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4.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제13 굴로 갑니다.
제13 굴은 문수보살동(文殊菩薩洞)이라는 별칭이 있는 곳입니다.
지혜의 화신이라는 문수보살이 안에 계신가요?
그런데 앉은 모습이 불편해 보이고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석굴과 문수보살을 만든 사람은 우리와는 달리 좌식 문화를 이야기로만 듣고 만들다 보니
어색하고 조화롭지 못하게 만들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창문 너머로 내다보고 계신 불상은 미륵보살입니다.
밖의 모습이 무척 궁금하신가요?
문수보살께서는 미륵보살에게 집을 맡기고 잠시 외출하셨나요?
요즈음 부쩍 외출이 잦아졌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미륵보살께서 밖의 일이 무척 궁금하신가 봅니다.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을 아주 유심히 보시려 기웃거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집을 봐달라고 한 문수보살은 오지 않지요.
집을 찾아오는 사람마다 문수보살이 어디 있느냐 물어보지요.
그러니 저렇게 창문 너머로 이제나저제나 문수보살 올 때만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울 마눌님까지 올려다 보고 문수보살이 어디에 갔냐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저 높이에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공간이 거의 없어 사진을 전체로 찍는다는 게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 어쩌겠어요?
많은 분에게 보여 드리기 위해 바닥에 바짝 엎드린 자세로 위로 찍으면 그나마 전체를 모두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보살께서는 무척 멋을 많이 부렸습니다.
팔과 손목에 찬 팔찌가 유난히 눈을 끄네요.
佳人은 평생 마눌님에게 반지 한 번 선물한 적이 없지만,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게 귀찮다며 살고 있네요.
천장을 돔형으로 둥글게 파냈습니다.
그리고 한가운데 석가모니를 모시고 이어 중생을 구제할 거대한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다리를
교각(交脚)으로 하고 앉아 있습니다.
앉아있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높이가 13m나 되는 거대한 교각상(交脚像)이 있는 곳입니다.
13m란 숫자는 인간이 높이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바로 그 숫자입니다.
유럽에서는 우리가 4라는 숫자를 싫어하듯 탐탁지 않게 여기는 숫자이기도 하고요.
이들은 우리의 책상다리와는 다른 생활 습관으로 구도자의 모습도 우쓰꽝스럽게 표현했습니다.
가슴에 보이는 옷은 뱀 문양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방울이 달린 목걸이며 머리에는 보석으로
치장한 황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너무 멋만 부리는 것은 아닌가요?
구도자가 입는 옷만 신경 쓰다 보면 안 되는데...
뭐 입고 걸친 게 중요한 것은 아니죠?
요즈음 성불하려고 룸살롱에 들어가 양주도 마시고 여자를 가까이해도
성불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륵불 오른손 아래를 보세요.
오른손 밑에 힘깨나 쓰게 생긴 미니어처 역사(力士)가 미륵불의 오른손을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귀엽기도 하고 앙증맞기까지 하지 않나요?
그래 언제부터 저렇게 했으며 언제까지 저렇게 있어야 합니까?
이제 그만 쉬라고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미륵불도 피곤하여 역사에게 손을 받치라 했겠지만, 역사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세상에 자기 편하자고 아랫사람에게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을 시키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저게 역사 죽이는 노릇이 아니겠어요?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공연히 쟤 좀 쉬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면 "그러면 네가 해라!"라고 하지 않겠어요?
어디 가까이 불러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울고 있지 않나요?
하긴 역사란 힘자랑 할 때가 없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마님~ 장작이나 팰까요?" 한다고 했나요?
그런데 역사는 후대에 색을 입혀 복원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 남아있던 것은 발로 밟고 있는 다리 부분에 있는 연꽃뿐이라 합니다.
그러니 처음 만들었던 역사가 너무 힘이 들어 얼굴이 노래진 모양이 아닐까요?
역사라고 언제까지나 힘도 들지 않는 척하며 서 있을 수 없잖아요.
보세요~ 힘들어 찡그리고 있잖아요?
한마디만 더 거들며 울음보가 터질 것 같지 않나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오른쪽 벽을 보시면 벽감 안에 있는 조각품은 커튼이나 장식 술로 치장했습니다.
별것도 아니라 하시겠지만, 이런 작은 것까지 장인은 신경을 쓰며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우리가 이런 것까지 보아줘야 만든 사람 섭섭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조류의 예술적 형태는 중국의 영향이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창문 사이와 남쪽 출입문에 있는 대형 벽감 안에 7 존의 서 있는 부처를 볼 수 있는데(七立佛)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있는 제14 굴은 이름도 별도로 없이 그냥 제14 굴입니다.
이렇게 찬밥 대우를 한다는 것은 별 볼 일 없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너무 차별하는 것은 아닌가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황폐해졌지 안에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다른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아닌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입구에 있는 두 개의 기둥은 1994년 처음 모습대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복원을 했다 하더라도 어디 원본과 같을까요?
복사기가 아무리 좋아도 원본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커닝한 친구가 점수를 더 잘 받는 일은 어찌 된 일인지요?
서쪽 벽의 하단 부분에는 사각으로 벽감을 만들어 왼편에는 인도의 비사리 국 장자인
비마라힐(Vimalakirti)를 조각하였으며 그 오른편에는 문수보살을 새겨놓았습니다.
흔히 유마(維摩)라 일컫는 비마라힐은 석가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석가의 제자이나 집에 있으며
보살의 행을 닦고 거사로써 학덕이 높아 사리불이나 가섭도 따르지 못하는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올랐다 합니다.
아마도 유마(維摩)라는 비마라힐에 관한 고사를 이야기하려 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요즈음 수석합격자 인터뷰를 보면 누구도 학원에 가지 않고 학교 공부만 충실히 했다 합니다.
물론 예습, 복습을 충실히 했고요.
이게 다 유마의 공부 방법인가 봅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화신으로 알려졌잖아요.
늘 보현보살과 짝이 되어 석가모니 왼편에 있는 대승 보살이라 하네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운데는 서 있는 보살이 오른손에는 둥근 접시를 잡고 있고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네요.
이 석굴도 전실과 후실 두 방으로 나뉩니다.
물의 누수로 말미암아 안타깝게도 조각들이 풍화작용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세상에 어디 세월 견디는 장사 있나요?
모든 게 완벽하게 보존되면 오죽 좋겠어요?
그러나 이곳은 워낙 많은 석굴이 있고 그 석굴마다 서로 다른 특이한 조각이 많아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겠어요?
남쪽 벽과 천장 일부분이 무너져버렸네요.
그나마 동쪽에 있는 기둥에 새겨진 천불상이 그나마 살아남았습니다.
부처도 세월에 당해내지 못하나 봅니다.
이제 비쉬누의 화신이라는 부처의 세상이 지나면 다음 세상은 백마 탄 칼키가 온다 했습니다.
위의 부처상을 보면 그 시기가 가까이 다가온 듯합니다.
사람이나 조각도 이렇게 별 볼 일 없으면 찬밥 신세입니다.
그러나 찬밥대우를 받지 않겠다고 명품으로 도배하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델이 입은 옷이 예쁘다고 사지만, 어디 몸매가 모델과 비교할 수 있나요?
이렇게 사 모은 옷이 옷장에 그득하게 채우며 살 필요 없습니다.
내면을 명품으로 꾸미고 살면 그게 명품 인생이 아니겠어요?
그럼 이 안의 내용이 어떤지 살펴보면 찬밥대우를 받고 아무도 기웃거리지 않지만,
우리가 명품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석굴 속의 수많은 부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붕어 빵틀에 찍어낸 듯 모두 모양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가 고파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했을까요?
국화 빵틀인가요?
아니면 부처 빵틀인가요.
아무리 많은 부처로 인해전술을 편다 한 들 황폐해지고 나니 그냥 제14 굴로만 부르고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곳 부처도 머리띠 두르고 구호라도 외쳐야 하지 않겠어요?
한 때는 많은 사람이 찾아 환호했지만, 세월이 흘러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니
이제 이곳은 찾는 사람조차 없고 이름표도 없고 그냥 번호로만 부릅니다.
세상인심이 원래 이렇게 야박한 겁니다.
부처도 세상인심이 이렇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을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에게는 변치 않은 게 있지요.
바로 우리 옆을 언제나 지켜주는 여보, 당신 말입니다.
부처도 세월이 흘러 변했다고 이름도 없이 그냥 찾는 이 없는 왕따가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늘 손만 뻗으면
손을 잡을 수 있고 고개만 돌리면 미소 지을 수 있는 바로 사랑하는 여보, 당신 말입니다.
오늘 한번 안아주며 등이라도 토닥거려 주세요.
뽀뽀까지 한다면 남사스럽겠지요?
겉으로는 징그럽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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