만불동이 불러서 좋고 들어서 좋으니
그러니 부처 좋고 관광객 좋은 셈이네요.
부처님도 즐거우시죠?
시방화불(十方化佛)은 석가모니의 분신이라고 합니다.
시방화불은 배열에 순서가 있고 구도 또한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는군요.
안에는 천의무봉을 입은 비천상도 있고 고기도 새도 있다고 하는데 너무 내부가
어두워 사진에 나오지도 않기에 이곳은 직접 가셔서 감동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제일 중요한 석굴로 갑니다.
제16 굴입니다.
제16 굴부터 20 굴까지는 북위의 종교장관급이라는 사문통인 고승 탄야오(曇曜 : 담요)가
새파란 황제인 문성제를 설득한 기념으로 만든 이른바 담요오굴(曇曜五窟)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곳이 바로 윈강석굴이 시작되게 된 이유며 제일 먼저 만들어진 곳이랍니다.
굴을 만든 방법은 5개의 굴이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아마도 동시에 시작한 공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말굽 모양으로 만들었고 천장은 돔형입니다.
굴 내부의 조각은 삼세불(三世佛)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주요 조각은 기본적으로 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북위 왕조의 5 황제를 의미하기 때문이겠지요.
"해동 6 룡이 나시어 하는 일마다 하늘에 천복이 내리시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다만,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는 6 용인데 담요가 들고 나온 효문제의 조상은
5 황제라는 점이겠지요.
제16 굴과 제17 굴은 한 조로 취급한다 합니다.
제16 굴의 주제는 석가 입불입니다.
13.5m의 높이입니다.
북위 태화 연간에 만든 것으로 복식이 한나라 복식이라네요.
어쩌면 우리의 저고리 매무새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슴을 여미고 아래로 늘어뜨렸네요.
지금까지 보았던 부처와는 많이 다릅니다.
이게 바로 담요가 효문제를 구워삶고 선친이 부처라고 꼬드기고 그때까지
불교를 박해하고 도교에 나라를 맡겼던 것을 불교를 국교로 삼게 한
마케팅의 결정판입니다.
그래서 부처도 옷을 중국 한나라 복식으로 입혀놓았네요.
담요도 대단한 마케팅의 귀재였나 봅니다.
이러다가 부처의 고향이 산서성 다퉁이라 하지는 않을까요?
아닙니다.
담요는 16 굴을 만들면 신출내기 황제를 불러 말합니다.
"천하를 주무르시는 우리의 황제시여~ 잘 보세요. 이게 누구입니까?"
"부처가 아니오?"
"황제도 참 답답하십니다. 이게 바로 현제불이신 황제의 모습입니다.
황제께서 바로 살아있는 부처 생불이십니다."
"옴마야 내가?....."
돌아서 나가는 담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문성제는 속으로 혼잣말을 합니다.
'정말 내가 입은 옷과 똑같네... 오잉~ 그러면 정말 내가 부처일까?'
담요의 말에 의하면 16 굴은 문성제 탁발준을 모델로 만들었다 합니다.
불상에 입힌 포의 박대식 가사의 앞깃에 우리의 옷고름과 같은 띠의 매듭이 나타나 있고
우리보다는 짧은 옷고름을 볼 수 있는데 북위 시대 이전의 불상에서는 이러한 옷고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한족의 복제로 보기에도 곤란한 양식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부처가 중국 옷을 입던 예수가 한복을 입던 그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어요?
치마를 여러 겹 겹쳐 입은 것 같은 모습은 정말 아름답지 않으세요?
안타깝게도 하체 부분이 많이 훼손이 되었습니다.
작은 구멍이 많이 보이는데 이 석굴은 돌이 단단하지 않아 쉽게 부서지기에 돌 위에
진흙을 붙여 부처상을 만들려고 연결시켰던 나무 막대기를 끼웠던 구멍으로 보입니다.
제17 굴인 미륵삼존동(彌勒三尊洞)입니다.
가운데 주불과 오른쪽에 불상은 좌불이고 왼쪽은 다리도 아프게 서 있습니다.
얼핏 보면 얼굴이 마치 많이 훼손된 스핑크스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17 굴은 우리는 쉽지만, 북위 사람에게는 난도가 높은 교각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미래불로 바로 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경목황제 탁발황을 의미한다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숟가락으로 먹여줘도 자기 밥그릇도 찾아먹지 못하고
일찍 죽는 불쌍한 황족도 있습니다.
운명이 재천이라 누구를 원망하오리까?
그냥 줘도 먹지 못한다는 말은 정말 슬픈 전설입니다.
왼쪽에 서 있는 입불상입니다.
워낙 구석진 곳이고 내부가 넓지 않아 사진 찍기조차 힘이 드네요.
사진 가운데 오른쪽에 불쑥 나온 게 바로 가운데 주불의 무릎입니다.
무르팍 도사의 기본 개념을 여기서 얻지나 않았나 모르겠네요.
얼굴은 둥글고 근엄한 표정이며 위엄까지 갖추고 있네요.
불상 머리 뒤로 대단히 화려한 배광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주불의 높이는 15.6m입니다.
다리를 꼬고 앉은키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머리에는 보화관을 쓰고 있습니다.
사자로 장식된 자리에 앉아있네요.
가슴에는 뱀 문양 장식이 눈에 보이네요.
부처가 무슨 사자로 만든 자리에 앉고 뱀 문양의 옷을 입습니까?
이게 다 조상이 용맹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담요의 작전이 아니겠어요?
사실 부처는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있었다잖아요.
좌대도 후세 사람이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구도자들이 높은 좌대에 냉큼 올라가 앉았더군요.
그게 계급이라고 생각한다면 봉사하는 자세는 아니지요?
주불의 오른쪽에는 앉아있는 부처상입니다.
역시 좁은 실내라 주불의 무르팍이 보이는군요.
어깨가 위풍당당하게 넓고 옷깃의 선이 자연스럽게 표현했습니다.
벽에는 수천의 부처상이 새겨져 있어 초기 윈강석굴의 예술적 표현을 보는 듯합니다.
동쪽 창문에 북위의 연호인 태화 13년(487년)이라고 새겨져 있어
이곳 연대를 측정하는 아주 귀한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신체 하부를 긴치마로 둘렀는데 이런 복제는 서양의 영향이 아주 강하게
나타났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17 굴은 경목제인 탁발황이고 16 굴은 문성제인 탁발준으로 암묵적으로 용맹하다는
의미일 것인데 사실 저런 자세로 앉는다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세요?
하지 마세요.
10분도 견디지 못하고 다리에 금방 쥐 납니다.
이 조각을 한 장인이 몰라도 한참 모르고 만든 겁니다.
가슴에는 진주를 주렁주렁 매달고 팔에는 팔찌를 차고 있네요.
너무 멋만 부리고 계신 것은 아닌가요?
가슴을 사선으로 쇼울을 두른 듯합니다.
부처라 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왼쪽 허벅지 위에는 연꽃이 있어 왼손으로 잡고 있네요.
아~ 저 연꽃의 의미를 알려면 가섭을 불러와야 하나요?
그냥 佳人이 혼자 빙그레 미소 지으면 안 되겠어요?
우리 함께 빙그레 미소 짓고 다음 굴로 건너가죠.
연꽃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염화시중이라는 것을 가섭이 특허 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미소를 지으신 분은 모두 마하가섭과 같은 대단한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밭에 자라는 잡초는 서둘러 뽑지 않으면 온 밭을 황폐화 시킵니다.
사람의 탐욕은 밭에 난 잡초와 같아 나 자신을 황폐화할 수 있습니다.
잡초를 서둘러 뽑으면 곡식이 잘 자라듯 마음의 탐욕을
빨리 털어버리면 또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잡초만 뽑아 버려도 연꽃 하나만 바라보고도 미소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경지에 오르십니다.
잡초는 우리 생각보다 빨리 자라기에 조금만 방심해도
우리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자라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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